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경하던 세계, 그리고 내가 만들어 갈 세계

6/29 Day 58 - 페루 쿠스코

by Seanly

이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나즈카에 대해서는 알기도 했고, 역사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 기반이 되었던 건, 어릴 적 일요일이면 방영하던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였다. 이 프로그램은 내게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에 호기심을 심어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미지와 의문, 가설들을 포함한 세계 7대 불가사의라며 지칭하던 몇 가지들 등 항상 내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곤 했다. 음모론과 미스터리라는 호기심을 심히 자극하던 요소 중에서도 내 심금을 울리던 것은 대표적으로 마추픽추, 이스터 섬, 그리고 나즈카 문양이었다. 이 세 가지는 남미 여행을 기획하면서 꼭 방문하여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것들이었다. 외계인이나 이런 천문학적인 가설이 아닌, 인간이 이루어낸 문명의 조각이라는 가정하에 그 실제의 모습이 얼마나 기이하고 경이롭기에 믿기 힘든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영역을 뛰어넘은 문명 혹은 흔적들은 내가 얼마나 상식 밖을 나서는데 도움이 될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에도 있었다. 그 첫 단계는, 바로 오늘 내가 찾아간 나즈카의 문양이었다.


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매체들이 내게 미쳤던 영향과 문화가 내 삶에 미치는 영향들이었다. 나의 유년시절은 감히 <무한도전>의 세대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무한도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라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나 <1박 2일> 등 도 마찬가지다. 매체들은 어느덧 내 추억에 뿌리를 내려, 어릴 적 보았던 무언가를 좇게 만들고, 찾게 만든다. 이번 여행에서 <무한도전>의 자메이카 편도, <서프라이즈>의 나즈카, 마추픽추, 이스터 섬, 마야와 잉카, 그리고 아즈텍 문명 등, 가지는 못 했지만 <무한도전>의 배달의 무도 편에 나온 칠레의 라면 집도 가보고 싶었을 만큼 어릴 적 내게 남은 강렬한 기억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1박 2일>에서 모닥불에 앉아 다 같이 뜨거운 감자의 고백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은 나에게 낭만이 되어 아직도 여행지에서 노래를 흥얼거릴 때 설레게 만든다. 거론되지 않은 모든 프로그램을 보았던 나의 기억들이 하나 둘 쌓여 지금 내가 추구하는 낭만 혹은 호기심을 만든 것이 아닐까. 이러한 것들이 나를 뜨겁게 만들었기에 이 직업이 힘든 것임을 알아도 한 발자국씩 내딛게 만든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 부력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이 말을 이 먼 타지에 와서야 가슴 깊숙하게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흔히 10년 전만 하여도, 우리나라는 해외여행을 흔하게 가는 나라는 아니었다. 배낭여행이 스펙이 되어버릴 정도였으나, 어느새 해외로 많이 나서기 시작했고 또 정착을 하는 사람도 여행을 하는 사람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늘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를 모르는 사람들도 존재하였고, 나라의 이름만 알고 있는 경우도 다수였다. 우릴 보고 중국인 혹은 일본인들로 오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한국의 문화가 세계에 하나둘씩 이름을 새겨 나가고 있다. 넷플릭스 작품들의 흥행도, K-POP이라 칭하는 노래들도, 세계인의 스포츠 축구까지도 한국인들의 문화들이 세계 각지에서 꽃 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풍의 바람을 맞은 건 그들뿐만 아니라, 한국인인 우리 모두이다. 오히려 남미에 내려와서는 중국이나 일본인으로 오해받는 것이 아닌 한국인이냐며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그들은 우리를 만나면 한국의 문화를 너무 사랑한다며 열변을 토해내기도 했다. 또, 우리의 문화를 너무 사랑해주기도 했다. 나는 그저 국적이 한국인일 뿐이었지만 한국 문화라는 주제로 이야기도 가능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된 계기였다. 우리만 아는, 우리만 재밌는 것이 아닌 세계 어디를 가든 이것이 나의 작품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작품들을 만나고, 만들고 싶었다. 쓰라렸던 나의 첫 상업 영화인 <길복순>도 본 외국인들이 참 많았고, 그것을 만들었다는 것에 나를 굉장히 신기해하며 관심을 가져하기도 했다.


이제 시작의 물꼬를 텄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더 발전할 것이고, 우리의 문화는 세계 모든 곳에 꽃 피울 것이다. 그리고 그 주역에 나도 함께 할 것이다. 다음 여행을 떠나갈 땐, 더 많은 자부심과 더 많은 자신감으로 한국을 등에 업고 걸어가고 싶다. 우리의 자주적인 문화를 꽃피운다면,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높은 문화의 힘을 우리 몸소 체감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또 그날이 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난 내가 하는 일이 자랑스럽고, 멋있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일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우리 또한 그 문화를 소비하고 알리는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