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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경쟁: 새우도 살 길을 찾아야 한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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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당의 경선 토론을 본 뒤 든 소감입니다 -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였다.


▪ 경제규모 1위이자 압도적 물량을 자랑하는 제조업

▪ 독보적인 군사력으로 전 세계의 전략적 요충지 및 통상 루트를 장악

▪ 초격차 기술력으로 기술 표준을 선점하고 혁신을 리드

▪ 온 세계가 미국 언어와 문화를 글로벌 표준으로 수용

▪ 미국의 소비주의와 민주주의가 동경의 대상이자 롤 모델로 자리 잡음

▪ 미국과 그 우방들이 만든 규칙과 국제기구들이 세계질서를 좌우함


21세기의 사분의 일이 지났다. 미국 패권의 현주소는 어떨까?


▪ 적어도 숫자상, 여전히 미국은 1등이다. 하지만 내실도 1등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실물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제조업은 중국이 압도적인 우위다. 금융, 서비스업, 몇몇 하이테크 업종에 과도하게 치우친 미국 경제에서 불길한 시그널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 힘을 투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하지만 불안 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 야성이 시들면서 양질의 인재를 군대에 모집하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 제조업의 쇠퇴가 전쟁수행 능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거라는 우려도 크다.


▪ 미국의 기술 패권은 아직 건재하다. 인공지능, 바이오, 디지털, 항공우주 분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Silicon Valley와 Venture Capital의 찰떡궁합은 용광로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이 압도적인 물량과 정부 주도 모델 특유의 무서운 추진력으로 쫓아오고 있다. 공교육 질 저하로 이 인해 더 이상 미국은 중국과 이민자 유입 없이 인력 풀로 경쟁하는 게 불가능하다. 중국이 매년 배출하는 이공계 인력은 200만 명이 넘는다.


▪ 부침을 거듭한 하드파워와 달리,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영어와 인터넷의 확산을 통해 꾸준히 확산되어 왔다. 가장 지독한 반미 테러리스트들조차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유튜브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시대다. 중국이 초강대국이 될 수 없을 거라는 근거로 언어의 한계를 꼽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 한땐 모두가 동경했던 아메리칸드림. 하지만 이젠 전성기만큼의 위상은 없는 듯하다. 미국의 교육, 의료, 양극화, 치안, 관료조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더 이상 소수의 편견이 아니다. 미국을 상징했던 개척정신과 다양성에 대한 관대함도 예전에 비해 그 빛이 덜하다.


▪ UN과 WTO는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다. 심지어 NATO마저도 시한부 운명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전히 미국은 1등 국가다. 하지만 20세기에 비해 지친 기색이 보이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되는 걸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낮은 에너지와 식량 자급률, 여전히 가난을 탈피하지 못한 수억 명의 빈곤층이 중국 경제의 발목을 붙들 것이다. 태생적으로 중국 경제는 외부 의존도를 낮추기 어려운 구조다. 설령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하더라도 실상 체감되는 위상은 미국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 중국의 군대는 반세기 가까이 실전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충성스러운 우방이나 든든한 해외 거점도 없다. 압도적인 규모로 주변국들을 압도하는 건 가능하겠지만 미국이 중동이나 중앙아시아를 타격한 것처럼 글로벌 스케일의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 중국이 싸구려를 만드는 나라라는 건 옛날이야기다. 이제 중국은 싸고 좋은 제품을 누구보다도 많이,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나라다. BYD와 DeepSeek는 중국의 기술력이 얼마나 일취월장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지적재산권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과 정부의 경계가 불투명한 중국이 Fast Follower를 넘어 Innovation Pioneer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 중국의 소프트파워는 미국은 물론 냉전 시절의 소련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이 주도하는 질서가 과연 얼마나 바깥 세계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까? 중국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마음으로 매료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설령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되더라도 중국이 일류 선진국이 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10억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미국 수준의 생활 수준을 누리기엔 지구는 너무 작다. 규모의 1등이 되는 건 가능할지 모르지만 온 세계의 모범 (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80년 이후에 태어난 우리는 미국 단극체제에 익숙하다. 그래서일까? 미래를 전망할 때 미국의 세계 패권이 유지되거나 아니면 중국이 제2의 미국이 되는 시나리오를 떠올릴 뿐 다른 시나리오에 대한 고민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20세기 말 미국이 누렸던 단극체제는 대단히 Rare 한 경우였다. 그 대단한 대영제국도 프랑스, 러시아, 프로이센 (훗날의 독일), 일본과 미국에 어느 정도 지분을 양보하고 나서야 비로소 세계를 경영할 수 있었다.


미중 대결은 어떻게 결론이 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는 ‘이렇게 가면 로마는 망한다’는 위기감을 토했지만, 막상 로마는 그 위기를 토대 삼아 팍스 로마나의 황금기를 일궜다. 패권을 놓고 영국, 프랑스가 독일과 격돌했지만 정작 그 열매를 딴 건 어부지리 한 미국이었다. 이처럼 역사는 언제나 반전의 연속이었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스케일보다 미국의 유연함과 자생력을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이 싸움의 결론이 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정학의 시대, 합종연횡의 지혜가 필요한 시대가 돌아왔다.


앞으로 펼쳐질 시대는 태평성대가 아닌 것은 물론이요 적과 아군이 분명했던 냉전의 재현도 아닐 것이다. 실리와 명분을 넘나들며 복잡한 방정식을 풀 수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지켜 나갈 것과 포기할 것, 분명하게 밝힐 것과 모호하게 감춰둘 것, 국제사회에 요구할 것과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게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 우리가 참고해야 할 시대는 냉전이 아니라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베스트 팔렌 조약 이후의 유럽이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나라에 이보다 더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가 있을까? 곧 있을 대선 토론에서 대한민국의 글로벌 포지셔닝 전략에 대한 주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길 기대한다, 오엑스 퀴즈가 아닌 다차원 방정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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