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갈라파고스와 이질적인 파라카스 국립공원

6/26 Day 55 - 페루 파라카스

by Seanly

이카 근방에 있는 파라카스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가난한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는 바예스타 섬과 사막 옆에 펼쳐진 바다, 파라카스 국립공원이 있다. 파라카스에서 개인적으로 다닐 수도 있지만, 어차피 배도 예약해서 타야 하고 국립공원도 돌아다녀야 하기에 와카치나에서 투어로 예약을 했다. 본래 혼자 가는 것이었으나, 갈라파고스 아웃 티켓을 구하지 못해 갈라파고스를 가지 못했던 진 누나를 꼬드겨 함께 가기로 했다.


첫 행선지는 바예스타 섬이었다. 이곳이 가난한 갈라파고스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갈라파고스에서 볼 수 있는 물개와, 바다표범 등 다양한 동물들이 있지만, 비교적 저렴한 돈으로 볼 수 있기에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은 갈라파고스 대신 이곳에 온다며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본래 원조는 이길 수 없는 법. 가난한 대신, 갈라파고스에 비교할 바는 못 되기 때문에 일부 여행자들은 이 별명을 딱히 공감하지 않는다고 한다. 파라카스가 더 주된 목적이었고, 바예스타는 같이 갈 수 있는 사안이었기에 딱히 갈라파고스를 기대하고 가지 않아 나는 꽤나 가성비 가득한 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투어는 어째선지 항상 이른 아침에 시작을 한다. 피곤하게도 말이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대충 준비를 하고 6시 30분에 호스텔 앞으로 온 벤을 타고 여정을 떠났다. 진 누나와 나는 전 날 와카치나 버기 투어에서 보드를 탔는데, 보드를 잘 타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모래 바닥에 몇 번이고 구른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모래여서 아프지 않았으나 마치 교통사고처럼 다음 날 엄청난 근육통으로 찾아왔다. 온몸이 쑤시고 근육이 경직된 느낌이었다. 뼈 사이사이가 뻐근한 느낌에 아침 일찍 이동하니 피곤함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영감님들처럼 ‘아이고, 아이고’만 읊어대면서 벤에서 불편한 몸을 실었다. 꽤나 낡은 벤이어서 시트는 숨이 죽었으며 덕분에 우리의 엉덩이도 죽어났다. 하지만 피곤함 앞에 장사 없다고 차에 타자마자 바예스타 섬으로 보트 선착장에 도착할 때까지 눈 한 번 못 뜨고 기절을 했다.


도착했다는 가이드의 말에 눈을 비비며 진 누나에게 건넨 첫마디는 ‘누나, 수학여행 같지 않아?’였다. 뭔가 차에 이끌려 도착해서 잠도 덜 깬 눈으로 어딘가 향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수학여행 버스에서 내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원하고, 내가 신청해서, 내 발로 간 곳인데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컨디션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날도 흐린 날이었다. 벤에서 내려 기지개를 켠 후 사람들을 따라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이때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보트를 탄다는 건 즉슨 바다를 가르며 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는 것인데 이걸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미에서 느낀 보트의 경험상 더운 나라임에도 엄청 시원했다는 것은 나름 쌀쌀한 이 지역에서는 추울 수 있다는 건데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와 진 누나는 구명조끼를 패딩 조끼라도 되는 것 마냥 구명조끼에 의지하며 추위를 가르며 배를 탔다. 자가 최면도 통하지 않는 추위였으나, 내 마음을 녹인 것은 귀엽고 깜찍 뽀짝 한 동물들이었다. 신기하게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펭귄들이 바다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멍청하게 생긴 것이 사랑받는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항상 동물원에서만 봤지, 바다에서 직접 수영하는 것은 처음 보는데 꽤나 호쾌하게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돌고래가 두세 마리씩 떼를 지어 수영을 했다. 물 밖을 나오면 사람들이 환호하고 다시 들어가면 고개를 돌려가며 찾다가 다시 나오면 환호하는 돌고래 쇼가 아닌 인간 쇼 같은 풍경이 꽤나 웃겼다. 물론 나도 그 무리들 중 일부였다. 똑똑한 돌고래들이 우리의 재롱이라도 보길 원하듯 보트 주변에서 퍼포먼스를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선박장 앞에서 펭귄과 돌고래를 본 후 본격적으로 바예스타 섬으로 떠났다. 바예스타 섬은 보트로 크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주변 파도가 거칠고 암벽에 부딪힌 물이 빠지는 양의 편차가 커서 가까이 붙는 게 어려웠다. 상륙은 따로 하지 않고 보트로 쭉 둘러보는데, 주변에 펠리컨부터 시작해서 물개와 바다사자도 보였다. 물개는 수영을 마치고 암벽 위를 오르는데 매끈한 빡빡이 같은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물개의 배를 한 번 통통 쳐보고 싶다는 점. 바다사자들은 잠을 자느라 바빴다. 자리를 바꿀 때를 제외하고는 거진 잠만 자는 모습만 보였다. 동물들 뿐만 아니라 낙차가 크고 동굴처럼 크게 구멍이 뚫린 섬 자체의 모습도 꽤나 멋있었다. 멋있고 귀여운 풍경 덕인지, 찬 바람 덕인지 잠에서 깨어난 우리는 눈이 말똥 해진 상태로 선착장에 다시 도착할 수 있었다.


선착장에서 버스로 조금 더 가니 파라카스 국립공원에 도착을 했다. 사진에서 보던 사막이 이어지다 사암 절벽 바로 옆에 펼쳐진 바다는 꽤나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가이드는 돌로 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바다 옆이라 염분이 쌓여 바닥을 긁어내면 소금이 나온다며 소금을 보여주었다. 그저 돌바닥인 줄 알았는데, 소금으로 덮여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맛보려 했으나, 바닥에 있는 소금은 우유니에서만 맛 보기로 하고 자리를 옮겼다. 이 투어에 아쉬운 것이라면 볼 스팟이 많아서인 건지 꽤나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한적하게 있고 싶었는데!


언덕 위에서 바다와 절벽이 만나는 것을 구경했다면, 다음 스팟은 그 절벽으로 가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버기카를 빌려서 가이드와 함께 다니는 사람도 있고, 우리처럼 벤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버기카가 조금 더 낭만이 있어 보였으나 흐린 날 + 꽤 쌀쌀한 날씨를 생각하니 차라리 벤이 실용적이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그곳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플라밍고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가이드를 따라갔다. 동물들을 위해 가까이 가지는 않고 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봤는데 정말 플라밍고들이 물이 고인 곳에서 부리를 쪼으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아니 플라밍고가 이런데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먹을 거라곤 없어 보이는데, 플라밍고가 이렇게 흔히 길 가다가 보이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하긴 서식지가 달라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을 뿐 이들에겐 그리 신기하지 않은 존재 같았다. 하지만 핑크빛 플라밍고는 칙칙한 사막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괜히 셀럽이 아니구나 너!


그렇게 동물들과 국립공원 몇 곳을 둘러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일부 식당들을 갔어야 했는데, 가격이 너무 염치가 없으면 돌아가서 먹기로 하고 식당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한 곳에서 피스코 샤워를 웰컴 드링크로 주면서 60 솔(21,200원 정도)에 두 가지 메뉴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래, 기운 차릴 겸 그냥 먹자하며 진 누나와 나는 들어가서 메뉴를 주문을 했다. 믹스 세비체와 믹스 튀김을 시켰는데 영어를 하지 못하는 직원과 의사소통에 오류가 났던 것인지 믹스 튀김만 두 개가 나온 것이다. 바꾸기도 귀찮으니 그냥 먹자! 했는데 갑자기 믹스 세비체가 두 그릇이 더 나온 것이다. 우린 두 가지 메뉴를 나눠먹으려고 했는데, 이들이 인당 두 가지 메뉴를 준 것이다. 인당 10,000 원돈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이러면 예상 밖인데? 하며 세비체는 손 안 대고 영어가 되는 직원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그러더니 그 직원 왈 2가지 메뉴 60 솔이 아니라 인당 2개씩 시키면 60 솔에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즉슨 4가지 메뉴가 60 솔이었던 것이다. 어? 처음에 의심이 갔지만 이미 나왔고 직원도 저렇게 말했으니 그냥 배부르게 먹고 보자! 라며 우린 각자 두 그릇씩 밥을 먹었다. 계산을 해보니 정말 60 솔만 받아갔다. 아니 관광지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의문만 남긴 저렴한 점심을 먹고 밖을 나서니 흐릿했던 날씨가 개고 하늘이 쨍해졌다. 밥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날씨도 화창해졌겠다. 다시 살아난 우리는 이제야 제대로 된 파라카스의 진가를 마주했다.


흐릿했던 날씨에 가렸던 이곳이 날씨가 화창해지니, 바닷물도 푸릇해졌고 붉은 절벽과 반대되니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여타 많은 바다를 봤고, 바다와 함께 여러 가지 풍경을 보았지만 이 풍경은 또 참신했다. 어떻게 바다 옆에 있는데 이런 척박한 땅이 된 것일까. 그리고 겹겹이 레이어를 쌓으며 층이 쌓인 사암은 꽤나 입체적보여 더욱 신기했다. 우리의 죽었던 텐션이 날씨와 함께 되살아난 것이다.


식사한 후 자리를 옮겨 파라카스의 하이라이트인 국립공원 안에 있는 해수욕장에 도착을 했다. 높게 사암 절벽으로 둘러싸이고, 저 푸른 바다에서 깊게도 밀려오는 파도는 해수욕장처럼 모래를 쌓았고 우린 광합성을 즐기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너무 아름답고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색채라곤 모래색과 붉은 절벽의 색밖에 없는 세상에 밝고 푸른 바다가 들어온 느낌이었다. 육지에 가까워질수록 깊은 푸른색은 에메랄드 빛이 되었고, 맑고 투명하게 빛났다. <태양의 후예> 그리스 촬영지인 자킨토스 섬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숲이 없어서 더 이질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역시 바다 멍이 세상 제일 평온했다. 40여 분간을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모래의 촉감을 느끼며, 이색적인 경치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피곤하고 다운된 텐션이 날씨와 함께 살아나고, 풍경과 함께 정점을 찍었다. 또다시 신나 버린 우리는 조잘조잘 떠들다가도, 역시 숙소로 돌아갈 때는 기절한 상태로 엉덩이를 혹사시키며 호스텔에 도착을 했다. 진 누나는 오늘 쿠스코로 바로 떠나고, 나는 내일 나스카 문양을 보기 위한 경비행기 투어까지 하고 쿠스코로 가기로 했다. 골골거리는 진 누나를 보내고,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침대에 누워 기절을 했다. 왜냐면 내일도 투어가 6시 30분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투어, 너무 행복하지만 좀 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