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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고독한가?

고독은 재생이다

by 글쓰는 소방관

주말이나 휴일은 거의 혼자 있다. 강의 준비를 위해 사무실에 나가는 일도 있지만 그조차 혼자 하는 일이니 혼자임이 분명하다. 오늘도 새벽부터 글을 읽고, 쓰고, 수영을 했다. 다 혼자 했다.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외로움이라고 한다. 뜻밖이긴 한데 이해는 쉽다. 관계를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뭉치고 갈라서길 반복하거나, SNS에서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교류의 글과 사진들만 보자면 말이다.


이것은 본능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뭉쳐 있어야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먹이사슬의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던 선사시대, 극한의 환경과 잔인한 야생에서 인간은 서로 붙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이 어쩌면 유전적 본질의 당연함 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만 달리 볼 것이 있다. 동아대학교 어문학과 이국환 교수의 말에 따르면 외로움(loneliness)은 '단절'과 '고립'을 말한다면 고독(solitude)은 '독립'과 '재생'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어감상 외로움이 조금은 나아 보이는 듯 한데 속 뜻은 차라리 고독이 좋겠다.


그래서 우리는 고독해봐야 한다. 복잡하게 어울리고, 눈치 보고, 없는 마음에 행동을 따라야 하는 관계의 피로함을 벗어나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과 자기만의 환경에 몸과 마음을 던져 넣는 것이 나는 좋다고 본다.


놀라운 것은 고독의 시간이 지나면 나 자신이 몹시 성장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늦은 밤 잠들지 않는 몸을 눕혀 휴대전화 속 짧은 영상에만 빠져 있는 것을 고독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다.


혼자만의 시간에 내가 가진 무언가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몰입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나는 책을 읽었고, 글을 썼고, 수영을 했으며, 다이빙을 즐겼다. 물론 이런 것들 전체가 고독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도 당연하다.


조직이라는 관계의 형성만이 성취의 전부인 것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슬그머니 나이 들어 이제와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고독 해야만 직장에 더 부지런히 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주일 내내 시달리며(?) 일하다 하루든 이틀이든 고독으로 나를 다독인 후 다시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 나도 모르게 일에 대한 은근한 추진력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대하려면 그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야 한다. 그리움이 전제 된 만남이 즐겁고, 그리움이 가득한 관계가 애틋하다. 그러려면 혼자 있어야 한다. 그 시간에 나를 단단히 만들고 그리움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며 정말 내가 그리워하는 것(또는 사람)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 결국 '성장'한다.


그렇게 얻은 성장은 또 다른 외로움과 고독에도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인식하게 해주는 놀라운 자양분이 된다. 지금 혹시 관계 때문에 혼란스럽다면 순수하게 고독해보자. 그렇게 그리워해보고 성장하다 보면 새로움을 발견할 것이다.


*참고서적 :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이국환, 산지니,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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