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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Trouble!

신혼여행 에피소드 1

by 션표 seanpyo


'생투앙! 프랑스인의 근검절약 정신과 유럽의 정취, 문화를 느끼게 하는 곳'


책에 소개된 단 한 줄의 설명을 보고 아내와 함께 찾아간 파리 북부 생투앙 벼룩시장!

이곳을 찾은 이유는 파리 서민들의 자잘한 일상의 소품 같은 볼거리와 쇼핑의 재미를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소소한 기대와는 달리, 매트로4호선의 종점에 다다를수록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고 어느새 지하철 안은 험악하고 무뚝뚝하게 보이는 흑인들로 가득했다. 내릴 곳을 지나쳐 아프리카에 도착한 것이 아닐까 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파리의 북부로 가는 지하철은 특히 위험하니 밤에는 주의해야 합니다' 파리 생활 5년 차 유학생의 충고가 떠올랐다. 그는...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는 항상 가방이나 소지품을 주의하고 절대 긴장을 늦춰선 안된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어쨌거나, 우린 종점에서 내려 행인들의 꼬리를 쫓아갔다. 파리 시내의 지하철에 악취가 난다지만 클리낭쿠트(Port e de Clignancourt) 역에 비하면 그저 향기로운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역사 내에 가득한 화장실 냄새를 피해 화생방 훈련을 하듯 급히 출구를 찾아 지상으로 올라갔다. 냄새도 냄새지만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폐쇄된 공간을 어서 탈출하고 싶어서 였다.


예쁜 건물들이 즐비한 루브르에서 지하로 내려간 우리가 다시 하늘과 만난 클리낭쿠트역 주변의 풍경은 갱영화에서 본듯한 할렘(Harlem)의 모습이었다. 옛 청계고가 주변을 떠오르게 하는 허름한 건물들 아래 거리를 뒤덮은 검은 피부색의 행렬은 파리 한복판에서 만나기 힘든 기묘한 풍경이었다. 의도치 않게 어느 다큐멘터리 속에 밀려나온 기분이었다. 물론, 이런 의외의 상황은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라지만 최소한 신혼여행 중에 만나고 싶지는 않은 풍경이었다.



맥도널드


그 낯선 곳에서 발견한 맥도널드 간판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는 매장 주변 빨간 유니폼을 입은 알바생(주로 여자)이 할인전단물을 나눠주지만, 몸에 딱 붙는 나시를 입고 입에 담배를 문 흑인 청년이 헤드폰으로 흘러나오는 비트를 온몸으로 시각화하며 쿠폰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가 우리를 발견한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동양인은 우리뿐이었고 멀뚱히 서서 맥도널드와 우리 사이의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그가 우리 쪽으로 슥~ 다가오자 아내는 내손을 꽉 쥐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전단지를 건넸다. '오빠 받아~' '오빠 받아~'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아내가 등 뒤에서 상기된 목소리로 나를 재촉했다.


'프랑스인의 근검 절약 정신과 유럽의 정취와 문화를 느끼게 하는 곳'

가이드북을 펼쳐 인용글을 상기하며 아내를 안심시킨 뒤, 벼룩시장을 찾아 몇 걸음 옮기던 순간... 칠판을 거칠게 스치는 분필 소음을 내며 경찰차 한 대가 급정거를 했고, 황급히 내린 경찰들이 우리 코앞을 지나쳐 길 구가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던 아랍인 노숙자를 연행해 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난 그제야 들고 있던 가이드 북과 커다란 사진기를 가방에 슬그머니 넣고, 아내의 손을 꽉 잡은 채, 비장한 마음으로 어딘가 꼭꼭 숨어있을 프랑스인의 근검절약과 유럽의 정취를 찾아 골목여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