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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매기 Mar 21. 2022

직장 상사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다.

퇴사하는 젊은 사람들 이야기 - 사과 이야기.01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주위 1년에 한번씩 이직하는 친구도 있고, 3개월을 못버티고 퇴사하는 친구들이 많다.
나조차도 그 친구들은 왜 그렇게 퇴사를, 이직을 자주할까 궁금했고, 그 친구들의 관점에서 얘기를 써보고 싶었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이직을 자주 해?" 궁금한 분들이 "왜"를 이해하게될 수 있기를 바란다.


두번째 주인공은 사과다. 사과는 내 고등학교 친구의 친구인데, 마케팅 일을 하는 친구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으로 나를 소개해줬고 좋은 인연이 되었다. 1년 정도 회사를 다니다가 버티지 못해 퇴사 후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왜 직무 변경까지 하면서 이직하게 됐을까?




몇 달 전, 갑자기 무력감에 휩싸인 사과를 만났다. 말 그대로 멘붕 상태였고 정말 지금 여긴 어디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거지, 나는 왜 회사에 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리고 정말 스스로가 그냥 허수아비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회사에 갈 생각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스스로가 그 회사에서 1인분은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 허함을 주말에 만나는 친구들로 채우고 있었다.


한동안 친구들과 약속을 매일 잡으면서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도 만나며, 평소 집에 있는 걸 즐기는 사과와는 어울리지 않는 정반대의 행동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을 만날 때도 뭔가 허하다는 기분과 텅 비어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봤다. 요즘 왜 이럴까.


결론은 간단했다. 그동안 사과는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 가스라이팅이 맞다. 경력직으로 이직할 당시만 해도, 사과는 나름 업무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 이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업무라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불과 1년 사이 사과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몇 달 전인가, 몇 년 전인가? 한 연예인의 사건으로 인해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스라이팅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가스등(Gas Light)>(1938)이란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가스라이팅은 가정, 학교, 연인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이뤄지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스라이팅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네이버에 나와있는 가스라이팅의 뜻이다. 즉, 한 사람이 스스로 사고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뭐하는지 모르겠다.


한동안 사과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이다. 회사에서도, 친구들을 만나도, 때로는 혼자 있으면서도 입으로 내뱉었다고 한다. "내가 뭐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서 말이다. 한동안은 정말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당장 다음날 비행기를 잡아 제주도에 내려가 1달 살기를 하고 싶은 심정이고, 정말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참 쉽다.


사람 하나 멘털을 터는 가스라이팅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때 연예인 사건으로 유명했던 것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가스라이팅은 가해자조차도 그게 가스라이팅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과의 주 업무는 블로그 글을 쓰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도 했고, 전 회사에서도 블로그를 운영하며 지금까지 작성한 블로그 글의 수가 1천 건은 거뜬히 넘는다. 전 회사에서도 주로 인정받았던 것이 블로그 글을 쓰는 능력이었고, 이는 블로그 노출이나 유입, 문의로 전환 등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직한 후 오랜만에 글을 못쓰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멘탈이 털려나가기 시작했고. 문장 하나하나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혔고, 그래서 블로그 글 1개를 쓰는데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글 주제를 고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단순히 작성에만 걸린 시간이 그러했다. 검토를 요청하면 1차에선 괜찮다고 했던 것이 2차에선 까였고, 수정하면 3차에선 결국 맨 처음이 나았다로 돌아오길 여러 번이었다. 토씨 하나까지도 팀장의 기분에 따라 통과/불통과가 달라졌고,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 했다.


단순히 블로그 글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이 외 문서 작성은 물론 메일을 작성할 때도 제목부터 내용까지 모두 컨펌을 거쳐 발송해야 했다. 사과는 본인이 인턴으로 돌아온 줄 알았다. 아니, 어쩌면 인턴보다 심했다. 다른 팀의 동기와 수다 떨었던 것도 팀장의 귀에 들어가면 회의실로 불려 가기 일수였다. 이를 지켜본 팀원은 "이런 걸로 사람을 부른다고?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왜 저래? 사과 씨 신경 쓰지 마요 진짜로."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그럼 사과가 이상한 것일까?


이직한 직후엔 이런 일이 생기면 같은 팀 사람과 술자리를 가지며 그날의 힘든 일을 토로했다. 다른 팀원도 때때로 커피 시간을 가지며 기운 내라고 했다. 그 팀장은 다른 팀에게는 아주 깔끔한 일처리로 유명했기에 이를 토로하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팀 사람들뿐이었다.


몇 달 뒤 한 팀원은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며 퇴사를 했다. 그리고 다른 팀원은 부서 이동을 신청해 떠나갔다. 더 이상 얘기할 곳이 없던 사과는 그 가스라이팅을 그대로 다 받게 되었고 몇 달이 더 지나자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보냈던 업무 메일이, 지금은 발송 2일 전부터 미리 써놓고 매일 한 번씩 읽어보며 확인했고, 발송 전 팀장에게 이런 내용의 메일을 보낸다는 얘기를 한 뒤에야 메일을 보낼 수 있다. 블로그 글을 쓰면서도 팀장의 컨펌이 없으면 불안해서 맞게 작성했는지 판단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내부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스스로 보고서를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망가지고 난 나를 보고 나니 너무 후회가 됐다.


"왜 빨리 퇴사하지 않았을까.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인데 왜 지금까지 나를 여기에 뒀을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했던 말이고 내 가슴 속에도 깊게 박힌 말이다.




나만 힘든 게 아닙니다. 직장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듭니다.

직장생활에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쓰는 글입니다.

나도, 여러분도 모두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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