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4박 5일
옛날 재즈 음악을 들어보면 운명이란 주제가 꽤 많이 등장한다. 인생은 더러운 책이다, 변덕스러운 손가락이다, 운명 갖고 장난치지 마라, 대충 이런 내용이다. 그 당시 미국 남부에서 태어난 흑인들은 많은 선택권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햇볕이 드는 거리를 걸으라고 했다. 힘든 노동을 하고 차별을 당해도 가만히 세상을 보면 왓 어 원더풀 월드이다.
재즈의 베이스가 된 “열두 마디 블루스”는 큰 코드 진행이 정해져 있다. 1도로 안정적인 시작, 중간에 잠시 4도로 올렸다가 곧바로 1도로 복귀, 마지막은 5도에서 1도로 내려가는 진행으로 마무리된다. 정해진 틀 안에서 다양한 악기 구성, 변주된 멜로디, 연주자의 소울로 다른 노래를 만들어낸다. 심지어 그들은 같은 노래도 다르게 들리게 만든다. 창작이 아니라 해석에 집중함으로써. 운명이 아니라 현재를 바라봄으로써.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어렸을 때 미리 정해진다. 앞으로 나한테 일어날 기쁜 일 슬픈 일 다 그 범주 안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 프레임에서 ‘여행’이란 무엇인가. 내 삶 밖 색다른 경험을 부여함과 동시에 내 삶의 한계를 깨닫게 해주는 아이러니한 존재이다. 뉴올리언스에서 검보를 먹고 길거리 재즈를 들으면서 머리 한쪽으로는 이런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평생 느낄 수 없다. 내 유년기는 샛별분식 떡볶이와 유희왕 카드 그리고 지오디 3집이었으니까. 나의 언어는 그들의 언어와 다르다.
우리는 정해진 언어와 배정받은 삶 속에서 다른 세계를 느낄 수 없는 것일까. 같은 언어에도 다른 진심이 담길 수 없을까. 이번 여행을 통해 뉴올리언스의 대답을 들은 것 같다. 재즈를 탄생시킨 뮤지션들 그리고 오늘까지 전통을 시켜주고 있는 주민들. 5일 동안 쨍쨍했던 햇볕. 덕분에 좋은 여행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