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공신 중 으뜸은 순욱이었다. 조조는 순욱을 자신의 ‘장량’이라고 일컬었다. 진수는 삼국지를 정리하면서 순욱, 순유, 가후 세 사람을 조조의 모사 중 최고로 분류했는데 그중 순욱을 으뜸으로 쳤다.
순욱은 손꼽히는 귀족 가문의 적통이었다. 그가 합류한 것만으로도 환관 집안에서 태어난 조조의 이미지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다. 순욱이 합류하자 순유, 정욱, 곽가, 종요, 진군, 두기 등 힘 좀 쓰는 집안들의 인재들이 순욱과의 학연, 지연을 따라 조조군에 합류하게 된다. 이들의 가문도 덩달아 조조 편으로 돌아섰는데 조조가 메이저 군벌로 급성장한 데에는 순욱의 공이 컸다. 조조의 출생에 거부감이 컸던 사마씨 집안을 포섭한 것도 순욱이었다.
순욱이 가진 건 명문가의 후광만이 아니었다. 그에겐 다양한 색깔의 인재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는 포용력이 있었다. 조조의 참모들 중 순욱에게 맞먹는 재주꾼들이 더러 있었지만, 개성이 강했던 이들을 품을 수 있는 건 순욱이 유일했다. 조정을 장악한 조조는 스스로 군부의 수장인 대장군에 오르면서 순욱에게 행정의 수장인 상서령을 맡겼다. 다른 참모들이 군부 소속으로 조조의 직속이었던 반면, 순욱은 형식상 황제의 직속이었다. 짐작건대 조조는 순욱에게 자신과 황실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도 맡겼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최후는 아름답지 않았다. 조조가 신하를 넘어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드러내자 순욱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가 곧 세상을 떠났다. 조조가 불쾌함을 드러내자 자살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남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언젠가는 순욱이 마주한 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언더독 시절의 조조에게 순욱은 완벽한 파트너였다. 순욱은 조조가 간절히 원했던 브랜드와 인재, 그리고 시스템을 충족시켜 줬다. 하지만 일인자로 떠오른 조조에게 필요한 건 자신이 죽은 뒤에도 조씨 집안이 권력을 이어가기 위한 절대적인 권위였다. 그에겐 멘토나 파트너가 아니라 맹목적인 친위대가 필요했고, 싸움에 이기는 것보다 승전물을 독점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많은 이들이 말년의 조조를 비판한다. 젊은 시절 조조는 한나라의 충신을 자처했고, 양보와 관용의 미덕을 뽐내는 일화가 많았다. 하지만 적벽에서 진 뒤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이는 조조라는 개인이 바뀌었다기보다 상황이 바뀐 탓이 더 크다. 미래가 창창한 청년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 잃을 것 없는 스타트업과 가진 게 많은 독점기업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우리도 화장실에 갈 때와 나올 때, 배고플 때와 배부른 뒤 마음이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순욱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스스로가 정권의 주주이자 공동 설계자라는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결코 타인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잊고 군주의 마음을 바꾸려 한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처세의 측면에서는 제갈량이 순욱보다 나았다. 의외로 제갈량은 유비보다 반보 이상 앞서 나간 적이 없다. 형주를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거부당했을 때도, 이릉대전을 내심 반대했을 때도 제갈량은 유비의 뜻을 거스르거나 바보로 만들지 않았다. 그저 유비가 제시한 선 안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일이 풀리지 않았을 땐 뒷수습에 힘썼다.
수어지교, 물과 고기처럼 가까운 관계로 불렸을 정도였지만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가 한결같았던 것은 아니다. 기반을 막 쌓아 올릴 때는 형주의 인맥을 끌어오고 로드맵을 그려 줄 제갈량이 소중했다. 하지만 익주를 차지한 뒤 유비는 자기 수족이 되어 줄 현장형 인재들을 더 총애하게 된다.
유비 생전에 유일하게 시호를 받은 법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제갈량은 바뀐 상황에 맞춰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했고, 그 결과 이어진 신뢰로 후대를 위탁받았다.
아마 방통이 살아 있었더라도 제갈량을 뛰어넘지는 못했을 것이다. 능력이나 충성심 때문이 아니다. 의견이 다르면 주군을 공개석상에서 면박을 주던 방통은 처세에서 제갈량에 한참 못 미쳤다. 아직 지켜야 할 권위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용인되었을 뿐, 유비가 왕이 되고 황제가 된 뒤에도 방통을 참지는 못했을 것이다.
진수는 방통을 순욱의 부류라고 평가했다. 극찬인 것처럼 보이지만, 순욱을 가리켜 인품이 훌륭하고 지혜로웠지만 그 뜻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고 평가한 것을 보았을 때 둘 다 제갈량에 미치지는 못했다고 본 것 같다. 남에게 쓰임을 받는 사람은 뛰어나다고 다가 아니다. 필요할 땐 굽히고 물러서고 틀릴 줄도 아는 것이 남에게 쓰임 받는 이들의 지혜다. 이 지점에서 순욱과 방통은 제갈량만 못했다.
인간의 관계에는 이런 변심의 속성이 내재되어 있다.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사람이 있고, 즐거움을 함께 누리기 좋은 사람이 있다. 조직생활도 마찬가지다. 맨바닥에서 시작할 때 필요한 사람이 있고, 규모가 커진 뒤 필요한 사람이 따로 있다.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순욱의 정치적 위상, 황실과의 원만한 관계, 위나라의 거물급 관료들을 아우르는 인맥, 그리고 체제의 근간을 꿰뚫어 보는 대전략가적 면모는 한때는 귀한 자산이었지만 말년의 조조에게는 오히려 부담이었다. 순욱이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것은 의미가 없다. 그저 인생이 무상한 탓이다.
언젠가 당신도 순욱이 맞닥뜨린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중이 절에 맞춰야지 그 반대가 될 수는 없다. 자기 색깔을 환영해 줄 새로운 곳으로 가든지, 아니면 맘에 들진 않지만 입으라는 옷으로 갈아입든지 둘 중 하나다.
정해진 답은 없다. 순욱은 자기가 오너라는 착각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그 대신 명예를 얻었다. 그는 죽기 전에 자기가 남긴 문서를 모아 모조리 불태웠는데 그 결과 말년의 순욱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어쩌면 후대에 남은 ‘한나라의 충신’이라는 이미지는 순욱이 남긴 최후의 한 수였을지도 모른다. 순욱이 정말 조조의 변해 가는 심정을 몰랐을까? 하지만 극적인 순간에 극적인 방법으로 물러선 덕분에 순욱은 후대의 면죄부를 얻었다. 때로는 드라마틱한 퇴장이 강력한 필살기가 되기도 한다 — 다행히 우리는 순욱처럼 목숨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