“이거라도 가지고 가.”
엄마는 내가 집에 들렀다가 갈 때가 되면 꼭 손에 돈을 쥐여 주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만 원 이만 원 그랬고 대학생 때는 오만 원 십만 원까지도 망설임 없이 턱턱 건넸다. 객관적으로 큰돈이었는데도 엄마는 항상 ‘이거라도’라고 푼돈 취급하듯, 그러니 편히 받으라는 듯 말했다. 당신이 여유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는데도.
처음엔 기분 좋았다. 그 돈으로 뭘 살지 행복한 상상에 젖어 마냥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대학교 졸업 후부터였던가. 엄마가 건네는 돈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거래하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딸을 찾는 것이, 딸이 엄마를 보러 가는 것이 당연한 건데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듯한 태도로 비쳤다. 아르바이트로, 직장 생활로 내 생활비는 알아서 벌 때마저도 만남의 끝에는 돈을 꺼내 들었다.
“됐어, 됐어.”
현관문을 나서며 쥐여 준 돈을 그대로 바닥에 놓고 도망치듯 달려 나가기도 해 보고 일단은 받았다가 침대 이불 속이나 베개 밑에 도로 두고 나왔다. 그러곤 혹시나 잃어버릴까 봐 전화해 그 얘길 하면 엄마는 잔뜩 서운한 목소리로 “가져가지, 그거 얼마나 한다고.” 하며 타박했다.
안 돼. 더 이상 엄마가 나를 돈으로 움직이게 해선 안 돼.
그 다짐은 지켜지기도 하고 내가 아쉬울 땐 무너지기도 했다. 우리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엄마가 떠난 뒤 거의 모든 일을 혼자 도맡다 보니 재산 정리도 자연히 내 몫이 되었다. 행정 복지 센터에 원스톱안심상속을 제일 먼저 신청했다. 고인이 돌아가신 날을 기준으로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신청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고인의 재산 현황을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주한 숫자들이 말하는 것 같았다.
이거라도 가지고 가.
기어코, 끈질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