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2병을 겪고 있는 우리네 '대리'들의 눈부신 성장통
국내 대기업의 전형적인 직급체계인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의 직급 구조하에서 조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직급을 고르라면 당신은 누구를 고르겠는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애사심과 보상 만족도 조사에서 유독 불만을 토로한 그룹이 5~10년 차 직장인들이다. 다양한 조직 진단 설문 결과를 보더라도 대리급들의 조직만족도는 가장 낮은 편에 속할 뿐 아니라,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대리급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도대체 우리네 대리들은 어디가 그토록 아픈 것인가?
대리들은 사내에서 낀 세대 스트레스를 느낀다. 간부와 사원의 중간에서 일은 많고 대접은 못 받는다는 생각이 큰 것이다. 일도 익숙하고 실무도 잘 알지만 회사 내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이고, 큰 일보다는 간부들의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생각이 커진다. 반면 사원들은 입사 시점부터 다양한 입문교육 / 합숙교육 등을 비롯해 멘토링, 온보딩(On-Boarding) 프로그램 등 많은 관심과 지원이 가는데 반해 대리가 되면서 점점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두 번째 원인은 직장에서 본격적인 경쟁상황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대리 승진에는 큰 제약을 두고 있지 않지만, 간부 승진은 깐깐하게 챙기는 편이다. 자연스럽게 고과에도 신경이 쓰이고, 빨리 치고 나가는 동기들도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또 전문성을 가져야 할 직무 선택의 최종 기회라는 부담감이 작용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의 성장 가능성도 큰 고민거리로 자리 잡는다. "승진 병목현상(Promotion bottlenecks)"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입사 초기 직장 내 동료들을 사귀며 친구로 지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직 내 동료 간 상호 지원이 감소하고, 성공 기대가 높아지면서 감정 소진이 커지고 시간 압박도 극심해진다는 연구다(퀸즈랜드 연구팀).
마지막으로는 조직과 가정에서 그 역할이 확대되면서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과 중압감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남성의 경우 30세에서 35세, 여성은 28세에서 33세를 대리 시절로 보내는데, 이 시기에 인생의 중요한 대소사가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특히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결혼의 경우, 남성이 32.6세, 여성은 30.0세에 이루어지고 있어 대리 시절 한가운데를 관통한다(통계청, 2015). 결혼과 함께 주택마련을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대리들은 평생 처음 은행에 달려가 큰 규모의 빚을 지곤 한다. 또한, 출산·육아를 통해 한 집안의 가장, 사위, 며느리로 그 역할도 급속히 확대되며 챙겨야 할 일들도 몇 배나 늘어난다. 지출이 늘어나며 금전적 욕구도 강해지고 일과 삶에 대한 균형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대리 시절이다.
그야말로 직장생활의 사춘기(思春期),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대리들은 손은 빠르고 머리는 싱싱하다. 일도 알고, 자기 주관도 싹텄다. 무엇보다 이들은 다른 간부급(과장 이상)보다 가격이 싸다. 최근 링크드인,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소셜 채용이 확대되면서, 대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주변의 유혹에 노출된다. 일 잘하는 젊은 인력들이 오히려 Job Hopping을 더욱 즐긴다는 기사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애사심을 기대하기 어려운 세대가 생각하는 이직은 기회다.
물론 높은 직급의 기성세대들이 보기에 이들은 아직 그 성숙도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허리 계층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할 대리들의 고충은 때가 되면 지나갈 일시적인 성장통으로 치부하기엔 그 중요도가 남다르다.
대리들을 다시 보라. 사춘기를 잘 견뎌내야만 듬직한 성인으로 성장하지 않는가? 각별한 관심과 공감이 절실한 그들에게 모닝커피 한잔과 마음 담긴 대화를 선물하는 멋진 동료, 선후배가 되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