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기습

흰 머리카락 한 올에 내려앉은 지난 세월의 그을음

by 글쓰는 소방관

어제저녁이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낮게 깔린 거실 소파에 무심히 앉아 있는데, 아내가 내 머리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평온한 저녁의 일상. 그런데 갑자기 아내의 손길이 멈칫하더니, 이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의 손끝에 하얀 머리카락 한 올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눈가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당신 흰머리가..."
말끝을 잇지 못하고 우는 아내를 보며 나는 순간 멍해졌다. 고작 흰 머리카락 하나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흔적일 뿐이다. 그런데 아내는 왜 그 한 올을 부여잡고 저토록 서럽게 우는 것일까.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내가 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흰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머리 위에 내려앉은 지난 26년의 시간, 그 치열했던 세월이 남긴 하얀 재(灰)였다. 검은 머리숱 많던 청년이 온몸으로 불과 물을 견뎌내며 늙어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나의 늙음이 당신에게는 슬픔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저려왔다. 그 하얀 머리카락 한 올이 마치 오래전 끊어버린 기억의 도화선이라도 된 듯, 나의 지난날들이 슬그머니,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스무 살, 갓 약관을 넘긴 나이였다. 세상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던 그 시절, 나는 스스로를 극한으로 내몰았다. UDT(해군 특수전전단). 이름만 들어도 혀를 내두르는 그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강해지고 싶었다. 아니, 살아있음을 가장 격렬하게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견딤'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된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갯벌 위에서, 나는 나약한 인간의 껍질을 벗고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오직 투지 하나였다.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숨을 쉬는 것조차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모진 날들. 교관의 고함과 파도 소리가 뒤섞인 그 지옥주를 버텨내며 내 안의 무언가가 단단하게 굳어갔다. 그것은 일종의 제련이었다. 뜨거운 불과 차가운 물을 오가는 담금질을 통해 쇠가 강철이 되듯, 어리숙했던 청년은 그곳에서 비로소 '죽음을 각오해야만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온몸으로 새겼다. 지금의 나를 만든 8할은 그때 배운 인내와 도전이다. "불가능은 없다"라는 구호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생존 본능이 되었다. 그때 내 몸에 새겨진 굳은살들은 훗날 내가 마주할 더 뜨거운 불길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게 하는 갑옷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바다 사나이로 단련된 나는, 운명처럼 소방관이라는 또 다른 제복을 입게 되었다. 물에서 불로, 전장만 바뀌었을 뿐, 목숨을 담보로 하는 삶은 그대로였다. 소방관이 되고 난 후의 시간은 그야말로 쏜살같았다. 사이렌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매캐한 연기 속으로 몸을 던지며 보낸 날들. 누군가는 도망쳐 나오는 곳으로 거꾸로 들어가야 하는 삶. 그 삶을 26년이나 살아냈다. 어느덧 거울 속에는 쉰을 바라보는 중년의 사내가 서 있다. 제복을 입고 지낸다는 것은, 매일 아침 수의를 껴입는 심정으로 집을 나서는 것과 같다. 불이 휩쓸고 간 현장은 처참하다. 무너져 내린 건물, 검게 그을린 가재도구, 그리고 때로는 차갑게 식어버린 생명들. 그 아비규환 속에서 나는 감정을 지워야 했다.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나도 죽고, 내가 구해야 할 사람도 죽기 때문이다. 살아온 날들과, 진짜 죽을 것 같아서 살려고 발버둥 쳤던 날들이 마구 혼재되어 있다. 어떤 날은 사람을 살려냈다는 환희에 젖어 하늘을 날 것 같았고, 어떤 날은 내 손끝에서 스러져간 생명의 무게 때문에 죄책감에 짓눌려 잠들지 못했다. 나의 26년은 그렇게 '살려내기 위한 사투'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뒤엉킨 시간이었다. 내 머리 위에 내려앉은 한 올의 저 흰 눈은, 어쩌면 그때 다 타버리고 남은 내 열정의 재가 아닐까.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비번인 날에도 몸을 만들었고,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체력이 떨어지면 현장에서 동료에게 짐이 되고, 누군가를 구할 수 없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다 보니 나는 주변을 돌아보는 재주를 잃어버렸다. 가족에게 나는 어떤 남편, 어떤 아빠였을까. 늘 피곤에 절어 있거나, 비상 대기로 긴장해 있는 사람. 여행을 가서도 안전부터 따지는 재미없는 사람. 나의 헌신이 밖을 향할수록, 정작 내 안의 울타리는 쓸쓸해져 갔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독불장군처럼 살았다. 나의 힘듦이 너무 커서, 아내의 외로움이나 아이들의 투정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고 변명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데!"라는 말은 가장 비겁한 가장들이나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술 한잔 들어가면 홧김에 그 말을 내뱉곤 했다. 후회 없다 말하고 싶은데, 솔직히 돌아보니 회한만 산더미다. 더 많이 웃어주지 못한 것, 더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것, 꽃 피는 봄날에 꽃구경 한번 제대로 시켜주지 못한 것. 내가 구한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 정작 내 아내의 웃음은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아내가 흰 머리카락을 보고 운 것은, 단순히 늙어가는 남편이 안쓰러워서가 아닐 것이다. 그 흰머리가 늘어갈 동안, 자신에게 등 돌리고 치열하게만 살았던 야속한 남편에 대한 원망과 연민이 뒤섞인 눈물이었으리라.

사람들은 묻는다. 노후 준비는 했느냐고, 은퇴 후에는 무엇을 할 거냐고. 그때마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나는 멀리 보는 법을 잊었다. 아니, 애초에 멀리 볼 수 없는 삶을 살았다. 괜한 말이 아니라, 나는 내게 남은 날이 '오늘 하루'뿐이라고 여기며 지낸다. 이것은 감상적인 수사가 아니다. 생존 본능이다. 무너지는 건물 속으로 들어갈 때, 거센 파도를 뚫고 누군가를 구하러 갈 때, "내일"이라는 단어는 사치였다. 오직 지금 이 순간, 내 숨이 붙어 있는 이 찰나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만 살아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했던 일들 모두 인생을 멀리 보기엔 매 순간이 너무 치열했다. 1분 뒤에 건물이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10년 뒤의 노후를 걱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습관이 몸에 배어버린 탓일까. 나는 여전히 오늘 하루 무사히 퇴근해서 아내와 저녁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할 뿐, 먼 미래의 부귀영화를 꿈꾸지 못한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아둔하다 할지 모른다. 계획 없이 산다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 '근시안'이 부끄럽지 않다. 그것은 내가 내 삶을 가장 뜨겁게 사랑했던 방식이었으니까.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역설적으로 오늘의 나를 가장 성실하게 만들었으니까.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며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울지 마. 이건 늙은 게 아니라, 잘 버텨온 훈장이야."
그렇다. UDT의 파도와 소방관의 불길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지는 훈장. 비록 빛나는 금속 배지는 아닐지라도, 내 몸이 기억하고 세월이 증명하는 가장 영광스러운 표식이다. 살아온 날들이 기적 같고, 살아남은 날들이 꿈만 같다. 26년의 세월 동안 숱한 위기를 넘기며 제복을 벗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내 실력이 아니었다. 곁에서 묵묵히 기도로 밤을 지새운 아내의 내조, 그리고 함께 현장을 누비다 먼저 떠난 동료들이 지켜준 덕분이다. 이제 나는 조금씩 힘을 빼는 연습을 하려 한다. 독불장군처럼 뻣뻣하게 굳어있던 목에 힘을 풀고, 앞만 보던 시선을 돌려 옆에 있는 사람을 보려 한다. 물론 여전히 사이렌이 울리면 내 심장은 뛸 것이고, 본능적으로 방화복을 챙겨 입을 것이다. 그것은 내 천직(天職)이니까. 하지만 퇴근 후에는, 제복을 벗은 자연인으로서 아내의 흰머리도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조금은 헐렁하고 편안한 남편이 되고 싶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린다. 내일 아침이면 나는 또다시 익숙한 동작으로 안전화를 신고, 낡은 제복을 입고 현장으로 나갈 것이다. 어제와 다름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나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관문을 나서기 전, 거울을 한번 더 보게 될 것 같다. 거기 서 있는 반백의 소방관에게 말해주고 싶다.
"고생했다. 그리고 고맙다. 잘 버텨줘서."
그리고 잠든 아내의 얼굴을 한번 더 눈에 담고 나갈 것이다. 오늘 하루가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는 그 마음 그대로, 오늘 저녁에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 당신과 따뜻한 밥 한 끼 먹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내 머리 위의 흰 눈은 차갑지 않다. 그것은 그 무엇보다 뜨겁게 타올랐던 내 청춘의 증거이자, 치열했던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마침표들을 찍어가고 있다는 신호니까. 그러니 아내여, 더 이상 슬퍼하지 말기를. 당신의 남편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지키기 위해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 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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