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두 마리를 잡으려다 하나도 못 잡는다

수직계열화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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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이슈를 몰고 다니는 기업은 엔비디아와 TSMC다. 전자는 설계에 집중하는 팹리스, 후자는 생산만 담당하는 Foundry다. 반면 설계와 제조를 둘 다 하는 종합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다.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줄여서 IDM)


인텔은 미국 반도체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다. 오랫동안 설계와 제작, PC 등 수요 제품군 개발을 모두 아우르는 통합 모델을 고수해 왔다. ‘틱톡’으로 불렸던, 독자 설계에 특화된 공정과 자체 수요 창출이 가능한 인텔의 사업모델이 철옹성처럼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인텔의 통합 모델에는 명백한 단점이 존재했다. 인텔은 모든 걸 다하는 기업인데 이는 다시 말하면 모두와 경쟁 관계에 놓여있는 입장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다양한 칩에 적용될 수 있는 범용 공정을 추구하는 TSMC처럼 유연할 수도, 모든 역량을 설계 특화에 집중하는 엔비디아처럼 날렵하지도 못하다


TSMC는 더 좋은 칩을 많이 공급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고객들과 이해관계 상충에서 자유롭다. 이들은 설계 업체들에겐 꿈을 현실로 이뤄주는 친구이며 소부장 업체들에겐 이상적인 발주처이다. 반도체 Value Chain을 아우르는 폭넓은 동맹관계가 형성됐고 그 중심엔 TSMC가 있다. 이들의 중추적인 위치는 다양한 회사의 칩을 제작하면서 발생하는 ‘규모의 경제’에 힘입어 갈수록 더 견고해지고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무장한 TSMC 동맹 앞에서 인텔의 통합 모델은 무력했다. 인텔은 압도적인 기술력과 자금력을 자랑했지만, 그 대단한 인텔도 혼자서 범세계적 연합을 상대하기엔 부족했다.


2012년,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하며 시대를 쫓아가려는 시도에 나섰다. 하지만 회사의 구조가 발목을 잡았다. 회사 수익에서 설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파운드리 사업은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고 두 사업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언제나 희생을 강요당했다. 팹리스 업체들에게 비친 인텔은 폐쇄적이고 매력이 떨어지는 거래처였다. 결국 인텔은 2018년 파운드리 사업을 접었야 했다.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를 놓친다고 했던가. 인텔이 좌고우면 하는 동안 엔비디아가 새로운 도전자로 등장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가는 제조는 남에게 맡기고 오로지 자사 칩을 매개체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집중했다.


2021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치열해지면서 반도체 생산을 내재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면 바보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 두 분야의 회계를 각각 ‘인텔 프로덕트’와 ‘인텔 파운드리’로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파운드리 사업 실적을 위해서라면 설계 사업부를 신경 쓰지 않고 외부 고객 유치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인텔은 두 부문이 독립적이면서 상호 의존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 같은 둘, 둘 같은 하나가 되겠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쉽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러면서도 ‘분사는 없다’는 것을 보면 과연 형식적 분리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작년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은 9조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사업 특성상 막대한 초기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부담스러운 규모다. 게다가 내부 물량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가 넘는다. 시장에서 독자적 경쟁력을 인정받기까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민감한 IP가 인텔 자체 제품에 유입될 것을 우려하는 고객들의 불안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결론, 모든 선택이 그렇듯 수직적 통합도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반드시 Trade-off를 수반한다. 이질적인 사업들을 하나로 묶어놓아 관리 효율이 떨어지고 대외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등 De-Synergy가 발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접근할 수 있는 고객과 협력사를 제한해 서로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토끼 두 마리를 잡으려다 하나도 못 잡는다는 옛말처럼 전략적 통합은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하지만 자칫 어설픈 통합으로 본연의 장점이 망가진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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