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모순』을 읽고
삶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압도적인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에게 모순은 아주 가까웠다. 어쩌면 매 순간에 절실했다. 나를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모순’을 달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는 아주 무겁고 어려운 이 모순덩어리는 여태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 책이 궁금했다. ‘모순’의 유의어가 곧 ‘삶’인 나는 어떠한 해답이 고팠다. 내가 느끼는 부조리가 더는 모순이 아니게 될 답을 이 책에서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예상하겠지만 나의 모순은 여전히 모순으로 남아있다. 이것이 미약하게나마 해답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모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겹친 날.
이모에게 특별한 날이면 나의 어머니에게도 똑같이 특별한 날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겹친 운명이었으니까. (28쪽)
작가가 설계한 인물들의 삶은 우스울 만큼 의도가 적나라하게 보인다. 진진은 만우절에 태어나고 만우절에 결혼한 일란성 쌍둥이의 양극단에 놓인 삶의 모습을 바라본다. 아래의 해석은 진진의 이분법적 주관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어머니와 이모는 결혼과 동시에 비로소 두 사람으로 나뉘었다.
두 사람으로 나뉘자마자 이들의 삶은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세상의 행복이란 행복은 모두 차지하는 것으로,
나머지 한 사람은 대신 세상의 모든 불행을 다 소유하는 것으로
신에게 약속이나 받았듯이 그렇게 달라졌다.
안타깝게도 나는 불행을 짊어진 쪽으로 편입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다. (19쪽)
여러 서술을 아울러 보았을 때, 진진은 운명을 믿는다. 운명을 믿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첫 번째 운명, 부모와 형제자매는 선택할 수 없다는 쓰라린 운명을 우리는 진진의 시선을 통해 처절하게 느낀다. 이모와 엄마를 번갈아 보면서, 이모부를 통해 아빠의 지난날들을 떠올리면서 진진은 자신의 거짓말 같은 삶을 인정할 방법을 찾아야 할 수밖에 없었다. 운명을 가장 잔인하게 내보이는 형태는 우리의 1차 집단인 가족이니까.
두 번째 운명, 진진에게는 “전력투구할 내 삶의 중대한 출발점(217쪽)”인 결혼을 고민할 때가 왔다. 엄마와 이모의 운명을 뒤집은 가장 중대한 사건은 결혼이었다. 오직 남자로 인해 상반된 삶을 살아가는 엄마와 이모를 나란히 두고 보면서, 진진은 “여자에겐 이십 년 징역이고, 남자에겐 평생 집행유예 같은(175쪽)” 결혼의 파급력을 배웠다. 여자에겐 징역이라는 결혼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두 남자 사이에서 끝없이 계산하고 이리저리 따지지만, 그럼에도 종종 자신의 선택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운명은 두 사람한테 오 분 간의 시차를 두었다.
나는 이 운명을 확인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69쪽)
진진은 운명에 맡기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기어코 가능성을 상상한다. 뻗어나가려 노력한다. 엄마의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에 장미꽃을 들고 역촌동이 아닌 청담동으로 향한다. 라일락 향기를 덮는 갈치 비린내를 피해 창문을 연다. 희미하지만 짙은 사람과의 진정한 사랑을 꿈꾼다. 소설 속 진진의 첫 마디,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9쪽)” 한다는 다짐은 이러한 운명의 역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외의 사건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말한다.
그럴 줄 알았어. 예감하고 있었던 일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건은 언제나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257쪽)
그러나 진진의 역행은 성공하지 못한다. 언제나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들을 우리는 어찌할 수 없다. 아무리 거짓말 같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뿐. 일어난 사건은 이미 일어난 것이다.
결말에서 진진은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삶의 일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풍족한 집에서 늘 심심해 보이던 이모, 병자가 되어 돌아온 아버지를 간호하고 또 다른 책을 읽는 어머니의 모습, 미뤄진 상견례에서 포착한 장우의 너무나 특별한 사랑까지. 진진은 끝내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삶이 자신을 농락하여 주어진 운명을 부정하고 불신하더라도, 우리는 쉬이 힘을 쓰지 못하고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흥미진진한 요소는 역시 진진의 약혼자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데 있다. 나영규와 김장우는 그저 반대 관계에 있을 뿐, 서로 모순이라 부를 수 없다. 공통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둘 다 진진의 약혼자 후보였다는 것을 제외하면).
나영규의 활짝 웃음이 옆 사람까지도 웃게 만드는 전염성 강한 것이라면
김장우의 수채화 웃음은 여운이 길어 웃음이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나게 만드는 묘한 웃음이다. (110쪽)
영규는 너무나 뚜렷하고 장우는 무척이나 희미하다. 이렇게 반대편에 서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이 두 사람에게 느낀 감정의 유사성에 반해, 진진의 태도는 의심이 들 정도로 상반된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는 진진의 솔직함이다. 영규에게는 배려 따위 상관 않고 진실을 내뱉는 반면, 장우에게는 털끝만큼의 진실만 허락한다. 157쪽에서 진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솔직함이 무조건 최선이라 하기는 어렵다.
진진은 장우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며 사랑을 탐구한다. 해안도로를 여섯 번 나돌고 진탕 술을 마시며 그가 얻게 되는 사랑에 관한 해답은 그닥 달콤하지 않다.
“…… 한번 물어보자. 안진진한테 나는 감옥이니?”
감옥? 간수? 내가 그랬다고?
아, 나는 전율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대사였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난동을 부리던 그날 밤, 아버지가 말했었다.
당신은 나를 가두는 간수 같았어, 당신은 몰라, 그 절망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내 속에 아버지가 있었다. 행방불명인 아버지가 내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205쪽)
장우를 통해, 사랑에 관한 탐구를 통해 진진은 다름 아닌 아버지를 이해한다. 절대적인 사랑은 옥죄는 “세 겹의 쇠창살문(206쪽)”이라는 것. 정녕 사랑은 감옥일까? 진진이 장우에게 진실을 터놓지 못했던 것은 자기 안에 있는 버거운 사랑의 갑갑함을 던져버리지 못해서였을까?
진진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과 그가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은 일관적이다. 그는 사랑을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을 멈출 수 없는 것(219쪽)”이라 꼬집는다. 그의 가치관대로라면 사랑할수록 우리는 진짜 모습에서 결점은 꽁꽁 숨기고, 잘난 점은 확대하는 데 급급할 것이다. 이러한 사랑이 정말로 진진이 바라는 사랑의 형태인지는 알 수 없다. 혹은 진진이 사랑과 자존심을 헷갈린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여지없는 사실을 밝힐 수 있는, 나를 가두지 않는 영규의 청혼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우리는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더 나아 보이고 싶은 생물학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218쪽)
책 뒤편 작가노트의 언급처럼, 이 책의 제목은 여느 소설보다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인물과 상황을 통해 공통적으로 모순을 설명한다. 삶의 전반, 언제 어디서나 이를 발견할 수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가장 극대화된 형태로 모순을 고발하는 대목은 단연 이모의 죽음이라 말하고 싶다.
여전히 이모의 존재를 형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명확한 건 이모는 참 외로웠다. 이모가 진진에게 시간과 애정을 쏟는 이유도, 아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외로움이 우선했을 것이다. 이모에게는 자신의 생이 정말이지 그토록 심심하고 지리멸렬했다.
나는 너무나 튼튼한 성곽에 갇혀있었고,
성곽을 부수자니 마음을 다칠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 (284쪽)
이모에게는 생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바깥으로 향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애물이 있었고, 그 사실이 이모의 숨통을 쥐었다.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는 투쟁, 나의 인생을 위해 온 생애를 바치는 행위에는 죽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반성하면서.
이모의 죽음이 고발한 모순은 이것이다. 행복은 단지 행복이 아니고, 불행은 단지 불행이라고만 읽힐 수 없다는 사실. 알짜배기 행복까지 다 가진 것처럼 보이던 이모가 답지 않게 아빠를 옹호하던 이유, 엄마의 삶을 재미있다고 표현한 이유, 불행을 이기지 못해 누구보다 먼저 죽음을 택하게 된 이유를 진진은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 없었다면 진진은 영규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진은 이모의 생애부터 죽음의 전 과정을 관찰하면서, 생의 아주 적나라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진진은 이모에게 전부터 양가감정을 느끼곤 했다. 역촌동보다 더 좋은 청담동, 엄마보다 더 예쁘고 깔끔한 이모의 모습 속에 진진은 이모가 부수지 못한 장벽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모는 이 장벽을 먼저 티 내지 않았다. 진진에게 모순이라는 비밀을 꽁꽁 숨기려 했지만, 모순은 그 자체로 너무나 강력했고 노골적이었다.
그래서 진진은 이 모순을 받아들였을까? 영규와의 약혼을 서술하면서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자세히 고백한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296쪽)
이모를 죽게 했다고도 할 수 있는 이 모순을 진진은 결국 받아들였다.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296쪽)”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진진이 고른 것은 불행일까 행복일까. 어쩌면 이에 대한 답까지 진진은 살아가면서 탐구해야 할 과제로 남겼을지도 모른다. 《모순》에서 말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단편적인 모순,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개념을 뛰어넘는다. 우리는 죽음에 닿을 때까지 생의 곳곳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모순을 탐구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