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맹도 불사]
현지 기준 4월 30일, 룩셈부르크 기반 통신위성 업체 SES가 오랜 라이벌인 Intelsat을 $3.1 billion, 한화로 약 4조 원에 지분을 100%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저궤도(LEO) 통신위성을 내세워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SpaceX에 대응하기 위한 스케일업을 선택한 것이다.
SES는 1985년에 세워졌으며 본사는 룩셈부르크에 있다. 2001년에 GE의 위성사업을 인수, 지분 및 포트폴리오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지만 아직도 그 뿌리는 유럽에 있다. 케이블 방송, 라디오, 국제전화 등을 지원하며, SpaceX가 부상하기 전까진 ‘많은 이들이 세계 최대의 위성기업으로 평가한 기업이다. 수년 전, 그러니까 SpaceX가 Starlink를 출시하기 전까진 SES가 ’위성 기반 초연결 솔루션‘의 전도사 역할을 했다. SES와 SpaceX, 당시만 해도 둘은 경쟁자가 아닌 좋은 파트너였다. SpaceX가 성공한 최초의 정지궤도 미션에도 SES의 위성이 실려 있었다.
Intelsat은 1964년에 글로벌 컨소시엄으로 시작됐다. SES와 마찬가지로 룩셈부르크에 본사가 있으며 국제연합이 결의한 세계상업통신위성기국 협정에 서방 11개국이 서명한 것이 기원이 됐다. 1965년에 세계 최초의 상업용 통신위성인 Early Bird를 발사했고, 이후 꾸준히 위성을 늘려 전 세계를 커버하는 최초의 통신위성 회사가 됐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을 전 세계 5억 시청자에게 송출한 것도 Intelsat. 2001년을 기점으로 민영화됐다.
[새판 짜는 위성통신 업계]
이번 결정은 결코 하루아침에 내려진 것이 아니다. Starlink의 등장으로 시장이 격변하자 기존의 플레이어들은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으로 전략적 합종에 나섰다. 2023년 한 해 동안 Eutelsat과 Oneweb, Viasat과 Inmarsat이 각각 통합을 마무리했다. 그때부터 이미 SES와 Intelsat이 합병을 논의 중이란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6월에 ’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서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협상은 결렬됐다 ‘고 SES가 공개 발언하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는데 상황이 급변한 것.
Intelsat이 성공적으로 회생 절차를 마치면서 우려했던 불안요소가 상당 부분 해소됐고, 합병이 아닌 인수로 방향을 틀면서 우려했던 규제 허들을 우회할 수 있게 되자 양측 모두 확신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Starlink만으로도 큰 위협인데 아마존의 카이퍼가 시범 위성을 쏘아 올리며 본격적인 데뷔 임박을 알린 것이 자극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인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한때 용호상박 관계로 불렸던 두 회사는 하나로 재탄생하게 된다. 통합법인은 연 매출 5조 원, 수주잔고 10조 원에 130여 대에 달하는 중궤도(MEO), 정지궤도(GEO) 위성을 보유한 회사로 덩치가 훌쩍 커진다. 이미 두 회사의 이사진이 최종승인을 마쳤고, 계획대로라면 2025년 2분기까지 대금 지불을 포함한 모든 인수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중요한 건 인수 이후]
둘은 인류의 위성통신 역사를 상징하는 이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대단한 회사들이다. 하지만 재사용 발사체와 저궤도 위성으로 무장한 SpaceX가 등장하면서 그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Intelsat은 지난 2020년 재무 상태가 악화되어 회생 절차까지 밟아야 했다.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코로나 발 경제위기였지만 그전부터 이미 Starlink의 부상과 케이블 TV 등 기존 사업의 위축 때문에 내상이 쌓이고 있었다. 원래 통신위성 사업은 비용과 규제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라 기존 업체들이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젠 시대가 변했다.
그래서일까? 인수 소식을 접한 시장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SES는 인수대금 마련을 위해 사채를 발행할 예정인데, 과연 두 회사의 합병이 지금 같은 고금리 시대에 그만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발표 당일 SES의 주가는 급락해 역대 최저가를 기록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선 1 더하기 1이 꼭 2가 되진 않는다. 두 회사의 경영진들이 인수 계획을 발표하면서 나열한 시너지 포인트들은 어디까지나 ’ 스케일‘을 강조할 뿐 화학적 결합을 통한 새로운 상품, 시장,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인수 결과가 4가 될지, 2에 그칠지, 그도 아니면 마이너스가 될지는 앞으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Starlink라고 해서 ’미래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궤도의 강점을 살린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해 기존의 정지궤도 업체들을 누르고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원래 있던 시장을 뺏어온 수준을 넘어서진 못했다. 덩치를 키워 반격을 가해오는 경쟁자들 속에서 수익성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선 기존의 위성통신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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