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모르면 모른다고 해라
배움에 목마를 때가 있었다. 지금은 조금 덜 하지만 매우 격할 때가 있었다. 뭐든 쫓아다니며 들으며 적었고 직접 겪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시간의 풍파를 느끼며 이제 와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배움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 말을 보자.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
공자의 말이다. 워낙 유명하고 뜻도 좋다.
'안다고 아는 게 다가 아니라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진짜 아는 것'
이 정도로 정리된다. 이 문구가 아니더라도 어느새 배움을 줄이고 내가 모름을 인정하는 것이 더 많이 배운다는 것을 살짝 깨닫기 시작했다. 해석의 미세한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나름 저렇게 보는 이유도 있다.
내가 아는 앎이란 지식의 축적 후 몸의 체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형태의 다름이야 있겠지만 지식은 정형화되어 있다 하더라도 몸의 체득은 다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축구 선수로 예를 들어보겠다. 수만 번 몸으로 연습하며 볼을 차도 실제 경기에서 발끝을 떠난 공이 제 맘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이야 다르지만 과거 한국축구의 단점이 그래서 '경기경험부족'이었다. 그만큼 실전 경험이 중하다는 뜻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조직을 보자. 작금의 소방 교육 현실을 직시해보면, 무수히 쏟아지는 형식적 제도와 이론적 배경에 과연 제대로 된 경험이 적용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교육이라는 허울에 경험도 없는 '교육자'들의 말만 번지르르한 지식과 일방적 체험만 전달되고 있지는 않는가?
자기가 아는 것이 다라고 여기는 행태도 여전하다. 아니 자기가 아는 것만이 진짜 아는 거라고 가르친다. 정녕 필요한 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경험)은 간과한 채 말이다.
소방관이 배워야 할 진짜 지식은 조금 부족하더라도도 목숨 여러 번 잃을뻔하며 겪은 '앎'을 습득할 때 완성되지 않을까? 대단한 듯 여겨지는 말뿐인 지식만 습득한다고 불속에서 죽거나 다치지 않을까?
정말 겪어야 할 것들을 자꾸 등한시 하고 운전면허 연수같은 갖추어진 지식을 지식이라 한다면
나는 진짜 모르니 차라리 모른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