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미국과 중국만 알고, 가끔 유럽 소식만 챙겨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글로벌화가 뒷걸음질칠수록, 오히려 세계 곳곳을 더 세심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우리는 ‘일본해’가 왜 잘못된 표현인지,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주장이 왜 오해인지를 전 세계가 알아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는 미국과 한·중·일을 제외한 세계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서로 관계가 불편한 나라들을 - 이상한 동거를 이어가는 프레네미부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관계까지 – 주제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1편: 북아프리카의 휴전선]
알제리는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큰 나라다(사우디보다도 크다). 덕분에 인접한 국가도 많다. 동쪽으로 튀니지와 리비아, 남쪽으로 니제르와 말리, 서쪽으로 모로코와 서사하라가 위치한다. 이웃이 북적거리면 탈도 많기 마련인데, 그중 모로코와는 서로 숙적이다.
둘의 갈등은 식민 제국들이 뿌린 갈등의 씨앗이 시발점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두 나라는 제국들이 마음대로 그어 놓은 국경에 불만이 있었다. 결국 둘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하고 모래전쟁(1963~1964)을 벌였다. 이때 프랑스가 알제리를 견제하기 위해 모로코를 지원함으로써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잠시 이야기를 되돌리자면, 알제리와 프랑스의 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식민 통치 당시 프랑스는 알제리 현지인을 여러 차례에 걸쳐 조직적으로 학살했고, 마지막까지 알제리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전쟁까지 벌였다. 독립 과정에서의 알제리 측 사망자 수에 대해 알제리는 100만 명 이상, 프랑스 측은 50만 명 이하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어느 쪽이 사실이건 엄청난 숫자다. 냉전 때 알제리가 공산권 쪽으로 기울었던 것도 반프랑스 감정이 컸기 때문이다 (알제리와 최초로 수교를 맺은 나라가 북한이다). 지금도 알제리가 운용하고 있는 무기는 러시아산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최근에는 중국이 야금야금 진출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 모로코는 똑같이 식민 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친서방 경향이 강하다. 아마도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모로코는 1987년에 EU 가입을 신청하기도 했다.
모래전쟁이 끝난 뒤에도 둘의 라이벌리는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갈등의 무대는 서사하라 지역이다. 이곳을 통치하던 스페인이 물러나자 모로코는 과거 역사를 근거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군을 투입했다. 하지만 정작 현지인들은 300년 전 과거에 얽매여 모로코의 일부가 될 생각이 없었다 (“고려왕은 철령 이북을 내놓거라!”).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고, 양측의 지배 영역이 고착화된 지금도 간헐적인 무력 충돌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모로코는 확보한 지역의 경계에 약 3,000km의 모로코 장벽을 짓고 냉전 상태를 유지 중이다. 휴전선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시간은 모로코 편인 것처럼 보인다. 독립 세력이 세운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은 여전히 UN 미승인국으로 남아 있으며, 해안 지역을 포함해 대부분의 알짜배기 지역이 모로코의 지배하에 있다. 1976년 국제사법재판소가 모로코가 주장하는 역사적 연고가 소유권을 주장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중재는 큰 의미가 없다. 애매모호한 입장을 견지했던 미국도 2020년에 서사하라를 모로코령으로 인정했다. 원죄가 있는 유럽 국가들도 모로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추세다. 스페인은 2022년, 프랑스는 2023년에 모로코의 서사하라에 대한 권리를 조건부로나마 인정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사하라 문제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는 것은 이들을 후원하는 나라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서사하라는 약 50여 개의 국가와 공식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대부분 반미 국가들이다), 아프리카 연합의 공식 회원국이다. 그중 알제리가 이들의 든든한 후원국으로 남아 있다. 서사하라의 임시 정부도 알제리에 위치한다.
이쯤 되면 총질만 하지 않을 뿐 전쟁 중인 것이나 다름없다. 두 나라가 서사하라를 대하는 태도는 중국이 대만을 대하는 그것 이상으로 경직되어 있다. 모로코는 이곳을 ‘서사하라’라고 부르거나 지도에 표현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다. 모로코에서 이곳을 부르는 공식적인 명칭은 ‘모로코 사하라’다.
두 나라는 2011년 상호 국경을 폐쇄했고, 2021년에는 외교 관계를 아예 단절했다. 2023년에는 모로코 관광객이 알제리 영해에 들어갔다가 사살되는 사건도 있었다.
알제리와 모로코는 둘 다 아프리카에서 순위권에 드는 지역 강국이다.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GDP 기준으로 알제리는 3위, 모로코는 5위다. 군사력도 서로 박빙이다. 군대 규모와 무기 보유는 알제리 쪽이 우위다. 하지만 실전 경험은 서사하라에서 꾸준히 싸워 온 모로코 쪽이 나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제 정세가 혼란스러워지면서 모로코는 좀 더 다차원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모로코는 대표적인 친서방, 친미 성향의 국가였다.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도 신경을 쓰는 눈치다. 모로코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미·중 무역 전쟁에서도 철저히 실익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유럽과 FTA를 맺은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이자 원재료가 풍부한 모로코를 서방의 무역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거점으로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FTA는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상호 관세를 10%만 적용받았기 때문에 여전히 유리하다).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온건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유지해 서방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알제리도 현실적인 관점에서 우방 관계를 다시 따져보고 있다. 2025년 초, 알제리는 미국과 군사 협력 및 테러 대응 등 국방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서사하라 문제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느낌이다. 지난 12월 24일 알제리 의회는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범죄로 규정하고 배상을 요구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프랑스가 모로코의 서사하라 점유를 인정한 이후 두 나라는 서로 강한 제스처를 주고받고 있다. 이처럼 양보할 수 없는 사전 금기를 설정해 버리면 어쩔 수 없이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대만 이슈에 발목이 붙들려 있는 중국도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다.
앞으로 두 나라의 갈등은 어떻게 전개될까?
갈등이 심해지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손해다. 모로코는 서사하라를 둘러싼 최근의 진전에 만족하며, 위험한 군사적 도발에 집착하기에는 산적해 있는 경제 현안이 많다. 아마도 모로코 지도자들의 머릿속에는 전쟁보다 다가올 2030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클 것이다. 알제리도 산업 다각화와 인프라 확충을 위한 해외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테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만큼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갈등보다 협력할 때 얻을 게 더 많다는 점에서, 그리고 최근 들어 국제 외교에서 진영 간 피아 식별이 불확실해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둘의 관계가 ‘적’에서 ‘라이벌’ 정도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갈등이란 때로는 합리적 판단이 아닌 레토릭에 따른 모멘텀에 휩쓸려 벌어지기도 한다. 알제리에 머물고 있는 10만 명이 넘는 서사하라 난민들의 원한과 각자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온 서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결합되면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돌이켜보면 최근 벌어진 국제 분쟁 가운데 합리적이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