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홉스골 겨울여행 1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나는
우연히 일상의 귀퉁이에서 문밖으로 사라지는 길을 발견했다.
흔히 마주칠 수 없는, 영하 50도 홉스골의 겨울 왕국으로 난 길이었다. 나이 들어 손주에게 자랑할 수 있는 모험담을 만들기 위해 길을 나선 빌 브라이슨처럼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여행을 떠났다.
2019년 2월 어느 날 오후 4시 15분에 칭기즈칸공항에 도착했다. 러시아 모자를 쓴 직원이 비행기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쩍하는 소리와 함께 냉동창고의 한기가 비행기 안으로 들어왔다. ‘영하 37도’ 우리나라도 한겨울인데 두고 온 날씨가 따듯하게 기억되었다. 지레 겁을 먹고 공항을 나서기 전에 방한 준비를 마쳤다.
겨울 울란바토르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 겨울에 가장 공기가 나쁜 도시로 유명하다. 울란바토르는 겨울에 석탄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한 탓에 공기의 순환이 어려워 매캐한 연기가 도시에 가득하다. 울란바토르에서 하루를 보낸 우리는 작은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반, 북쪽 홉스골을 향해 떠났다.
우리는 단지 영하 50도의 혹독한 추위를 체험하기 위해 온 게 아니다. 우리 목적은 3가지다. 하나는 순록을 따라 유목하는 소수민족 차탕족을 만나는 것이다.
몽골에서 겨울에 가장 추운 아이막은 홉스골 아이막이다. 홉스골에는 20여 개의 솜이 있는데 그중 가장 추운 솜 3곳에 순록을 따라 유목하는 차탕족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2월 중순이 지나면 서북쪽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주소도 모르고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니 차탕족을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이번 여행 첫 버킷리스트에 넣었다.
두 번째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강을 만나는 것이다. 마지막은 몽골인들이 바다라 부르는 홉스골 호수가 꽁꽁 얼어붙은 풍경을 만나는 것이다.
무릉에서 출발한 지 1시간만에 차 한 대가 고장 났다. 고쳐 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새로운 차가 무릉에서 출발해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하기까지 3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야 했다. 영하 30도의 추위에 이름 없는 도로 위에서 조난 당한 것과 다름없지만 우리는 눈 밭에서 눈싸움을 하거나 사진을 찍으며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서히 추위가 느껴질 즈음 보드카를 들고 온 자화가 한 명 한 명 따라주며 말했다.
보드카를 마시면 이런 추위에 취하지 않고 몸도 따듯해집니다.
대낮에 푸르공 주점이 열렸다. 푸르공 한 대에 8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차 안이 따듯했다.
예정에 없던 시간을 보낸 우리는 해가 지고 나서야 울랑울 솜에 도착했다.
다행히 나무집은 따듯했고 우리는 한껏 기분이 달아올라 있었다. 오는 도중에 만난 노을 덕분이다. 눈 덮인 하얀 지평선도 좋았지만 분홍빛으로 물드는 저녁노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몽골은 여름이 아름답다지만 그 순간만큼은 주저함 없이 겨울 지평선의 손을 들어줄 정도였다. 그저 텅 빈 풍경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잠시 하얀 능선 아래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여행은 이제 시작이지만 이미 더 바라는 것이 없을 만큼 행복했다.
그날 밤 우리는 얼큰하게 취했다.
영하 50도 홉스골 겨울여행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