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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Aug 20. 2021

[소방관이 읽은 책] THE FUNERAL CODE

#내가유디티가된이유 #홍지재 #유디티 #특수부대 #이야기 #글쓰는소방관

군대 이야기다. 다행히 축구 이야기는 없다. 최근 어느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잘생기고 멋진 유디티 후배들이 그나마 군대에 대한 이미지를 달리 보이게 해놔서 오늘의 글을 쓰기가 한결 편안하기도 하다. 21년 전 내가 유디티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와 다르게 세상은 그곳의 존재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도 차라리 편하다.


스쳐 지나가듯 어딘가에서 이 책을 봤다. 표지에 나온 큼지막한 UDT라는 세 글자에 나의 시선이 고정됐고, 더 물어볼 것도 없이 책을 주문했다. 속으로 올 것이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부쩍 관심이 높아진 유디티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언젠가 그곳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이길 바랐을 거라는 생각도 했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받은 책을 단숨에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지극히 나만의 관점으로) 이 책은 유디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을 저자가 보고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 책은 미친 듯이 치열하게 살아온 한 남자 아니, 사나이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에는 수많은 또 다른 유디티들이 오버랩된다. 60년이 넘는 부대 역사에서 그곳을 거쳐간 사나이는 불과(?) 4천 명이다. 이 책은 그들 모두의 이야기다.



남자라면 누구나 강인함을 꿈꾼다


저는 이곳에서 훈련하면서 제 안에 있는 나약함과 게으름, 
스스로 규정한 한계를 박살 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훈련을 누구보다 떳떳하게 받고 싶습니다.
하찮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로 저에게 닥친 고난을 
피하거나 외면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중략)
여기서 하루하루 버티고 승리하는 모든 순간을
영광스럽고 가슴 벅찬 순간들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유디티 교육 중 저자가 교관들에게 쓴 글-
THE FUNERAL CODE :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 32~33쪽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특히 유디티라는 곳에 오는 남자들은 더욱 그렇다. 눈 빛에서, 몸 짓에서, 말과 행동에서 그곳에 모인 자들의 각자의 인생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책의 시작에서부터 도드라지는 저자의 굴곡진 가정사와 그가 걸어온 삶을 보자면 무섭게도 유디티와 잘 어울린다. 그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는 것은 '절박함'이라는 쓰라린 감정의 표현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연이은 죽음. 한두해가 아닌 며칠 사이에 양친을 모두 떠나보낸 21살의 남자. 모질게도 꺾인 비루한 삶을 저자는 숨죽여 받아들인다. 그래도 스스로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느 방송에서만 보았던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기도 하고, 남도를 걸어서 횡단하며 죽을 고비를 넘는 객기까지 여지없이 보여준다.


삶의 질곡을 벗어던지기 위해서였을까? 자신의 혼과 육체를 한계로 몰아넣기로 작정하고 저자는 유디티에 자원한다. 이 지점에서 나의 경험과 잠시 대비해보았는데 현실을 도피하듯 유디티에 간 나와는 반대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의 동기들 중에도 저자와 같은 남자들이 있었다. 끝장을 보러 온 진짜배기들. 그들은 내 기억 속에 독한 녀석들로 남아있는데 저자의 글에서도 독기가 보였다.



최고가 되기 위한 무한의 노력


결국 우리는 두렵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두려움을 끌어안은 채로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 그 길이기 때문이다.
THE FUNERAL CODE :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 110쪽


스스로 그 생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용기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저자는 거기에 하나를 더 한다. 최고가 되기로. 살아온 길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학창 시절 줄곧 학생회장을 했고 서울의 명문대 철학과를 다닌 그였다. 유디티에 자원하기 위해 스스로 피나는 노력을 했음은 물론이다. 날고 긴다는 전국의 상남자가 다 모이는 그곳에서 저자의 '깡'은 남다르게 폭발한다.


주목할 부분은 동기들과의 일이었다. '지옥주'. 지금 다시 들어도 사지가 부들거리는 5일 동안의 지옥훈련. 잠을 잘 수도 없고, 옷을 벗을 수도 없으며,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훈련하는 말 그대로 지옥의 한주. 저자는 그 지옥 속에서도 동기들이 모습을 기억하며 그 속에서 피어났던 남자들만의 언어를 담담히 전한다. 나는 사실 기억이 가물거린다. 세월이 오래되어 그러기도 하겠거니와 사실 지옥주 3일차부터는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는 이겨낸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시간을 이겨내고 궁극에는 자기 자신을 이겨낸다.


욕망을 위한 또 다른 전진


자신의 진정한 욕망에 대해서 깨달은 자는 머뭇거릴 새도 없이
온 존재를 걸고 이를 향해 투신한다.
그것만이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를 진정으로 욕망하게 하지 않는다.
넓은 집, 좋은 차, 사회적 지위, 부와 명성.
우리가 진정한 욕망이라 믿었던 그 모든 것들 앞에서
우리는 진정 행복한가.
우리는 과연 집과 차와 지위와 명성만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THE FUNERAL CODE :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 206쪽


사실 읽을수록 같은 유디티 출신이라는 공통분모가 무색해져갔다. 책의 끝자락에 다 와가서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혹여 유디티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미치듯이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을 통해 독자에게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삶 또는 세상을 결국 극기(克己)와 인고의 시간을 빗대어 말하고자 하는 듯했다.


당장의 중요한 것은 물질적 가치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존재들의 움직임이 아닌 진심으로 삶을 갈망하는 욕망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허공의 것들을 향해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것 바로 욕망에 집중하라는 것. 나는 저자가 주는 메시지를 그렇게 보았다. 또 다른 반가움도 보았다. 책의 말미에 나오는 46기가(군가)였다. 유디티는 매 기수마다 자기 기수만의 군가를 만드는 데 저자는 어떤 의도에서인지 46기가를 책에 올렸다. 내가 46기이기에 놀라움이 컸다.


행여 유디티라는 최강의 특수부대(내가 여기 출신이니 이해하시라. 자기가 나온 부대를 그렇게 여기는 것이 당연지사 아니겠는가?)를 선전하고 그곳에서의 일을 영웅담 삼아 펼칠 거라 기대한다면 이 책을 펼치지 말길 바란다. 작고, 짧은 글이지만 내용의 깊이는 지극히 무겁다. 저자의 필력은 물론이고 글 곳곳에 배어 나오는 삶에 대한 통찰은 감탄을 자아낸다. 하나의 자기 계발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용기를 얻고 싶은 사람이나 현실에 좌절하는 사람이 읽는다면 더할 것 없이 좋을 듯하다.


유디티/씰(UDT/SEAL)

내 삶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시간들. 오늘 이 책을 통해 수십 년 전의 짠 내 나는 진해 앞바다를 다녀왔다. 진저리 칠만큼 힘들었던 그 시절. 하지만 오늘 이 책을 읽고 그때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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