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Day 56 - 페루 나즈카
버기 투어, 파라카스 국립공원 투어를 마치고 대망의 나즈카를 가는 날이 왔다. 처음엔 나즈카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경비행기를 따로 예약해서 타고 아레키파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며칠간 고민을 해보고 아레키파를 찾아본 결과 나의 결론은 이러했다. 아레키파를 건너뛰고 바로 쿠스코로 가는 것! 제일 큰 이유는, 이 일행들과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람 형은 현재 와라즈에 가 있고 리마에서 비행기 타고 쿠스코로 합류하기로 했고 진 누나는 어제 쿠스코 행을 출발했다. 이들은 사전에 어느 정도 일정을 맞추기 왔지만 나는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기에 나와는 일정이 조금 달랐다. 하지만, 와카치나에서 느낀 셋의 시너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이 벅찬 기분을 조금 더 느껴보고 싶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강력한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특히, 가장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컸기 때문에도 있었다. 아레키파가 주는 설렘보다 이들과 함께 하는 내일이 더 설렜기에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따로 이동하지 않고 여기서 투어를 통해 나즈카를 경비행기 포함해서 즐기고 온 후 바로 쿠스코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나즈카 경비행기 탑승이 오전 시간대여서, 역시나 오늘도 이른 시간에 눈을 떠야만 했다. 원치 않는 미라클 모닝의 삶은 언제나 고된 일이었지만, 그래도 예전부터 꼭 내 눈으로 보고 싶던 나즈카 문양을 보러 갈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했다. 나즈카의 경비행기는 다른 이들에게 충고를 많이 받았는데, 주된 내용은 멀미에 관한 내용이었다. 문양을 보여주기 위해 격하게 꺾는 것과 함께 경비행기라는 자체 패시브 때문에 멀미가 많이 난다고 했다. 아침도 먹지 말란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사나이 김시현 멀미는 조심하되 조식은 놓칠 수 없지! 진 누나에게 붙이는 멀미 패치를 받아서 패치를 붙이고는 호기롭게 조식을 먹었다. 그래도 양심 상(?) 팬케이크가 아닌 계란 스크램블과 과일, 커피만 간단하게 먹고 숙소를 나섰다.
집합 장소에 가니 콜롬비아 부부가 계셨고, 뒤이어 프랑스에서 온 새드릭이 합류를 했다. 우리는 넷이서 투어사가 부른 택시를 타고 나즈카로 이동을 했다. 투어 벤이 아닌 택시에 의아했는데, 이때 싸함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무튼 평화롭게 2시간 30분가량 달려 나즈카에 도착을 했다. 그곳에 가니 경비행기에 같이 탑승할 일본인 타쿠야도 있었다. 총 5명이서 경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우린 경비행기 탑승을 위한 수속을 밟았다. 우선 간단하게 여권 검사를 하고 무게 중심이 중요한 경비행기 특성상 몸무게를 쟀다. 여행 나오기 전보다 3킬로나 빠진 내 몸무게를 확인하니, 괜히 마음이 아팠다. 아마 미라클 모닝이 2킬로는 더 빼놨지 않았을까 싶었다. 수속을 밟은 후에는 세금을 두 개를 직접 내야 했는데, 하나는 국가에 내는 경비행기 탑승에 대한 세금, 그리고 하나는 나즈카 관광세였다. 이래저래 경비행기 투어비와 세금까지 하니 100달러 정도 했다. 그렇게 세금 모두를 내고 조금 후인 10시 비행 예정이었으나, 아침에 비가 왔던 탓이었는지 한 시간씩 밀려 11시 타임에 탑승을 했다.
여타 공항처럼 짐 검사와 몸 검사 한 번 후에 경비행기 장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경비행기 앞에서 기념 촬영을 마친 후에 체중에 맞춰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맨 뒷 줄에 나 혼자만 타게 되어서 나는 왼쪽 오른쪽 모두 볼 수 있는 행운이 내려졌다. 혹 멀미하여 실수하지 않을까 작은 걱정과 함께 이륙을 준비했다. 경비행기 느낌 물씬 나는 헤드셋까지 껴주니 괜히 설렘이 가득해졌다. 나즈카 문양도 문양이지만, 경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가 신난 상태였다. 헤드셋에서 나오는 부기장의 말소리는 내가 요원이라도 된 듯한 기분까지 주었다. 그렇게 경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렸고 이윽고 하늘을 날았다.
비행 후에 창문에 얼굴을 대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혹시 하나라도 놓칠까 온 집중을 다 했다. 총 17개의 문양을 30~40분간 보는 것이었는데, 사실 대표적인 몇 문양을 제외하고는 엥? 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후에 물어보니 나만 느낀 건 아니었고 나와 같이 탄 모든 이들이 느꼈던 감정이었다. 가이드 맵에 나온 삐죽한 문양의 친구들은 시원하게 보지 못한 채로 인사를 하는 캐릭터 모양으로 갔다. 신기하게도 땅에 그어진 게 아니라 산 위에 그려진 듯 보였다. 맨 땅에서도 정교하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산 위에서 그려낼 수 있었을까 신기했다. 어린아이의 그림 같기도 한 이 모습은 합성이라도 한 듯 뚜렷하게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 원숭이 모양으로 넘어갔다. 오! 이것 또한 굉장히 뚜렷하게 잘 보였다. 생각보다 작게 느껴졌지만, 확실히 원숭이와 특유의 빙글 뱅글 꼬리 모양도 있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모양들이 시작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콘도르부터 다양한 새와, 거미, 산호 등 대차로운 모양들과 비행기에서 바라보았음에도 크게 느껴지는 것부터 아기자기한 그림들까지 모두 보였다. 나는 좌, 우를 왔다 갔다 몸을 바삐 움직이며 두 번씩 구경을 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까, 웬만한 것들을 다 보아서 긴장이 풀렸던 것인지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놀이기구를 탈 때, 떨어질 때의 느낌이 30분 동안 계속되니 멀미약을 붙였음에도 멀미하는 느낌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모든 것들을 보아서 사고(?)가 나기 전에 착륙을 할 수 있었다. 내리고 보니, 다들 나와 비슷해 보였다. 몇 명은 멀쩡해 보였으나 몇 명은 가슴팍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보아 증상이 비슷한 것 같았다. 속은 울렁거려도, 나의 오랜 소망이었던 문양들을 직접 보니 괜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나의 퀘스트를 이룬 느낌이랄까.
참 신기했다. 어떻게 그 그림을 다 그렸을까. 어떻게 그렇게 반듯하고 깔끔하게 그림들을 그려냈으며 또 어떻게 확인을 했을까. 무슨 용도로 만들었던 것일까. 그저 단순히 그림 놀이라기엔 규모가 너무 컸다. 그 시기에 비행 기술도 없었고 주변에 고층도 없었을 텐데 어떤 지시하에 그렇게 깔끔한 그림들을 그려낼 수 있었을지 신기했다. 그리고 궁금한 건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던 것일까였다. 또한 분명 확인 못할 그림들을 그리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 그림들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도 궁금했다. 그 무엇 하나 시원하게 풀린 것이 없었지만, 또 그러기에 미스터리라고 불린 게 아닐까 싶다. 제일 신기한 건 거대한 폭의 새 그림과 산에 그려진 캐릭터의 그림이었다. 미지의 땅이라 불렸던 아메리카 신대륙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들이 많아 재미있다. 이 대륙으로 여행 오길 잘했어!
우린 비행이 끝나고 다시 와카치나로 데려다줄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알고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투어니 끝나면 기사분과 차량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고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 채 있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기에 일행들을 따라다녔는데, 그 일행분들이 비행회사 측이랑 이야기를 하더니 비행회사에 속한 벤을 안내해 주었다. 아, 이 벤이 와카치나까지 가는 것인가? 알고 보니, 나랑 새드릭(일정을 같이 한 프랑스 친구)만 와카치나로 가고 나머지는 이동하지 않고 나즈카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벤을 타고 나즈카 시내에서 우리를 내려주더니, 콜렉티보 타는 곳을 알려주고 와카치나도 아닌 이카(와카치나는 이카에서 차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한다.)까지만 가는 것이고 거기서는 다시 알아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콜렉티보 값은 회사 측에서 내주었는데, 내가 예상한 것과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아마, 투어라기보다는 경비행기 예매 대행 정도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을 모아서 택시를 예약해 주는 것까지가 일반적인 것이고 돌아오는 것은 각자 오는 것이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안내 정도는 해주는 듯하다.
하, 미리 설명을 해주었다면 이해가 됐을 텐데 이걸 당일에 길에서 들으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 혼자였다면 많이 당황스러웠겠지만, 그래도 일행인 새드릭이 있으니 우린 어쩔 수 없지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알겠다고 했다. 콜렉티보를 타기 전 나즈카 경비행기 멤버들끼리 점심을 먹기로 했다. 대강 기사분에게 추천을 받은 식당으로 갔다. 스페인어와 영어가 가능한 새드릭과 콜롬비아 부부분들의 도움으로 점심 메뉴를 정하고 우린 음식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투어를 하면서 좋은 점은 투어가 끝나면 같이 여행을 한 사람들과 친밀감과 함께 연대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저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을 같이 있었던 것이면서도 여행지에서 만나 그런 건지, 괜히 더 정이 갔다. 영어로 하니 훨씬 어리숙한 표현들과 단순한 감정표현만 됨에도 불구하고 뭐가 그리도 웃긴 지 서로 얼굴만 봐도 깔깔거리며 웃곤 했다.
그렇게 음식이 나왔는데, 한 접시가 무슨 2인분 양으로 엄청나게 나왔다. 가격만 보고 생각보다 가격대가 있네라고 생각했지만 양을 보니 그 생각이 쏙 들어갔다.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양이었다. 나는 닭가슴살 부위를 튀긴 치킨과 감자튀김을 먹었는데 배고팠음에도 불구하고 감자튀김까지는 다 먹지 못했다. 여긴 양이 많은 걸까 닭이 컸던 걸까. 배를 잔뜩 내놓고 나서야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콜롬비아 부부는 여기서 남아 하루 있다가 아레키파로 가고, 일본인 타쿠야는 나즈카에서 쿠스코로 이동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내가 이카에서 타고 쿠스코로 갈 때 나즈카를 들렀다 가는 루트였는데, 같은 버스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새드릭은 나와 같이 이카로 이동 후에 와카치나로 들어가서 나는 쿠스코로, 새드릭은 아레키파로 가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여행의 안녕을 기원해 주고 타쿠야는 조금 있다 보자며 웃으면서 떠났다.
새드릭과 같이 콜렉티보 터미널로 가서 차에 탑승을 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채워져야 출발하는 특성상, 30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좀 차고 나서 출발을 했다. 문제는 길 가다가도 끊임없이 호객행위를 한다는 것. 그래, 이 사람도 업이고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이해해야지. 싶다 가도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무슨 나즈카 시내를 한 시간 동안 벗어나지를 못했다. 가다가 서서 이야기하고, 주유하고, 다시 서서 호객 행위하고, 커피 한 잔 사 오더니, 또다시 호객 행위하고. 돈을 더 주더라도 버스 타고 올라가는 게 더 속 편했을 것 같았다.
그렇게 2시간 30분 거리를 4시간 30분을 걸려 이카에 도착을 했다. 나와 새드릭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도망치듯 콜렉티보에서 내렸다. 우리 둘 다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같이 택시 타고 들어갔다가 짐을 챙기고 한 시간 뒤에 다시 만나서 택시를 셰어 하기로 약속을 했다. 내가 어제 진 누나에게 “누나, 너무 일정 빡빡한 거 아니야? 그러다 병 나”라고 했건만 이건 뭐, 내 일정이 더 빡빡해졌다. 원래는 3~4시 정도에 도착한다고 해서 숙소에서 쉬다가 나가려고 일부러 체크아웃도 안 했는데. 숙소에 도착하니 6시 30분이었다.
하, 일단은 씻고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한 시간가량 전투적으로 씻어내고, 짐을 챙기고 새드릭을 만났다. 8시 30분 차였던 새드릭과 9시였던 나는 그렇게 와카치나를 떠나 각자의 갈 길로 가는 이카의 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콜렉티보에서 고생한 탓이었을까, 우린 서로를 이해한다는 듯한 깊은 눈의 대화를 나누고 건강하라며 쿠스코에서 볼 수 있으면 보자라는 말과 함께 인사를 했다.
생각해 보면, ‘쉬엄쉬엄 가자’라는 생각으로 와카치나의 일정을 여유롭게 잡았지만, 그 일정에 모든 투어를 집어넣어 결과적으로 의도치 않게 바쁜 매일을 보냈다. 하지만, 바쁘게 보낸 탓이었을까. 얻은 것은 굉장히 많았다. 람 형과의 만남과 함께 칠레의 아타카마까지 동행을 구한 것. 그리고 사막의 일몰과 함께 액티비티도 하고, 와카치나의 야경도 구경하고, 각종 동물들과, 이색적인 사막의 바다를 보고, 또 고대하던 나즈카의 문양들과 좋은 사람들을 마주했던 것.
여행은 늘 이렇다. 끝나고 나면 더 아련하고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몰랐던 감정들까지도 올라오고, 평범한 줄 알았던 하루가 실은 굉장히 뜻깊은 날이 되기도 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는가. 꽤나 힘든 나날이었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 제 3자가 되어 보니, 너무도 값진 하루들의 연속이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느껴지는 이 시간은 여행이 마치고 난 뒤에 찾아오는 또 다른 여행인가 보다. 이래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까지가 여행이라고 하는 것일까. 앞으로 나의 여행들은 많이 남았지만, 와카치나에서 즐겼던 여행은 꽤나 짙은 여운으로 남아,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큰 의미로 남을 것 같다.
그렇게 아름답다던 잉카의 도시 쿠스코에서의 하루들은 어떠할까, 내가 기대했던 마추픽추는 어떠할까, 또 이 동행들과의 하루들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지나온 시간의 아쉬움보다는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이카에서 쿠스코까지 약 18시간의 버스. 부디 무사히 도착해 아름다운 빛나는 잉카의 도시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