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끝이 아니라 시작]
대한민국이 독자 개발한 초음속 전투기 KF-21의 양산 1호기가 출고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그저 축하만 하고 말 게 아니라 KF-21을 둘러싸고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기술적 도전, 정치적 갈등, 외교적 줄다리기의 과정을 이쯤에서 복기해봐야 할 것이다.
사업이 논의되던 당시, 대한민국은 육군 전력을 중시하였고 전투기 개발은 비현실적인 목표로 여겼다. 대다수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미 검증된 전투기를 구매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었다.
사업이 시작된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로 비용이 계속 늘어났으며 개발 일정은 툭하면 밀리기 일쑤였다. 개발진들은 정치권의 간섭과 언론의 비판 속에서 길고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심심하면 터져 나오는 각종 사건들이 그들을 더욱 힘들고 외롭게 했다.
그럼에도 자주국방을 지지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업은 중단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 수많은 사건사고 속에도 현장의 실무자들은 끝까지 버텨냈다. 특히 개발을 주도한 KAI (Korea Aerospace Industries)는 외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프로젝트를 완수해 이 나라에 큰 기여를 했다.
단기적으로만 보면 외국 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급변하는 국제 정세는 당시 무리해 보였던 독자 개발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사업을 통해 항공인력과 기술이 명맥을 이어갔다는 게 크다. 기술과 산업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KF-21 사업은 단순히 공군 전력의 공백을 매꾼 걸 넘어 국내 항공 산업의 인력 풀과 기술 생태계를 이어가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KF-21의 드라마가 여기서 끝난 건 아니며, 그래서도 안된다.
독자 개발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엔진 등 일부 핵심 기술은 여전히 해외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결과 KF-21은 소위 ‘4.5세대 전투기’로 만족해야 했다. 핵심 부품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아직 검증이 부족한 것도 변수다. 경제성 확보를 위한 정비 체계와 부품 공급망 구축도 여전히 미진하다.
현대 공중전이 개별 전투기가 아닌 네트워크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제 전투기는 단일 플랫폼이 아닌 위성, 무인기, 데이터 링크와 연결된 네트워크 노드 역할을 해야 한다.
결국 KF-21의 성패는 수출 경쟁력에 달려 있다. 후속 업그레이드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정치적 지지와 경제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외시장 진출이 필수다.
KF-21은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F-35 도입이 어려운 국가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안보 위기가 높아지고 있는 이때 비싸고 수출이 까다로운 미국과 차세대 전투기 출시가 늦어지고 있는 경쟁국들 사이의 틈새 시장을 공략한다면 가능성이 있다. 미국 기술과 높은 호환성 덕분에 F-35와 하이-로우 믹스 운용이 가능하다는 것도 어필요소.
단,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기체 판매를 넘어 외교와 전방위적 산업협력을 포함한 패키지 전략이 필수적이다. 방산 산업은 단순히 무기를 판매하는 산업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종합 역량을 다루는 빅딜이다. 아직 KF-21을 둘러싼 우리의 전략은 스케일도 차별화 요소도 모두 부족해 보인다.
공동개발 파트너였던 인도네시아와의 갈등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인도네시아는 비용 분담과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참여했지만, 사업이 진행되면서 입장을 바꾸며 잡음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는 이를 두고 비판 여론이 컸지만, 사실 국가 간 국방거래에서 입장 변경이나 대금 지연은 흔한 일이다. 나는 이번 경험이 결과적으론 한국이 기술뿐 아니라 사업관리 측면에서도 방산수출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앞으로 KF-21이 마주하게 될 고객들이 인도네시아와 비교해 쉬운 상대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라도 KF-21이 지닌 의미는 크다. 돌이켜보면 줄곧 밖보다 안에서 비판이 더 많았던 사업이었다. 그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자축할 가치는 충분하다. 진정한 도전은 이제부터라는 걸 잊지 않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