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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무한하다,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상상력이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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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우주 붐이 불기 시작한 지 대략 4~5년쯤 된 것 같다. 그동안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진전이 더딘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우주산업의 3대 꼭지에 해당하는 관측, 통신, 그리고 발사가 각각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번 짚어보자.


[관측]


우주개발을 이끈 건 인류에게 내재되어 있는 두 가지 본능이었다. ‘보이고 싶은 욕구’와 ‘보고 싶은 욕구’가 그것이다. 전자가 국위선양을 노린 달 선점 경쟁을 촉발했다면, 후자는 관측 위성의 개발로 이어졌다. 뉴스페이스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부터 이미 지구 관측은 우리 일상의 중요한 일부이자 실체가 있는 비즈니스로 존재해 왔다.


단, 다들 기대하고 있는 민간의 관측데이터 수요는 아직 본격적인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관측데이터의 주요 수요는 국방, 기후 관측 등 공공이 약 7~8할을 차지한다. 그 결과 과거부터 대정부 사업에 참여했던 업체들이 선점 효과를 누리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주 붐을 타 곳곳에서 생겨난 신생기업들은 탄소배출 모니터링 등 특정 수요에 특화하거나, 영상 분석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차별화를 위한 지점을 모색 중이다. 아직 설익었지만 아예 다른 무대를 노리는 VLEO (Very Low Earth Orbit) 서비스를 지향하는 업체들도 있다. (개인적으론 안전 보장 등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


관측은 본질적으로 데이터를 파는 사업이다. 영상의 양과 질에서 정면 승부가 어렵다면 후속작업에 해당하는 ‘분석’을 통해 특화를 노리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AI와 우주산업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이러한 배경 때문.


주목할 것은 스페이스X의 관측 시장 진출. 당장 띄워놓은 위성들에 카메라와 센서를 달기만 해도 시장을 송두리째 흔들고도 남을 것. 이미 미 정부와 정찰 네트워크 구축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신]


과거엔 몇몇 강대국의 전유물 내지 얼리어댑터들의 장난감처럼 여겨졌던 위성통신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아직은 초기적이지만 Direct-to-Device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도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주도 저궤도 통신사업이 수익성을 가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 바닥의 제왕인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가 혼자 빛나고 있을 뿐 그 외의 후발주자들은 아직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


당장 임박한 도전은 스페이스X와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스타링크는 마케팅 3 요소소인 QCD (Quality, Cost, Delivery) 모두 독보적인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경쟁자 중 ‘유일하게’ 독자 발사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성발사 및 교체가 자유롭고, 일찌감치 압도적인 스케일로 접근성 우위를 구축했으며, 앞의 두 가지 이유로 가격 경쟁력도 우위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요소는 발사체다. (그나마) 아마존의 카이퍼가 경쟁자로 꼽히는 건 풍부한 자금력도 있지만 블루오리진의 발사체에 의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더 크다. 다른 경쟁자들은 ‘남이 정해준 가격과 일정에만 위성을 쏠 수 있다’는 한계 안에 갇혀있다.


그렇다면 다른 업체들에겐 기회가 없는 걸까? 이대로 위성통신 시장은 MS가 PC 오피스 시장을 그렇게 했듯 스타링크가 장기독재하는 구조로 굳어지게 되는 걸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 보이는 건 아니다.


우선은 지정학적 위기를 맞아 빠르게 늘고 있는 국방 수요다. 개념은 달랐지만 과거에도 통신위성은 존재했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기 쉬운 ‘단극체제’의 시대에는 불필요한 투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스타링크의 가능성과 위협을 동시에 보여줬다. 영향력 기준 세계에서 한 손에 들어갈 게 분명한 푸틴도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를 어찌하지 못했다. 또한 세계는 한 개인이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용도로 사용하면 스타링크를 끄겠다’고 압박해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에 경악했다.


이젠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자기만의 스타링크를 갈구한다. 사업의 본질이 ‘공공 인프라’가 되면 신토불이 논리가 통한다. 스페이스X와 글로벌 시장을 놓고 경쟁할 순 없더라도 National Champion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네이버’와 ‘한글’도 비슷한 논리로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아직은 매우 초기적인 단계이지만, 미래엔 Direct-to-Device 서비스가 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바일은 위성통신보다 훨씬 더 큰 거대 사업이다. 모바일과 위성이 결합되는 과정에서 위성 사업자, 통신 사업자, 그리고 모바일 제조사 간에 사업의 헤게모니를 놓고 힘겨루기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줄을 잘 서서 판을 영리하게 구축하면 무적처럼 보이는 스타링크를 상대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 신생 기업이었던 MS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게임의 판도를 바꿔서 IBM으로부터 주도권을 뺏아왔다.


저궤도와 정지궤도의 장점을 접목한 다중궤도 서비스도 차별화 지점이 될 수 있다. 최근 저궤도의 장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지궤도 역시 특화 용도에 강점이 있다. 이미 둘의 시너지를 노린 인수합병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SES의 Intelsat 인수합병이 있다.


역사는 ‘반전의 드라마’로 가득하다. 위성으로 연결된 초연결의 미래, 그 주인공이 반드시 스페이스X일 것이라곤 장담할 수 없다. 저궤도 위성이 교체 주기가 짧다는 것도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단, 내일 반전의 드라마를 쓰려면 오늘 눈앞에 닥친 ‘현금 가뭄’을 잘 넘겨야 할 것이다. 군집위성은 구축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 고금리 고물가 시대에 어떻게 자본을 확보할 것인지, 위성통신 수요가 언제부터 상향 곡선을 탈 것인지를 정교하게 계산해서 외줄 타기를 잘한 업체에게만 기회가 올 것이다.


[발사]


올해는 유난히 신형 발사체의 데뷔가 잦았다. ULA의 Vulcan, 일본의 H3, 유럽의 아리안 6가 오랜 산고 끝에 데뷔전을 마쳤다. 블루오리진의 뉴 글렌도 데뷔전을 준비 중이다. 이 밖에 중국이 개발 중인 발사체도 세면 두 손으로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역시 스타십이다. 자타공인 인류 역사상 최강의 발사체인 이 괴물 같은 놈은 믿기지 않는 속도로 시험발사, 개량, 재발사를 반복하며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다. 물론 성능 검증이 끝난다고 곧바로 상용화가 시작되는 건 아니다. (여기엔 안전의 문제도 있지만, 지금 운영하고 있는 팰컨으로도 수요 대응이 가능하며 딱히 위협적인 경쟁자가 없는 게 더 크다.) 하지만 스타십이 등장하는 순간 시장은 공급 부족에서 공급 과잉으로 순식간에 반전될 가능성이 크다.


스페이스X를 제외한 발사체 업체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첫째로 스페이스X가 할 수 없는 (또는 굳이 하려고 하지 않는) 틈새시장에 맞춰 특화를 시도하는 방법이 있다. 신속한 발사를 세일즈 포인트로 강조하는 파이어플라이, 3DP의 Relativity 등이 그렇다. 둘째론 기술보다 비즈니스 모델로 승부하는 방법이다. 엔진 등 핵심부품을 판매하거나 위성 고객들을 위한 버스 플랫폼을 제공하는 등 수익 다각화를 노리는 업체가 늘고 있다.


[결론]


우주력의 전략적 의미는 갈수록 더 커질 전망이며, 우주 수요도 우 상향 성장세가 기대된다. 하지만 그 패턴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 대선을 비롯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우주’라는 기존의 틀을 넘어 통합적 사고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우주는 환상을 넘어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과학과 경영, 민수와 군수, 제조와 서비스, 국내와 해외, 지구와 우주의 구분을 넘나드는 시야가 필요하다.


온갖 변수 속에서 변하지 않는 상수도 있다. 결국 살아남는 건 최초나 최고가 아니라 최적이다. 스페이스X의 경쟁력이 압도적이지만 ‘관점’을 바꾸면 의외로 쉽게 답이 보일 수도 있다. 오로지 스타십 보다 좋은 발사체, 스타링크보다 많은 위성만 정답인 건 아니다.


우주는 무한하다,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상상력이다. 이미 남들이 하고 있는 걸 그대로 따라 하면 언제까지나 One of them일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Think Different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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