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있을까
내 인생이 바뀌는 날이 두번 있었다면 우리 실버가 저에게 온날과 떠나간 날 일거에요.
실버랑 함께 한 날들은 오색찬란할거에요
그 사이 우리가 떨어진 날들은 암흑일 거에요.
동그랗고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봐줄때
나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우리 실버는 저에게 온 날부터 제 인생을 황홀하게 했어요
우리들의 첫 날 밤,
아기처럼 안아보려는 내 손을 사정없이 물어버렸지만,
자길 떨어뜨리고 만 날 용서해주고
수없이 밟히고 다치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서성이고
수많은 낮과 밤 새벽과 어스름동안 저의 불안과 슬픔을 지켜주었어요
칠키로 반
까맣고 하얀 털뭉치
조용하고 부드럽고
늘 사랑스러운 향기가 나는
발걸음이 가볍고 씩씩한 아이
이름을 부르면
조그만 발바닥으로 타닥타닥 발구르며 걸어오는 발소리
포근한 작은 품, 보드라운 털
늘 따뜻한 온기, 촉촉한 코
잘 들려주지는 않지만 매번 반가운 목소리
앙다물어버리는 입술 꼭꼭 씹는 턱
맛있는 냄새에 킁킁거리는 콧잔등
어디든 들이밀고 어디에든 쑤셔넣고 마는 고놈의 주둥이
안어울리게 조그만 앞니들
가끔 안녕하고 삐죽 서있는 등에 난 작은 털들
구불거리는 등언저리 애교털
꼬리에 방울
그리고 보이는 수많은 상처들
얌전한 잠자리엔 천사의 탈을 쓰고
심술을 부릴때는 잠깐 미운 다섯살
너보다 더 크고 힘이 세다는 이유로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너를 때때로 아프게하고 다치게했지
너는 기억할까
세상에 우리 단 둘 뿐이었던 것 같은 그런 시간들이 있었잖아
시간이 느리게만 가고 고독과 좌절의 하루를 보내던 그 때가 있었잖아
모두가 떠난 텅빈 집에서 너만이 엉망이 된 내 곁을 지키던.
넌 언제나 내가 필요할 때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어주었어
내가 세상에 상처받고 버림받았다고 울때
한없이 밝고 해맑은 너랑 한참 걷고 나면 다시 용기가 생겼잖아
찾으면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부르면 항상 신나게 달려오고
밥을 주면 항상 열심히 먹어주고
심한 장난을 쳐도 마냥 좋아라 하고
그런데 정작 나는 니가 필요할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네
내 천사
미안해
사랑해
다음생에는 꼭 내가 너의 한 살 많은 누나로 태어날거야.
아픈곳 없게 슬픈일 없게 늘 바로 옆에서 지켜줄게.
네가 만든 나.
우리는 다, 우리를 스쳐간 사람들이 주고간 경험의 조각들을 모아 이루어진 존재라지만
내 아이는 나를 스쳐간 존재가 아니다.
나는 너에게 푹 적셔져서 아찔하게 절여져서 아릴정도로 달콤한 하루하루를 보냈지
너의 잔망스러운 표정
아무도 너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지금
나는 너무 서럽다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