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장군은 후대에 만들어진 허구다. 하지만 유비가 이들 다섯 명을 특별히 발탁해 군부의 정점에 배치한 건 맞다.
관우는 전장군이자 형주의 도독이었다. 그는 다섯 명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된 통치권을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비유하자면 대표의 대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부사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비는 우장군과 파서 태수를 겸했다. 파서는 위치상 도읍의 대문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장비는 내부에서 돌발상황이 생기면 즉시 나설 수 있는 지원실장 역할을 했다.
좌장군인 마초는 직급 상 관우에 이어 2위였으나 실권은 없었다. 그는 갓 합류한 외부 인사였는데 원래 양주의 실세였다. 그를 영입한 것만으로 유비의 권위가 높아지고 양주에 연대의 신호를 보내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실무를 맡기기엔 기존 인사들과 결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실제 역할은 얼굴 마담에 그쳤다. 요즘으로 치면 화제를 노리고 발탁한 거물급 고문에 해당했다.
황충은 원로가 아니고 배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실적을 인정받아 후장군에 임명되었다. 유비의 세력이 스타트업을 벗어나 대기업으로 거듭나면서 그 구성도 오너의 사조직을 넘어 진화하고 있었다. 영입인사의 대표격이었던 황충은 비유하자면 신설 사업부의 본부장 같은 존재였다.
조운은 호위장군으로 직급 상 다섯 명 중 가장 아래였다. 하지만 유비의 직속부대를 이끌었기 때문에 존재감은 작지 않았다 (원래 권력은 권력자와의 거리에 비례하는 것이지 직위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다). 조운은 항장 출신이고 성격도 신중해 관우, 장비와 달리 자기 지분에 대한 집착이 크지 않았다. 평생 자기 파벌을 만들지 않았던 그는 이상적인 경호실장이었다.
후대의 우리에겐 이들이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유비에게는 이외에도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실력이 기준이라면 위연도 좋은 선택이었다. 위계가 못 미쳤을 뿐, 한중 도독이었던 위연의 실력은 이미 검증된 상태였다. 정치적 결속을 추구했다면 갓 점령한 익주에서 명망이 높았던 엄안이나 황권 등을 밀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친위세력을 강화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혈연으로 연결된 오의 (유비는 촉에 들어온 뒤 오씨 여인과 결혼해 두 아들을 얻었다), 오랫동안 함께했고 ‘조운에 버금가는 명성을 자랑했다’고 기록된 진도도 괜찮은 후보였다 (삼국지 연의에서 진도는 조운과 이미지가 겹친다는 이유로 비중이 삭제됐다. 만일 유비가 그를 선택했다면 오늘날 진도의 인지도는 조운의 그것에 맞먹었을 지도 모른다).
다섯 명의 조합은 유비가 조직의 균형을 고민한 결과였다.
우선 이들은 역할 구분이 분명했다. 관우는 외부를 맡고 장비는 내부를 지탱했다. 조운은 정권의 안전장치 역할을 했고, 마초와 황충은 일종의 메신저였다.
파벌 또한 상호 보완적이었다. 관우와 장비는 건국세력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들은 공사 구분이 불확실했고 신입들에 대한 텃세가 심했다 (관우는 대놓고 황충과 같은 열에 설 수 없다고 반발하기까지 했다). 마초와 황충을 중용한 배경에는 조직에 다양성을 불어넣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유비는 균형 중심의 시스템을 구축해 파벌 싸움을 제도적으로 흡수했다.
이 체제는 장점이 많았다.
갓 세워진 촉나라는 인재풀이 작고 태생부터 심각한 갈등이 내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비는 이들을 모두 품움으로써 위나라, 오나라에 밀리지 않은 세력을 만들어냈다. 파벌 간 경쟁으로 인해 유비의 권력이 공고해지는 효과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촉나라는 멸망할 때까지 한번도 치명적인 내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단점도 컸다.
오호대장들이 사라지자 그 대신 군부의 정점에 오른 인물은 이엄이었다. 그는 유비가 죽은 뒤 전장군에 임명되었고 말년에는 대장군이 됐다. 이엄보다 군사적 재능이 나은 인물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재능이 아니었다. 결국 1세대 이후로는 재능과 권력의 분배를 동시에 만족하는 게 어려웠다.
돌아보면 촉나라에는 ‘자신의 재능만큼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으로 문제가 된 인사들이 유독 많았다. 대표적으로 위연, 양의, 팽양, 요립 등이 있다. 역사는 이들의 성격적 결함에 초점을 맞추지만 우연히 촉나라에만 ‘에고’가 쌘 인물들이 많진 않았을 것이다.
중국 속담에 ‘촉나라에는 대장이 없어 요화가 선봉에 선다’는 말이 있다. 인물이 없어서 평범한 사람이 중책을 맡은 상황을 뜻한다. 하지만 촉나라의 인재난을 단순히 ‘인구가 적어서’라고 보긴 어렵다. 곽익, 나헌 등 촉나라에선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후 진나라에서 활약한 장군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호대장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조조에게도 ‘오자양장’으로 불리는 존재들이 있었다. 장료 (전장군), 우금 (좌장군/~216), 장합 (좌장군/~228), 악진 (우장군/~216), 서황 (우장군/~226)이 그들이다.
이들은 여러모로 오호장군과 달랐다.
첫째, 오리지널 멤버들이 아니었다. 악진은 병졸 출신이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경력직이다. 그 중 장료와 장합은 원래 조조의 적이었다.
둘째, 철저히 실전용 인재들이었다. 촉나라의 대장들은 전투 이상으로 정치적 역할이 컸지만 위나라의 대장들은 그렇지 않았다 (위나라에서 그 역할을 한 건 황족들이었다). 장합과 서황은 전쟁이 없을 때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셋째, 치열한 내부경쟁을 요구받았다. 조조는 장료와 악진이 서로 사이가 나쁜 걸 알면서도 일부러 둘을 합비에 함께 배치했다. 나머지도 성과에 따라 위아래가 뒤집히고 업무가 교체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서황은 훈련이 고되고 우금은 군법이 엄해서 병사들이 두려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들이 느꼈던 실적 압박이 상당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유비와 달리 조조는 철저히 임무 중심의 인사체계를 구축했다.
위나라의 대장직은 실적에 따라서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자리였고, 따라서 외부 인재 영입과 내부 스타 육성에 구조적으로 유리했다. ‘오자양장’이 사라진 뒤에도 위나라는 각 전선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를 연이어 배출했다. 촉나라 전선은 장합 이후 곽회, 진태, 등애가 차례로 이어받았고, 오나라 전선은 장료 이후 만총, 전예, 장특이 물려받았다. 반면 촉나라는 제2의 관우라고 할만한 존재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 체제도 완벽한 건 아니었다. 위나라의 군부는 경쟁이 치열해 내부 스트레스가 심했다. 장군들이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고, 결국 위나라는 개인이 조직을 잡아먹는 결과로 이어졌다.
촉나라의 균형형 모델과 위나라의 경쟁형 모델 중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고 단언할 순 없다.
전자는 사람을 조직에 지분이 있는 존재로 인정한다. 그 결과 조직에 소속감과 예측가능성을 가져오지만, 성과보다 관계가 우선적인 평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안으로 서서히 곯아가기 쉽다. 촉나라는 인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있는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에 망했다.
반면 후자는 사람을 교체 가능한 자원으로 대했다. 그 결과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지만, 조직의 결속력이 떨어지고 개인과 조직의 목표간 불일치가 커졌다. 결국 경쟁으로 인한 과부하가 지나치게 심해지자 순식간에 조직이 공중 분해됐다.
결론: 뭐든 과하면 문제가 된다. 특히 그 대상이 사람일 땐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