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속편의 조건

에일리언 어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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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울 때는 역시 공포물이 제격이다. 주말에 더위를 피해 볼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에일리언 어스’를 보게 되었다. 아직 모든 에피소드가 공개된 건 아니라 성급한 판단은 이르지만(혹여 용두사미로 끝날지도 모르니), 지금까지 공개된 분량만 두고 본다면 꽤 만족스럽다.


좋은 후속편을 만든다는 건 쉽지 않다.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면 관객들은 전작의 설정과 스토리,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선을 재현해주길 기대하기 마련이다. 원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애초에 속편을 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대가 충족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그 기대를 기분 좋게 배신당하길 은근히 원하는 게 인간의 심리다. 원작의 틀을 그대로 반복하면 평타는 칠 수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추억에 기대어 재판매하는 데 그칠 뿐이다. 그리고 그 추억이 소진되는 순간, 시리즈의 생명도 끝난다. ‘스크림’ 시리즈나, 리부트 전의 ‘007 시리즈’가 그 대표적 사례다.


그렇다고 원작의 기본 틀을 무시해버리면 그 또한 문제다. 관객의 기본적인 기대치를 지나치게 벗어나면, 관객은 농락당했다는 기분을 받게 된다. 이를테면 ‘조커 2’가 그랬다. ‘조커2’는 1편에서 스스로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노골적으로 조롱한다. 만약 전작이 없는 독립 작품이었다면 나름의 가치를 평가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작의 후광을 업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존 이야기를 유지하면서도 신선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얼핏 상반돼 보이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방법은 무엇일까? 흔히 생각하는 건 기존 서사를 스케일을 키워 반복하는 방식이지만 스케일이 반드시 신선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프레데터’ 시리즈는 스케일 확장으로 부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시리즈의 숨을 되살린 건, 스케일을 과감히 축소하고 신참 프레데터를 중세 신대륙으로 불러와 ‘사냥’이라는 본질만에 집중한 ‘프레이’였다.


탑골공원에서 바둑 훈수를 두는 심정으로 조언하자면 이렇다. “관객이 머리로는 놀라고, 가슴으로는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라.”


에일리언 시리즈의 기원인 1편은 1979년작이다. 반세기가 지난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여전히 다양한 분석이 이어지는 걸작이다. 이어서 만들어진 2편은 에일리언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액션 요소를 강화하며 또 다른 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3편은 전작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캐릭터들을 초반에 허무하게 퇴장시켜 감정선을 단절시켰다. 4편은 에일리언의 공포가 괴물 그 자체가 아니라, 괴물과 마주쳤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임을 망각하고 기괴한 분위기만 집착한 채 전혀 무섭지 않은 작품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 리플리 없이 이야기를 펼칠 자신이 없어, 유전자 복제라는 억지 설정으로 캐릭터를 되살렸다. 특유의 투지와 트라우마가 사라진 ‘복제품’이 관객에게 통할 거라 생각한 걸까? 두 영화는 이성적으로는 진부하게 느껴졌고 감정적으로는 이질적이었던 최악의 속편들이었다.


리들리 스콧이 복귀한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커버넌트’는 생명의 기원을 탐구하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을 취했다. 나름 성과는 있었지만, 시리즈를 사랑했던 관객에게는 혼란스러운 작품으로 남았다. 머리로는 신선했지만 원작의 감성을 재현하는 데에는 실패한 영화였다. 차라리 원작과의 연결을 끊은 독립 작품이었다면 더 나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방황하던 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건 ‘에일리언 로물루스’였다. 이 작품은 시리즈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출산의 공포’, ‘미지와 고립’, ‘괴물보다 무서운 인간의 사악함’, ‘자연의 위협을 극복하려고 만든 기술이 더 큰 위협이 된다’ 등 시리즈의 핵심 요소들을 놓치지 않았다. 현실의 이민자를 연상시키는 행성 거주민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고, 출산의 공포를 극대화한 괴물을 제노모프 대신 최종 보스로 내세우는 등 새로운 시도를 더했지만 어디까지나 원작의 기본 틀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 결과 기존 팬들의 만족과 신규 팬들을 모두 만족시킨 작품으로 남았다.


그리고 최초로 장편연화가 아닌 TV 시리즈로 만들어진 ‘에일리언 어스’.


‘에일리언 로물루스’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제작진은 이번에는 더욱 과감한 변주를 시도한다. 무대는 폐쇄된 우주선이 아니라 지구, 서사는 단순 생존극이 아니라 인류가 제노모프를 통제하려는 이야기로 변주되었다. 인간이 아닌 합성 인조인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기존과 완전히 다른 대결 구도를 보여줄 예정이다. 원작의 레퍼런스는 순간순간 팬서비스로 활용될 뿐, 상영시간 대부분은 새로운 세계관 구축에 집중한다.


그럼에도 기본 감정선은 원작에 충실하다. 주인공들의 전투력이 강해져 생존 서사는 다소 희미해졌지만 정체성의 혼란, 고립과 절망, 그리고 배신 등 원작 특유의 감정 결은 그대로다. 웨이랜드 대신 AI 기업 프로디지가 전면에 등장하고 세계관도 달라졌지만 ‘기득권과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라는 정서는 변하지 않았다.


‘에일리언 어스’는 무대, 배우, 스토리가 모두 달라져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울리는 감정은 원작의 뼈대를 충실히 이어간다. 남은 에피소드에서 완성도가 떨어져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이 더운 주말 볼 만한 미드를 찾는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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