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 변화의 절대 조건
'위기'라는 단어가 일상 언어가 되고 있는 듯하다. 장기 저성장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제 지표, 코로나 19라는 전염병까지 가세한 지금의 경영 환경은 많은 기업의 리더와 구성원들을 불안으로 몰아넣는다. VUCA라는 단어가 출현한지도 수년이 흘렀지만 그 복잡성과 변동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이에 대응해 경쟁에서 살아남기란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한 기업이 냉혹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가 고객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경쟁력이란 상대적인 개념으로 경쟁자보다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그 누구도 제공하지 않는 돋보적인 제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그 해답으로 우리는 혁신(Innovation)을 말한다. 혁신을 통해 여타의 기업보다 더 나은 경쟁력을 갖추어 나가면, 비로소 성장(Growth)이 가능할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생각 때문이다. 이 간단한 사고의 흐름은 거의 모든 기업이 '혁신'을 부르짖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똑같은 크기로 혁신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깨닫게 했다.
기업이 혁신을 말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토픽이 있다. 바로,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너나 할 것 없이 지난 과거의 일하는 방식이 구태의연하다는 자기반성을 시작으로 조직 변화, 나아가 조직문화 변화가 필수적임을 이야기한다. 또 모든 직원이 하루아침에 그들의 가치와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켜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상적인 행동으로 변화하기를 희망하며 말이다. 잡음도 많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리더가 안 바뀌니 우리가 바꾸기 힘들다 말하고, 리더들도 그 윗사람을 탓하기 일쑤다. 최고 경영진은 자기는 변화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지만, 그들이 이미 누리고 있는 기득권과 차별적 배려를 쉽사리 내려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변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하는 방식의 변화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혁신을 만드는 글로벌 IT 공룡들의 일하는 방식은 여타의 기업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고 있다. 무언가 수평적이고, 더 진일보한 것 같아 보이는 그들만의 업무 방식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나아가 구글과 넷플릭스의 경영진들은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책으로까지 출판해 친절히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이를 따라 하면 우리 기업도 혁신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기업들이 상당하다. 그 기업들의 제도도 면밀히 벤치마킹하고, 철학과 본질도 잘 학습해 적용하고자 하지만 그들처럼 일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하는 방식은 그 기업의 뿌리 깊은 조직문화다. 직원들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일하는 방식이고 이는 매우 집단적이며 동질적이다. 혼자 다르게 일한다고 성과가 나지도 않을뿐더러, 긴 역사와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합의로 이루어진 집합체가 바로 '일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를 바꾸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문화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의 이해와 동의(Agreement)가 필요한 부분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기업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필자는 '디지털'을 꼽는다.
사람이 자발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저항을 이겨내며,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들여다보자. 바로 자신에게 돌아올 열매 말이다.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지(What's in it for me?)에 대한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지 않고서는 사람들은 거의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습관을 바꾸기도 어려운 오늘날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조직 내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하기 위해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반드시 제시해야만 한다. 이 부분이 불명확하다면,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당신이 몸 담고 있는 조직에서 회의/보고 문화에 대한 개선 활동을 지난 10년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묻고 싶다. 회의/보고 문화 개선 어젠다는 대다수의 기업이 실패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표적인 일하는 방식 변화 캠페인이다. 불필요한 회의가 많고, 말 한마디 안 해도 될 사람이 앉아 있고, 시간은 무작정 길어지고, 의사결정 없이 끝났다 만나기를 반복하며, 자료를 미리 공유하는 일은 소원하고, 회의가 끝나도 일사불란하게 일이 진행되는 일은 드물다.
그렇다면 디지털은 무슨 이득을 줄 수 있느냐에 생각이 머물 것이다. 디지털 툴이나 애플리케이션은 일단 다자간 사용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일시에 소통 비용, 협업 비용을 줄여주는 효과와 더불어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글로벌 업무 환경이 당연시되면서 언어, 시차, 공간의 차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툴로 디지털이 떠오르고 있다. MS의 팀즈(Teams), 슬랙(Slack), 줌(Zoom), 큅(Quip) 등은 대표적인 디지털 협업 툴로 포춘 100대 기업 대부분이 이를 활용해 전 세계 직원들과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협업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1인 1 모바일 디바이스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런 디지털 업무 환경은 필수적인 세상이 되었다. 정보 공유가 안돼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만 따져보더라도, 우리는 이를 일종의 수익 창출의 무기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버전 관리와 취합에 따르는 비효율을 우리는 이미 수도 없이 경험했다. 최종 보고서가 탄생하기 위해 많게는 20번이 넘게 수정본을 만들고, 취합자나 주필이라 불리는 작성자는 야근이 불가피했다. 또 일단 개인의 피씨에 저장된 보고서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 공유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개인의 사유 재산화 되는 경우도 많다.
디지털 기술과 다양한 협업 툴의 발달은 손쉽게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무기가 되었다. 이제 누구나 캘린더 앱을 사용해 자신의 일정관리를 생활화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회의 시간에 대한 건강한 스트레스와 참가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특히 대부분의 일정관리 툴들은 개개인의 스마트폰에 연동되어 5분, 10분 전 알람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하루를 넘어 일주일간 어떤 일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준다. 사실 캘린더 프로그램은 기본 중 기본이다. 하지만, 이는 자기가 편할 때면 수시로 불러 동료들의 시간을 뺏는 리더의 일하는 방식을 일정 부분 변화시켰다. 또 직원들에게 일정한 준비시간과 업무 배치의 가시성(Visibility)을 제공했다.
더 고도화된 프로그램들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를 사용하고 안 하는 것은 다자간 합의의 몫이다. 디지털 툴이 일하는 방식 변화의 거의 유일한 솔루션이라 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눈에 보이는 변화와 편리성이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을 도입해 일하는 방식을 바꾸겠다는 주장에 난색을 표하는 기업과 구성원들이 새로운 툴에 적응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기술은 이미 충분히 인간의 저항을 고려해 더욱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바로 이것이다. 아무런 혜택과 무기도 제공하지 않고 그저 일하는 방식을 바꾸라 외치는 일은 실현 가능성이 낮을 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일방적 강요다. 또, 최근 너무나 많은 기업이 이미 이런 디지털 툴들을 가지고 더욱 높은 생산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작은 스타트업이 거대 기업의 경쟁상대로 하루아침에 등극하고, 또 이를 뛰어넘는데 디지털이 핵심인 세상을 살고 있다.
변화가 필수인 시대. 필자가 지난겨울 한 여행지에서 보게 된 인상 깊은 글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I have to change to stay the s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