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공부를 하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임은 분명하지만 그 고됨의 가장 아래에 깔린 바탕은 '외로움'일 것이다. 적어도 인문학을 하는 것은 외로운 일임에 분명하다. 혼자 할 수밖에 없는 '연구'의 거시적인 형태도 그렇지만, 사실 어떤 공부이든 간에, 공부를 함에 있어 그 외로움과 고독은 스스로 끝까지 싸워 이겨내야 하는 것. 어렵다는 건 그 외로움이 어렵다는 것, 힘들다는 건 그 외로움이 힘들다는 것. 그렇게만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돌이켜보면 공부했던 기억엔 늘 외로움이 따라다녔던 것 같다. 도서관 열람실 창문으로 혼자 내려다보던 노을 지는 풍경, 눈이 오는 풍경, 낙엽 지는 풍경, 나를 제외한 세상이 돌아가는 아름다운 풍경들. 도서관을 나와 쓸쓸히 걷던 캠퍼스 내리막길. 그리고 그 길을 지나 건너던 길 서쪽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붉은 해. 그 모든 게 나에겐 외로움의 기억이다. 밤을 새야 할 때,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아있다는 그 외로움과 긴장감. 누구에게든 전화를 걸어 깨어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투정. 그러나 한편으로는 날이 밝지 말기를 바라는 심정.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은,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글쓰기 또한 근원적으로 외로운 것이다. 글은 함께 쓸 수 없다. 완성되고 다듬어져 선보여지기 전까지는 공유할 수도 없다. 읽지 말지는 순전히 기회를 가진 자의 선택이고, 해석은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다. 정답은 없다. 저자에게 구해 묻지 않는 이상은 알 수도 없고 알 이유도 없다. 작가의 의도가 전부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보면 글의 가치는 작가와 독자의 합동작품인 셈이지만, 글은 적어도 발행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작가의 눈물과 땀으로 점철된 외로움의 산물이다.
외로움과 싸우려 들었던 어린날, 이 고독과의 싸움에서 내가 비로소 이겨 보이리라 하며 이를 꽉 물고 버텨내던 시절. 어찌된 것인지 싸우면 싸울수록 더 고되고, 그 고됨에 날이 갈수록 투지는 꺾여가고, 무엇보다 외로움이란 것에 도무지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많이 조급했고, 과했고, 잘났었다. 그때 이 책을 마주했다.
나 자신의 나약함과 외로움을 솔직하게 누군가에게 꺼내놓았을 때,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며 거짓 없는 눈빛과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그때 세상은 비로소 내 손을 잡아주었다.
기꺼이 외로워지자, 끝까지 외로워지자, 그 힘을 믿어보자.
외로워도 괜찮은 게 아니라 외로워서 괜찮은 거다.
외로움을 받아들인 자만이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거다.
- 신옥철,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
나는 내 청춘을 믿지 않는다. 나뿐이 아니라 누구도 젊음을 과신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든 젊음은 한철이고, 지나간 과거가 되고, 지난 후엔 활활 타올랐던 그 열정만큼 수북한 잿더미가 남겨질 테니. 운동선수가 아닌 이상, 젊음이든 황혼이든 그 중간 어딘가든 우리는 같은 인생이다. 나는 내 20대보다 30대가 더 찬란했으면 좋겠고, 30대보다는 40대가 더 아름답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개인적 믿음하에, 나는 우리가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외로움과, 고통과, 이 모든 세상과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에로사항들을 떠안아야 한다는 충고는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그래서 이 말이 더 와 닿았다. 외로움을 버티거나 이기는 대신,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나누라는 것.
장석주 씨도 말했다. '글을 쓸 때 오롯한 고립과 고독은 필수 조건'이라고.
글을 쓰는 일은 외로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버티지 않아도 되는 외로움은 고통이 아닌 양분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웃사이더는 혼자가 아니다, 외로울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