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술의 비대칭이 무너진 시대

헬기잡는 우크라이나 드론

by 셔니

'기술의 비대칭성이 무너진 시대'


최근 공개된, 우크라이나가 운영하는 FPV 드론이 러시아군의 Mi-28 헬기를 격추시키는 영상이다. FPV (First Person View) 드론은 기체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사람이 직접 실시간 조종하기 때문에 미션을 실황 중계하듯 보는 게 가능하다.



러시아 쪽도 ‘헬기가 강제로 착륙해야 했지만 대미지가 심하진 않았고 다친 승무원도 없다’ 고 평가절하할 뿐 공격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Mi-28는 아파치의 라이벌로 꼽히며 러시아의 주력 헬기로 그 명성이 높다. 90년대 후반엔 중국이 그 기술을 탐내 설계를 훔치려고 했다가 양국 간 외교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상 속 Mi-28에게서 ‘밤의 사냥꾼’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강인함은 찾아볼 수 없다. 수백억 원에 톤 급 무게의 Mi-28가 끽해야 수백만 원에 10kg도 되지 않을 드론의 공격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기계문명의 시대가 열리면서 전쟁의 승패는 경제력에 좌우되어 왔다. 더 크고 비싼 무기를 많이 가진 쪽이 승자가 됐다. 수 세기 동안 최첨단 공격 능력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오직 국가, 그것도 소수의 강대국만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자본, 노동과 달리 기술은 사용할수록 한계효용이 커지기 때문에 무한히 증폭되는 성격을 가진다. 이번 드론 사건은 기술의 비용이 지나치게 급감해 더 이상 기존 질서로 비대칭성에 의한 균형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 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젠 누구든지 약간의 시간과 창의력만 있으면 과거에는 개인 혼자선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됐다. 개인도 충분히 국가의 핵심 기능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앞으로 기술은 더욱 저렴하고 다루기 쉬워질 것이다. 드론은 한 가지 예시일 뿐이다. 스마트폰, 인공지능, 로봇, 소셜미디어 등 각종 뉴 테크의 발전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질서의 근간 그 자체를 흔들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사회구조의 변화로 이어진다. 총이 등장하면서 기사 계급이 몰락하고 봉건제가 끝장났다. 어쩌면 우리는 개개인의 잠재력이 극한으로 발휘되는 진정한 핵개인의 시대로 가는 갈림길 앞에 서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사회적 담론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드론 시장 CAGR xx%’라는 이야기만 들릴 뿐이다. (해당 영상 제작자도 무섭기보단 흥겨운 듯? BGM 선정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이키'의 방황,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