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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인정해야 문제가 풀린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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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를 꼽아야 한다면 뭐가 좋을까? 아마 ‘불확실성’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워낙 초현실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지다 보니 이제는 둔감 해질 지경이다. 단지 몇몇 나라의 선거 결과 때문에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다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는 매년 성장할 거고, 삶의 질은 점점 더 나아질 것이며, 젊어서 고생하면 평화로운 노년이 보장될 거라고 믿었다. 최저임금과 국민연금, 지하철 역간 거리와 전세 가격, 초등학생 철수가 세우는 새해 계획, 심지어 우리가 인생의 성공을 정의하는 잣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세상은 변했다. 다들 ‘올해가 최악이었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산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어떤 직업을 추천해야 할지 망설인다. 더 이상 내일을 담보로 빚을 끌어다 쓰면 안 된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유? 복합적이다. 고령화, 양극화, 환경오염, 한계점에 부딪친 생산성 개선, 신흥국의 부상으로 인한 공급 과잉 및 지정학적 갈등, 인공지능 등 인류의 실존을 위협하는 기술의 등장이 서로 부정적인 시너지를 일으키며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 결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약속들이 차례로 폐지되고 있다. 국민연금 축소, 제주도 투자이민, 전기세 인상, 고령층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시작일 뿐이다. ‘썰’ 취급을 받고 있는 여성 군복무나 기본소득, 심지어 화폐개혁도 진지하게 도마에 오르는 날이 올 것이다.


‘중력’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하나둘씩 부정당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불안에 빠졌고, 더 나아가 분노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불확실성의 상징으로 여기는 ‘얼굴’들은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첫째, 바뀐 세상을 인정하고 새로운 합의를 세우는 것이다. 고통과 좌절이 가득한 힘든 길이 될 것이다. 둘째, 내일을 담보로 끌어다 오늘을 버티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후자를 택해왔다. 현실을 애써 외면한 원죄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엘리트와 서민층, 기존 세대와 신세대, 진보와 보수가 다르지 않다. 희생을 각오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을 계속 외면하면 그 결과는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다들 위기를 말한다, 처방전도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 진통제 수준인 것처럼 보인다. 이제 성장률과 출산율, 일자리 00만 개 만들기, 국가경쟁력 몇 위 같은 목표는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실현 가능성을 논하기에 앞서 그게 정말 문제의 본질인지 잘 모르겠다.


그보단 불확실해진 세상을 인정하고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 꼭 지켜야 할 것, 앞으로 해나가야 할 것을 파고드는 논의를 듣고 싶다. 안으로 곪아가는데 겉에 후시딘을 발라 봤자 소용없고, 겨울이 왔는데 왜 선풍기 팔리지 않는지 고민해 봤자 답은 없다. 세상에 변했다, 이제 우리도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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