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밍(Framing)의 힘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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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주 공략 당시 방통은 유비에게 상책, 중책, 하책을 제시했다. 상책은 즉시 성도를 습격하는 것이었고, 중책은 우선 부수관을 점령해 거점을 확보한 뒤 성도로 밀고 들어가는 것, 마지막으로 하책은 일단 후퇴해 형주의 본대와 합류하는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중책을 고르게 되어 있다. 상책은 너무 리스크가 크고, 하책은 그동안의 수고가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유비는 자신이 직접 최종결정을 내렸다고 믿었겠지만 실제로는 방통이 설계한 결론으로 유도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답을 중책으로 분류한 것도 선택지가 여럿이면 양 극단을 피하고 중간을 선택하는 인간의 심리를 감안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상책과 하책은 애초부터 Fake Option이었다.


유비는 속으론 익주를 삼킬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의리 때문에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방통 입장에서는 유비가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도록 확실한 결심을 받고, 직접 책임을 지고 선두에 나서게 강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최종 선택은 반드시 유비 자신의 결정이어야 했다.


제갈량도 비슷하게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 적이 있다. 북벌 중 군량 수송이 늦어지자 제갈량은 촉나라의 2인자이자 군량 담당이었던 이엄에게 상중하책을 제시했다. 상책은 배후로 돌아 적을 역습하는 것, 중책은 버티면서 적과 지구전을 벌이는 것, 마지막으로 하책은 후퇴하는 것이었다.


제갈량의 목적은 이엄을 압박하는 동시에 전쟁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신중한 성격이었던 제갈량이 진짜로 상책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기세 좋게 출진했는데 퇴군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시 제갈량은 사마의를 야전에서 꺾어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었다.


결국 제갈량이 제시한 선택지는 이엄에게 빨리 군량을 보내라고 압박하는 동시에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이엄은 하책, 즉 후퇴할 것을 요청했다. 막상 제갈량이 돌아오자 이엄은 책임을 제갈량에게 전가하려고 했지만 이때 주고받은 편지들이 증거가 되어 모든 지위를 박탈당했다. 만일 제갈량이 미리 손을 쓰지 않았다면 누구 잘못이었는지를 놓고 긴 난투전이 벌어졌을 지도 모른다.


사마의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요동의 공손연을 토벌하러 갈 때 그는 공손연 입장에서 상책은 요동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 중책은 요서 강을 끼고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 마지막으로 하책은 성을 잠그고 지키는 것이라고 부하들에게 말했다.


어렸을 땐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결과적으로 공손연이 농성을 택했다가 사마의에게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그랬을까?


기존 해석은 손연이 오지에 숨어 게릴라전을 펼쳤다면 먼 길을 온 사마의에게 치명적이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공손연의 군은 훈련도가 낮았고 혼성군이라 지휘 체계가 불안해 그처럼 유기적인 작전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군대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그나마 군을 하나로 묶어주던 ‘가족과 재산을 지킨다’는 각오마저 사라져 군이 공중분해 될 위험이 컸다. 강을 끼고 대치하는 것도 악수이긴 마찬가지. 수가 많은 적을 상대로, 그것도 사마의가 이끄는 군대를 상대로 힘싸움을 거는 건 자살행위로 밖에 안보인다.


결과가 안 좋아서 그렇지 농성 자체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공손연이 진 건 농성을 해서가 아니라 병력을 나눴다가 각개격파 당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마의는 아군의 심리를 관리하기 위한 프레임으로 상중하책을 제시했을 것이다. 사마의의 군대는 중원에서 요동까지 먼 길을 왔다. 요동은 늪지에 기후도 좋지 않아 장기전을 버티기 어려운 구도였다. 어쩌면 사마의는 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를 것을 대비해 내심 원했던 것과 반대로 상중하책을 구분했던 건 아닐까?


이 같은 사례들은 프레이밍의 힘을 잘 보여준다. 문제를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판단과 선택도 크게 달라지게 된다.


인간은 객관적 분석보다 직관과 비교, 감정에 휘둘리기 쉬운 존재다. ‘성공 확률 80%’와 ‘실패 확률 20%’는 같은 의미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선택지를 통제하라. 겉으로는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가 유리한 방향 안에서만 선택하게 만든다. 기준점을 제시하라. 내가 먼저 기준을 제시하면 상대를 내가 원하는 틀 안에 가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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