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격전’을 들어봤을 것이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전력은 프랑스의 그것만 못했다. 이러한 물량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구데리안’을 비롯한 소수의 나치 장교들이 구상한 속도전이 바로 전격전이다.
당시 전장은 참호와 철조망을 경계로 서로 길게 늘어져 누가 먼저 힘이 빠지는가를 겨루는 소모전이었다. 기관총의 등장으로 전면 돌격은 곧 자살행위라는 게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나치는 신병기인 탱크에서 기병의 후예, 현대판 기동전의 잠재력을 보았다. 탱크를 이용, 신속하게 한 곳을 집중 타격해 물량의 열세를 극복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는 말의 역할이 기계가 바뀌었을 뿐, 나폴레옹의 철학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었다. 반면 나폴레옹의 후예인 프랑스 군은 여전히 과거의 전통에 사로잡혀 철벽 방어선 (마지노선) 구축에 매달려 있었다.
이후의 양상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1차 세계대전 때처럼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참호전이 벌어질 것이란 예측과 달리 나치는 송곳처럼 병력을 집중해 마지노선을 우회해 넘어왔다. 국경선 전반에 걸쳐 흩어져 있었던 프랑스군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나치군을 막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막을 기회조차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빈틈을 찔렸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영내 깊숙이 나치 군이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워낙 긴 전선에 걸쳐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파리가 함락될 때까지도 부대의 재배치는 고사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중지도 모으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프랑스는 고작 6주 만에 나치의 수중에 떨어졌다. 프랑스는 대부분의 전력이 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속공에 급소를 찔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뭘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확실한 것과 어려운 것을 싫어하며, 새로운 걸 얻는 것보다 가지고 있던 걸 빼앗기는 데 민감하게 반응한다.
프랑스는 시간이 자기편이라는 안이함과 1세기 전 프로이센에게 영토를 빼앗긴 치욕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결과 이기기 위한 방법보단 가장 편하고 확실한 방법, 절대 지지 않을 방법만을 추구했다. 그들에겐 애초부터 독일에 역공을 가한다는 생각 따윈 없었다. 한치의 땅도 잃지 않는 것, 영국 등 우방이 합류할 때까지 버티는 게 목표였다.
프랑스군이 불확실성을 기피하는 문화는 전쟁 교리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 어떤 돌발 상황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여러 단계의 검증과 점검을 거쳐 ‘완벽하다’고 판단된 전술만 승인되었다. 이는 듣기론 그럴싸하지만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일체의 불확실성을 회피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은 군을 경직되게 만들었다.
나치의 돌격은 결코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았으며, 프랑스가 재빠르게 대응했다면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계획에 집착하느라 번번이 타이밍을 놓쳤다. 독일에겐 승리를 갈망하는 야수의 심장이 있었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못했다.
전쟁의 승부가 갈리는 건 사령부 책상이 아니라 전선이며, 돌발 상황에서 승부를 결정하는 요소들은 겉으론 잘 보이지 않는다. 치밀한 준비는 물론 필요하지만, ‘완벽한 계획’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저변에 깔려 있는 두려움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다들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시험공부나 다이어트를 할 때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계획 짜는데 열심이다. 진짜배기들은 그럴 시간에 당장 책을 펴거나 집 밖을 나가 줄넘기라도 하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