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ther of three on a parent night
정신없는 초등학생들의 입학식과 개학식을 마친 지 3주 정도가 지난 이 시점. 학부모 총회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엄마에게는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소중한 한 시간,
어떤 엄마에게는 일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속상한 한 시간,
어떤 엄마에게는 아이 반 다른 엄마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귀한 오후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야말로 체력전이 될 체육시간이다.
다음은 ISTJ 파워 워킹맘이 학부모 총회를 위해 정리한 생각들이다.
세 명의 아이 그리고 수업은 단 한 시간, 5교시.
한 시간이라 했지만 실제 수업시간은 총 45분.
각각 15분씩으로 나눠서 참관할 수 있지만 교실마다 거리가 있어서 이동시간으로 최대 3분으로 잡아도 한 명당 사실상 12분이 최대치이다.
일단 첫째와 둘째는 같은 건물에 있으니 두 명의 수업을 먼저 참관하고 막내는 아무래도 처음 입학이니 남는 이동시간까지 몰아주어 20분 정도 수업을 보자. 그리고 선생님께도 인사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퇴근했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나에게로 와서는 묻는다.
피지컬로는 무조건 일빠, 첫째: 엄마, 우리 반에 올 거죠?
로지컬로는 항상 일빠, 둘째: 솔직히 엄마, 우리 반에 와야지. 내가 발표 좀 잘할 예정이거든?
크리티컬로 그냥 일빠, 셋째: 엄마, 저는 나의 꿈 발표할 건데요? 제 꿈 궁금하잖아요.
그러고 나서는 왜 본인 반에 와야 하는지 PR 및 설득을 하기 시작한다.
마음만은 음유시인 첫째: 아니거든? 나는 시 낭송할 건데 준비 많이 했거든?
냅다 영어 하는 이중국적자, 둘째: 나는 영어로 발표할 거거든? I like my family.
동생의 영어가 웃긴 미국 출생 시인, 첫째: 그 정도는 나도 말할 줄 알거든? 나는 내가 지은 시를 낭송할 건데?
결국 잼민이 등장, 둘째: 그런 거 안 궁금하쥬? 시, 별로 재미없쥬? 오빠 시는 booooo (야유의 소리)
고래 싸움에 등 안 터지는 눈치 빠른 새우, 셋째: (속삭이며) 저는 1학년 2반입니다.
엄마: 아, 그만 싸워. 세 명한테 똑같이 갈 거야. 누구한테 먼저 갈지 순서를 정해야 하니까 가위바위보 해.
가위바위보도 사실 실력이다, 이긴 둘째: 내가 이김 우하하.
눈치만 빠른 줄 알았는데 머리도 좋은 새우, 셋째: (속삭이며) 저는 마지막에 오세요! 끝나고 같이 가요 (윙크)
사실상 내가 미리 구상해 놓은 동선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다시 동선을 생각하고 내일을 기약하는데 초등학교 알림이 하나 "띠링" 온다.
이동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된 것을 알게 해 주는 알림 문자.
수업 끝나고 학부모 면담이 같이 진행될 예정이란다.
사실상 수업이 45분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에 있는 학부모 면담이다.
선생님과 눈도장 한 번 더 찍을 수 있는 학부모 면담. 포스트 코로나로 사실상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줄었다.
뭐, 코로나 시기에는 더욱이 선생님을 만나 뵙기 어려웠지만 그 이후로 모든 소통의 수단은 'e알리미'나 '하이클래스' 같은 어플이기 때문에 일 년에 많아봐야 두 번 정도 면담이 있고 그중 하나가 학부모 총회가 된 것이다.
사실 엄마가 한 번 더 얼굴을 비춘다고 선생님이 아이를 차별하거나 특별히 더 예뻐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 때문에 바쁜 엄마라도
아이들의 학업과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적어도 엄마로서 양심은 있는,
학교생활에 문제없도록 집에서도 열심히 교육하겠다는,
나의 굳은 결심의 마음을 선생님께 비추는,
바쁜 죄인 엄마의 죄스러운 마음을 표현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나의 최종 동선은 이렇다.
둘째 수업 -> 이동 (1분) -> 첫째 수업 -> 이동 (3분) -> 막내 수업 -> 막내 선생님 뵙기 -> 이동 (3분) -> 둘째 선생님 뵙기 -> 이동 (1분) -> 첫째 선생님 뵙기 -> 회사로 복귀
이동 거리를 최대로 잡되, 아이 수업과 면담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려면 달려야한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수업 중이니 복도에서는 조용히 보폭은 최대한 넓고 빠르게 걸어야 한다.
둘째는 영어 수업이었다.
아이들 모두 좋아하는 것을 "I like ___"하고 말하는데 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family'라고 말하자
뒤에 발표한 아이들도 모두 한 마음을 가진 가족처럼 좋아하는 것은 바로 '패밀리'로 통일되어 버린 것이다. 똑같은 건 또 싫어하는 우리 둘째.
준비해 온 문장에 약간의 향신료를 추가한다.
노는 물이 다른 둘째: I like my family and parents. (가족만 좋았는데 부모도 포함하여 가족애 강조)
엄마 미소로 바라보는 엄마: ^_^
겨울 방학 때부터 영어 단어 외우기 시작했는데 A부터 Z까지 각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영어 단어를 각 5개 이상 말하고 쓸 수 있는 아이는 p에서 배웠던 단어를 하나 끄집어내어 발표를 한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렸을 때는 모국어는 확실하게 하고 이중 국어를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경험에서 나온 교육방식이 조금이나마 빛을 발했던 것 같아서 뿌듯했다.
뿌듯한 마음을 안고 다음 수업으로 이동한다.
(TV를 안 봐서 아는 게 다 옛날 예능) 런닝맨, 무한도전, 동고동락, 출발 드림팀 같은 예능 프로에서 보면 달릴 때 브금(BGM)으로 The Ventures의 Hawaii Five-O 깔아주던데
이 글에서는 브금을 첨부하는 건 불가능하니 자체 자막으로 깔아본다.
빠빠빠빠 빠 빰 빠빠빠 빠 빰
빠빠빠빠 빠 빰/ 빠빠빠 빠 빰/
빠빠라 빠빠 빠라 빠 빰
첫째 아이의 수업은 국어 수업이었다.
아이들이 자신이 지은 시를 낭송하는 시간이었는데
어떤 아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고양이의 수명이 짧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러나는 시를,
어떤 아이는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야구공의 문양을 사람이 모여있는 것처럼 표현한 시를,
어떤 아이는 산에서 만난 고양이가 호랑이 같았던 경험을 '호양이'라고 표현한 시를 낭송해 주었다.
우리 아이도 손을 번쩍 든다.
죽은 물고기에 대한 슬픔을 화석으로 표현하여
죽었지만 항상 같이 있는 것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그리고 스케치북에 각 행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낭송하며 영화 '러브액츄얼리'처럼 프레젠테이션을 하였다.
칭찬은 하돼 뼈도 같이 때리시는 선생님: 우와, 아이디어가 너무 좋다! 그거 그리느라 수업시간에 그렇게 바빴구나? ^ㅡ^
땀을 흘리며 엄마 미소로 바라보는 엄마: ^_^;
빠빠빠빠 빠 빰 빠빠빠 빠 빰
빠빠빠빠 빠 빰/ 빠빠빠 빠 빰/
빠빠라 빠빠 빠라 빠 빰
막내의 수업은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꿈을 이미 다 이야기하였고
엄마가 언제 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던 막내는,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복도 창문에 걸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두 눈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교실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엄마를 발견하기 전에는 축 늘어져 있다가 발견하고 나서는 비축해 두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막둥이...
이 보여주기식 사회에 일원으로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7살 아이가 기특하기도 하면서 씁쓸하다 (푸핫).
예전같이 학년마다 학부모 총회를 각기 다른 시간에 하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가
'아참... 그러면 점심시간이 한 시간이 아니라 반나절이라 반차를 써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내년에도 우리 집 세 아이를 위한 45분의 학부모 총회는 이렇게 정신없이 바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