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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수 Dec 18. 2019

경영자 양성의 메카, GE에서 아마존으로

  국내 대기업의 연말 임원인사가 한창이다. 정기 인사발령의 형태로 전체 조직의 임원을 위촉하고 이 과정에서 조직 전략 방향에 따른 실행 구조 만들어가는 큰 의사결정이 계속되고 있다. 상당 수의 대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신사업과 신시장, 젊고 민첩한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그 최고 책임자를 새로운 얼굴로 교체하거나 재배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30대 여성 임원이, 글로벌 비즈니스의 첨병이, 디지털 전쟁의 전문가들이 리더로 선임되는 광경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지면을 채우고 있다. 

  이런 변화의 시기,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Amazon has become America’s CEO Factory’라는 제목의 WSJ 기사다. 아마존을 7년이나 다니고 베리숍(Verishop)을 창업한 CEO 케이트(Cate Khan)가 직접 쓴 글로, 최근 미국의 CEO 사관학교로 아마존이 급부상했다는 내용이다. 국내에도 아마존 관련 서적과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매출 성장과 사업 영역 확대뿐 아니라,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주가, 최근에는 한국 배송이 가능한 제품 라인업으로 필자 같은 소비자부터 기업인, 투자자까지 아마존의 공세에 상당한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문득 2000년대 후반, 경제연구소 재직 당시 국내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에는 GE와 IBM이 빠지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10년, 15년 전만 하더라도 GE는 미국의 경영자 양성소였고, IBM은 성공적인 변화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두 기업 모두 글로벌 150개국 이상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수행해 왔으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 현대 등이 앞 다투어 그들의 경영방식을 배우고자 했었다. 상대적으로 조사가 많이 된 GE와 IBM의 리더 양성, 인사제도와 아마존의 그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과연 어떻게 아마존이 새로운 CEO 사관학교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이에 여러 자료와 필자가 연구했던 두 기업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GE와 아마존의 리더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산업과 경제에 막강한 임팩트를 끼칠 수 있었는지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단, GE의 Session C, 9 Block Matrix를 비롯해 8:2:1 강제 배분으로 진행되는 끊임없는 구조조정 등이나, 
아마존의 피자 2판 원칙, 6페이지 보고서 기반 회의, 바레이져 등의 개별적인 인사 프랙티스를 깊이 다루지는 않겠다. 


  우선 아마존과 GE가 미국의 CEO 사관학교로 활약할 수 있었던 주요 특징들을 몇 가지 기준에 따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두 기업이 성장을 이룬 방식과 성공 방정식이 다른 만큼 이를 감안해 본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1.    민첩성, 스피드를 핵심으로 한 사업가형 리더, 아마존

  우선 아마존이 운영해온 사업의 히스토리를 들여다보면, 인터넷 기업으로서의 순발력, 민첩함, 스타트업 정신 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종류의 사업적 확장을 이루었고, 다루는 제품과 서비스의 영역은 지금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2013년 필자가 시애틀을 방문해 만나 본 아마존 직원들의 EVP(Employee Value Proposition)는 어떤 영역이든 새로운 기회를 탐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감이 올 것이다. 아마존 리더들은 다양한 영역과 분야에서 시도 때도 없는 생존 검증을 받으며 스피드와 실행력을 바탕으로 성과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아마존과 함께 붙어 다니는 단어 중 하나가 가혹한 피드백과 극도의 성과주의인데 그야말로 '정글'이라는 이야기가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마존이 추구하는 Day 1 정신을 기반으로 세계 65만 명이 넘는 직원을 보유하지만, 스타트업 같이 운영되기를 희망하는 제프 베조스에 바람과 같이 아마존 리더들은 작은 조직(피자 2판 원리)을 자유자재로 운영하며 수많은 부서와 협업을 통한 성과 창출, 고객 집착증과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끊임없는 혁신과 실행을 매일 같이 경험한다. Deploy & Roll-back은 그야말로 Tech 기업과 온라인 플랫폼에 어울리는 실행 방식이다. 디자인 씽킹 방식과 유사하게 고객의 니즈에서 시작해 빠르게 시도하고(Quick Prototype), 수정사항을 신속하게 업데이트(Course Correct) 해가며 혁신을 거듭해 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 그 유명한 플라이 휠 효과를 실현하고, 매 의사결정의 순간에 14가지 리더십 원칙(14 Leadership Principles)이 더해져 아마존 형 리더가 탄생하는 것이다. 아마존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이름은 아마존에서 떠난 리더들이 아마존의 일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을 다른 회사에 가서도 일부 그대로 전파하는 데서 생긴 말이다. 그야말로 전파자, 옹호자, 선도자(Evangelist)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2.    거대 조직의 효율적 운영, 혁신을 기반으로 대형화/산업화를 이끄는 관리형 리더, GE

  GE의 대표 사업군을 보자면 엔진, 항공, 에너지, 의료기기, 금융 등 B2B 비즈니스 일색이다. 대표 제품군도 터빈에서부터 발전기, 엔진, 의료기기 등 제조 기반의 산업 장비들이 많고, 그 특성상 대규모 수주 계약을 기반으로 판매 이후 유지보수까지 상당 기간에 걸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들이다. 물론 최근 산업장비의 IoT 통신 플랫폼 및 스마트 팩토리 구축 등에 집중하기 위한 GE Digital을 설립 후 Digital 기술 영역으로 확대를 꾀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 역시 B2B 비즈니스 특성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B2B는 고객과의 장기간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단 도입이 되고 나면 제품 수명이 길고, 고객 비즈니스의 든든한 인프라를 채워주는 제품과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한 번 문제가 생기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공기의 엔진이 멈춘다거나, 발전소의 터빈이 잠시라도 쉬는 날엔 엄청난 자원과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제조가 그 기반이 된다는 점도 유의할 만하다. 대규모 장치 산업에 단위 제품의 크기나 수량도 상당하기 때문에 효율성과 정확성이 핵심이다. 6 Sigma로 대표되는 불량 제로화와 제품 혁신을 산업화(Scale up)하는 역량은 GE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리더 양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GE의 제품과 산업의 특성을 들여다보면 어떤 리더가 필요한지 자명해진다. 신중함, 정확성 그리고 무엇보다 신뢰감이 있는 리더여야만 비즈니스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영역이다. GE는 잭 웰치, 제프리 이멜트 등 최고의 CEO가 거대 조직을 이끌며, ‘자신의 시간의 80%를 사람 찾는데 쓴다’고 할 정도로 인재 발굴과 양성에 열을 올린 기업이다. 단 10년 전만 해도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평가제도에서 강제배분(forced ranking) 방식을 사용했고,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Succession Planning)을 보유한 회사는 어디든 GE의 Session C와 9 Block Matrix를 참고했다.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어세스먼트 센터(Assessment Center) 역시 GE의 크로톤빌 연수소의 프로그램이 가장 유명하지 않은가.

  고객과의 트랙 레코드, 비즈니스 임팩트, B2B 상 장기간 사업 효과를 발생하는 점들을 모두 고려해 이 사람이 리더로 성장할 만한 자질을 가졌는지, 가졌다면 어떻게 이 큰 조직을 이끌 수 있을지 차근차근 알아가야 할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 GE의 특성을 고려해야만 했다. 특히 조직관리에 있어서는 거대 조직을 효율적,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Rule & Guideline을 가지고, 큰 의사결정을 하는 연습을 수도 없이 해가며 성장하도록 지원한다. 잭 웰치는 사업 선택에 있어서 빠르게 검증하고, 안될 것 같다 싶으면 바로 팔아버리거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유명하다. 리더로 양성되면서 이와 같이 중요한 의사결정의 연습이 필수적이다. 

  GE CAS(Corporate Audit Staff) 조직을 기억할 것이다. 세계를 돌며 주 100시간 이상 일하고 경영 진단과 전략을 점검하는 정예조직이다. 밸류체인 상 어디 어디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어떤 사항들을 개선하면 되는지에 대한 트레이닝을 반복하고, 업에 대한 이해도를 극대화시켜 10년 만에 정규 임원을 만드는 그야말로 패스트트랙(Fast Track) 제도다. 업무 강도로도 유명했지만, 제조기반 거대 기업의 경영관리에 특화된 인력을 조기 발굴해 리더로 키우는 부트캠프였던 것이다. 


  3.    아마존이 CEO 양성소가 된 또 하나의 이유, 스타트업 생태계

  아마존이 요즘 시대 CEO 양성소가 된 또 하나의 이유 중 하나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꾸려진 탄탄한 스타트업 생태계 덕분이다. 아마존 리더들의 특성을 들여다보자면 Tech. 관련 뛰어난 지식, 집착에 가까운 데이터 중독, 혁신 기술을 활용한 신사업 등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앞에서도 언급했듯 다양한 기능과 사업을 담당하며 성장한 경력 경로로 인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도전하고 이를 사업화하여 실행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도 외부 시장에서는 장점으로 꼽힌다. 

  이런 강점 역량들이 오늘날 미국을 움직이는 10~20살짜리 IT 공룡들(Facebook, Google, Amazon 등)과, 수도 없이 태어나는 새로운 기업들에 딱 필요한 인재로 낙점을 받고 있다. 또, 자신들이 사업을 하며 새롭게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미 서부에서 과감한 창업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리더들이 계속해 바깥세상으로 진출하고 있다. 

  아마존 출신 리더들은 지금까지 직접 CEO가 되어 창업을 했거나, 걸출한 스타트업의 주요 보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많다. 데이터 시각화에 특화된 태블로, E-Commerce의 시초 그루폰, 최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위워크를 비롯해, 훌루, 베리숍, 심플, 리플리 등의 기업들은 모두 아마존 출신 CEO가 경영을 도맡아 진행 중이다. 

  GE의 경우 임원이나, 리더급의 퇴직 후 창업을 얼마나 했는지와 관련한 자료가 많지 않아 이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명세를 탄 GE의 임원들은 대부분 큰 기업의 요직이나 경영진, 나아가 CEO로 움직인 케이스가 많다. 이런 사례들을 찾아보자면 3M, 보잉, 홈디포, 인텔, 하니웰 등 대부분 유사 산업군의 대기업들이다. B2B의 특성이 있기도 하겠지만, 이미 큰 기업의 활력을 되찾고, 비효율을 제거하여 새로운 원기(Vital)를 불어넣는데 GE 출신 리더들이 적임이라는 것은 2010년 초반만 해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또, GE는 장기근속 후에도 회사의 기술 고문(Advisory)으로 활약하는 경우도 많다. B2B 고객이 필연적으로 GE의 시니어 리더들과 오랜 기간의 인연을 갖게 되기 때문에 이들의 퇴직은 고객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선배들의 관계와 인연이 부드럽게 전수되기 위한 Alumni Program도 GE Capital에서 시작되었다. 


  두 기업 리더 양성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단연 압도적인 업무량이 눈에 들어온다. 필자가 직접 인터뷰해본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은 하나같이 아마존을 ‘악명 높다(Notorious)’고 평했다. 업무량, 업무 강도 모두 상당하다는 것이다. 재택근무가 없거나 자율출근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출근 시간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지만, 해 내야 할 업무의 강도와 난이도, 최고 수준의 동료들 사이에서 느끼는 엄청난 동료 압박(Peer Pressure), 무언가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사명감과 무게감이 어마어마하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GE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난 GE 사람들은 대부분 강도 높은 업무와 이를 통한 성장을 그들의 자랑스러움으로 여겼다. 


  많은 리더가 각 기업의 가치와 철학을 이해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특화된 사람으로 양성된다. 또, 리더는 조직, 그리고 조직문화 그 자체 아닌가. 그야말로 기업의 걸어 다니는 광고판 역할을 하게 되는 CEO, 임원들을 키워내는 기업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미국의 경제, 사회, 기업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여전히 30~40년 된 전통 기업, 대기업의 힘이 큰 우리나라와 달리 10살, 20살 된 젊은 기술 기업이 전체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는 역동성이 부러워지는 대목이다. 며칠 전 11번째 유니콘 스타트업의 탄생을 알리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 역시 스타트업의 리더들이 경제를 주도하는 수많은 경영자가 되는 케이스가 나와, CEO 사관학교의 명예를 얻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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