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로 끝난 스페인의 중국 '어택땅'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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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강대국으로 부상한 스페인은 오스만 투르크(오늘날의 튀르키예)와 지중해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스페인은 어이가 없는 기획을 검토한 적이 있다. 오스만 투르크를 동서에서 동시에 압박하기위해 중국을 정복하겠다는 발상이었다.


당시 세 나라의 인구 규모는 다음과 같았다.


- 스페인: 약 1,500만 명

- 오스만 투르크: 약 3,000만 명

- 중국 명나라: 1억 명 이상


아마도 스페인은 중국의 규모를 몰랐던 것 같다. 만일 알고도 “잉카 제국을 무너뜨리는 데 수백 명의 전사면 충분했으니 중국도 가능하다”라고 기대했다면 이는 심각한 오판이었다. 중국의 기술력과 행정력은 잉카 제국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동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은 아니었던 것이 정작 일본에 대해서는 “수십만 명의 숙련된 전사를 동원할 수 있는 강대국”으로 평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일각의 주장에 따르면 중국인 해적들을 죽여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게 명나라의 국력을 과소평가한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문화의 차이였다(고대중국은 자국민이 현지법에 따라 처형되는 걸 왠만하면 눈감아주는 편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리에 대한 오판이었다. 중국과 오스만 사이의 거리가 막대하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그 사이 지역은 거대한 산맥과 사막, 초원으로 나뉘어 있으며 다양한 인종과 문화, 각종 정치 세력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렇게 먼 거리를 정복하고 안정적으로 보급까지 유지하는 건 21세기에도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적 고민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단계적 가설도 문제다. 스페인은 그저 전술적 편의만을 고려해 해안 점령 → 수도 장악 → 내륙 장악 → 외지 평정 후 오스만 공격이라는 직선적 계획을 세웠는데 여기에는 플랜 B가 전혀 없다.


스페인은 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의 역량에 대해서도 착각하고 있었다. 당시 이미 아메리카 경영, 네덜란드 반란, 프랑스와의 경쟁 등 여러 전선에서 소모되고 있었는데, 여기에 중국 정복까지 더하려 한 것은 그저 미친 짓이었다. 실제로 스페인은 16세기말부터 지속적으로 국가 파산을 겪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스페인의 어리석음을 비웃지만, 사실 이와 유사한 비현실적 구상은 지금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중동이 평화로워질 것이라거나, 에너지 상호의존이 러시아를 평화롭게 만들 것이라거나, 자유무역이 중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과연 스페인의 몽상과 크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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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낙관에 취해 지피지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미군은 자신들을 해방군이라 믿고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현지인들은 그들을 침략자로 보았다. 그 결과 종파와 부족 갈등이 폭발하며 주변국까지 자극했고, 혼란은 끝내 극심해졌다. 16세기의 스페인은 자신들의 막강한 수십만 보병대와 첨단 화승총이 지구 건너편 중국에서도 똑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했다.


둘째, 원대한 청사진에 집착해 직선적 가설만 세우는 것은 위험하다.


정책이나 전략은 현장의 돌발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목표 자체를 바꿀 용기도 있어야 한다. 2차대전에서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를 쉽게 점령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계획을 세웠지만, 전투가 길어지자 전선 전체가 꼬였다. 사상자가 백만 명에 육박했음에도 히틀러는 도시에 병적으로 집착했고, 결국 주력군 대부분을 잃고 패망으로 이어졌다.


셋째, 얻는 것과 동시에 잃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얻는 과정에서 반드시 대가와 포기가 따른다. 냉정한 성찰과 비용 대비 효과 분석 없이 덤벼든다면 그것은 그림 속의 떡을 좇는 것에 불과하다. 뭐든지 유행을 타면 밀물처럼 몰려갔다가 썰물처럼 빠지는 태세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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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중국 침공을 접었지만 스페인이 아시아에 대한 야욕을 접은 건 아니었다. 이들은 1590년대에 캄보니아를 공격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먼 거리로 고작 1천명 남짓을 투입하는 데 그쳤고 그나마도 전염병과 현지인들의 저항으로 대부분 사망했다. 당시 캄보디아의 인구는 200~300만 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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