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재앙은 전염된다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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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 인구 1,200만명. 문맹률 50% 이상

- 1인당 소득 2천불 내외

- (2024) 범죄폭력으로 최소 5천명 사망


도미니카공화국


- 인구 1,100만명

- 2022년에 1인당 소득 1만불 달성

- (2024) 관광객 천만 명 돌파


미국 앞마당인 카리브해에 있는 히스파니올라 섬을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 두 나라가 공유하고 있다. 콜럼버스가 첫 항해 때 도착한 역사적인 곳이다.


하나의 섬을 반씩 나눠 가진 두 나라는 좋으나 싫으나 운명을 함께 해야 할 단짝처럼 보인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좋지 않다. 단순히 불편한 동거를 넘어 원수 수준이다.


아이티는 생지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비참한 곳이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 전쟁과 공포정치, 미군 통치를 차례로 겪었다. 미군정이 끝난 이후에도 쿠데타와 정치깡패들의 횡포가 끊이지 않았다.


2024년, 아리엘 앙리 총리가 해외 순방을 떠난 사이에 갱단들이 수도의 교도소를 습격해 수천명의 죄수들이 탈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은 국가 주요 기관을 장악해 정부 기능을 마비시켰고, 총리는 귀국하지 못하고 미국에 머물고 있다. 쉽게 말해 아이티는 북한만큼 가난하고 파키스탄만큼 문맹률이 높으며 소말리아만큼 위험한 나라라고 보면 된다.


도미니카공화국도 처음에는 비슷한 길을 걸었다. 연이은 쿠데타로 나라는 엉망이었다. 1965년, 군부와 반쿠데타 세력 간 내전이 벌어지자 (도미니카 내전) 미국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수만 명의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두 나라의 운명은 극과 극으로 갈리기 시작했다. 아이티의 뒤발리에 부자(프랑수아 뒤발리에 1957~1971, 장클로드 뒤발리에 1971~1986)가 철저한 수탈형 독재자였던 반면 도미니카의 발라게르 대통령(1957~1996)은 권력을 유지하는 것 못지않게 국정에도 관심을 보인 개발형 독재자였다.


둘의 운명이 식민지 시대에 이미 결정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아이티는 땅이 풍요로워 노예 농장으로 개발되었으며, 독립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와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최초의 흑인 독립국가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이를 경계한 서구의 봉쇄와 뿌리깊은 인종혐오가 겹친 결과 자의반 타의반으로 글로벌 경제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반면 주로 목축업과 상업에 의존했던 도미니카 공화국은 스페인에게 ‘덜 중요한’ 식민지였다. 독립 과정도 비교적 순조로웠으며 이후에도 해외와 무난한 관계를 유지했다. 인종 구성 역시 아이티는 흑인 비중이 높은 반면 도미니카공화국은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몰라토’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떨어질 수 없는 이웃이자 같은 식민지 출신이니 잘 지내었으면 좋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불분명한 국경선과 인종 갈등으로 둘은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인구가 많은 아이티가 공격하는 쪽이었고, 아이티가 도미니카 공화국의 대부분을 지배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두 나라의 인구가 비슷하지만 과거에는 농작에 유리한 아이타가 몇 배나 체급이 컸다), 둘 사이에 마지막으로 벌어진 전쟁은 29년(1900~1929) 간 이어졌던 ‘우표전쟁’이다. 이쯤이면 가히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싫다고 외면하고 살 수 없는 게 이들의 운명이다.


도미니카공화국도 완벽한 나라는 아니지만 아이티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생계와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아이티를 떠나 도미니카로 향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최근 아이타가 갱단이 지배하는 나라로 전락하면서 생존을 위한 탈출이 급증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도미니카는 아이티인들을 값싼 노동령으로 부려왔다. 힘들고 저렴한 노동을 떠받치고 있으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노골적인 차별을 받아왔다.


도미니카는 아이티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걸 서슴지 않는다. 국경을 봉쇄하는 건 물론 수만 명의 아이티인을 불시에 강제 추방하는 일도 빈번하다. 아이티가 생필품 대부분을 도미니카에 의존하고 있고, 추방되는 아이티인 중 상당 수가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사람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논란의 소지가 크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보면 도미니카의 심정도 공감이 간다. 도미니카는 아이티를 위해 아이티 정부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도미니카의 교육, 의료 인프라의 상당한 비중이 아이티인들을 위해 쓰인다. 전혀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이는 이 골치덩어리를 언제까지 품고 살아야 하냐는 불만이 커질 법도 하다. 솔직히 아이티 문제는 도미니카가 혼자 부담하기는 너무 버겁다. 도미니카 국민들 사이에서 아이티인들 때문에 범죄와 전염병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번지면서 (왠지 익숙하다) 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들도 갈수록 발언이 과격해지고 있다.


절망과 증오는 전염된다. 어차피 도미니카가 아이티와 결별하는 건 불가능하다. 더럽고 위험하다고 벽을 세운다면 잠시 문제를 외면할 순 있겠지만 결국은 곪아 터져 더 큰 재앙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인간이란 살아남기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존재다. 괜히 병법에서도 적을 포위할 때 후퇴할 길을 터주어야 한다고 한 게 아니다. 현재 아이티에서는 인구의 절반인 500만 명이 기아 상태이며, 집을 잃은 실향민이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사고를 칠 광인이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앞마당 문제인 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딱히 개입하지 않고 있다. 올해 미국은 아이티인들에 대한 임시보호 지위를 종료하면서 입국을 차단했다. 국제사회도 중동과 우크라이나와 달리 자원도 없고 전략적 가치도 크지 않다는 이유로 아이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절망과 분노는 결국엔 터지게 되어 있다. 아무리 도미니카가 높은 벽을 쌓아도 그 파편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해안선을 넘어 더 먼 곳까지 날라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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