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가 보잉 텍사스 공장을 둘러보는 중이다. 가만, 보잉이라면 머스크의 경쟁사 아닌가?
해당 방문은 스페이스X가 아닌 트럼프 행정부, 정확히는 DOGE를 대표해 이뤄졌다. 좌초하고 있는 대통령 전용기 프로젝트의 진행 현황을 논의하는 게 목적. (부드럽게 말해서 ‘논의’인 것이지 사실상 ‘감사’라고 봐야 한다) 현재 프로젝트는 일정 지연과 약 3조 원에 달하는 비용 초과로 위기에 놓여있다. 이거 혹시… ‘필요 없는’ 부품들은 전부 빼라고 제안한 건 아니겠지?
2016년 12월, 트럼프는 ‘만일 가격이 $4B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발주를 취소할 것’이라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보잉이 원래 제안했던 가격은 $5.3B이었고 보험으로 원가정산계약이라는 조건도 붙어있었다. 하지만 기세 좋은 신임 행정부와 약 1년 간의 협상 끝에 $3.9B로 낮아진 가격에 확정가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만 해도, 적어도 겉으로는, 보잉은 회사 사정이 나쁘지 않았으며 따라서 개별 프로젝트의 사업성보단 미국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했을 것이다. 트럼프도 ‘거래의 기술’에 담긴 내용이 진짜로 먹힌다는 걸 보여주는 동시에 미국 납세자들을 위해 거둔 승리로 포장하는 효과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둘 다 만족한 윈-윈 거래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2025년, 전용기 도입은 트럼프와 보잉 모두에게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보잉이 비행기를 납품할 수 있는 건 빨라야 2029년이다. 이는 트럼프가 애착을 가지고 시작한 전용기 도입이 트럼프 2기가 끝난 이후에 마무리된다는 뜻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보잉 입장에서도 상대적으로 매출이 크지 않은, 하지만 손실은 막대한, 게다가 정치적 부담은 어마어마한 전용기 사업은 그저 ‘계륵’ 일뿐이다. 최근 몇 년 보잉은 창사 이래 최악의 시기를 겪었고, 2024년은 그 절정을 찍은 해였다. 737 Max 사고, 대규모 파업, 협력업체들의 부도 및 각종 소송, 내부고발자 문제, CEO 교체 및 대대적인 조직 개편, 스타라이너의 실패까지. 그동안 전용기 프로젝트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을 게 뻔하다.
하지만 트럼프가 돌아왔고, 여기에 머스크까지 DOGE의 감투를 쓰고 현장을 돌아다니는 건 보잉 입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올 1분기 안으로 세부 만회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과연 보잉이 이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계약 당시 회사를 이끌던 사람들은 이미 사라졌고, 뒷수습을 해야 하는 건 언제나 그렇듯 뒤에 온 사람들이다. 뭐… 안타깝지만 그게 세상의 이치. 위기가 기회라고, 이번 건을 잘 대응하면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동력 삼아 회사의 재기를 모색할 수 있을지도.
그건 그렇고, 머스크가 보잉을 ‘감사’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아마도 공개되지 않은 모습들은 이보다 훨씬 더 기묘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2018년에 누군가가 이런 미래를 예측했다면 아마도 광인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역사는 반전의 연속이라는 옛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