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여름 : 아주 작고 사소한 흠
8월 20일, 그간의 큰 덩어리 같던 이야기와 달리 이날은 아주 작고 사소함 흠이 있는 날이었다. 동생과 일상을 보내고 제부의 제안으로 둘만의 1박 2일 여행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집안일을 했다. 아직 밝은 이곳의 밤 한가운데에서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뒷마당으로 나간 때였다.
역시 끝이 안 좋으면 안 되는 거라는 걸 새삼 깨닫는 하나의 사건이 뒤통수에서 벌어졌다. 쓰레기를 들고 뒷마당 걸쇠를 풀고 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 가는 길. 그곳은 1치로 비포장도로로 폭이 1m가 조금 넘는 거리였을 것이다. 한 다섯 걸음이면 가는 거리. 어김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떤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지 하늘을 탐색했다. 그런 내 시야에 걸린 취객.
아 얼른 버리고 돌아가자
이 차 한 대 오고 갈 수 있는 길목의 우측 끝에는 이차로 길이 있고 그 건너에는 또 다른 블록이 있다. 그곳에 있는 집은 꽤 큰 집이고 고급스러운 파티션을 설치하고 차가 3대 정도 주차 되어있는 집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작은 흰색 트럭인데 취객이 그 흰 트럭의 뒷바퀴에 소변을 보고 있었다. 뒤돌아 있는 상태였지만 그리 멀지 않은 거리기에 추측이 아닌 확신할 수 있는 행위였다.
얼른 버리고 돌아가려 쓰레기를 버리는 그 커다란 통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의 이름을 아직도 알지는 못하는 나다. 내 키만 한 높이에 뚜껑을 들어 올리려면 꽤 힘이 들어가는 그것. 낑낑대며 한 손으로 뚜껑을 들어 올리고 쓰레기를 던져서 그 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뒤돌아서 취객을 등지고 집을 향해 걸었다. 자연스러운 보폭을 유지하면서.
그 순간 두 개의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려왔고 또렷하고 유독 크게 소리쳐 외치는 단어에 그날 하루의 마지막에 흠이 나버렸다.
헤이처키몽키
사실 나중에서야 제부가 그런 말은 건방진 놈이란 표현으로도 쓰인다고 했고 흰 트럭에 억하심정을 가진 취객이 그 트럭이 주차되어 있는 집을 향해 소리친 건 지도 모른다고 넘겼지만 그 당시에는 "몽키"라는 그 단어에 대한 편견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것은 말로만 듣던 레이시즘이다. 심지어 나는 단발이고 한때 처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순간 멈칫했다. 머릿속으로 종종 유튜브에서 보던 레이시즘 참 교육 영상들이 떠올랐고 뒤돌아서 따져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언어적 한계를 넘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 다른 목소리가 취객을 만류하고 끌고 가는 듯 소리는 잠잠해졌다. 짧은 순간이었고 눈을 찔끔 감고 뒤를 돌아봤을 때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사라져 있었고 흰 트럭의 오른쪽 뒷바퀴에는 취객의 흔적이 흥건하게 남아있었다.
집에 돌아가 아이들에게 얘기하니 "어떤 집? 그 집? 저기?" 하면서 서재방에 옹기종기 모여 까치발 들며 흰색트럭이 주차되어 있는 집을 찾았다. 뒤돌아 있었으니 직접적으로 내게 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자기 차에 노상방뇨를 하지는 않을 테니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은 아닐 거란 결론을 내리고 일단락되었다.
이 작은 마을에도 레이시즘이 존재한다는 것, 아주 작은 흠이 나버렸다. 그전에도 동생에게 들은 적이 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 이곳에서도 코로나에 대한 오해로 마스크를 써달라는 동양인에 대해 상처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어딜 가나 있겠지. 나와 너, 우리가 아닌 그들에 대해 오해와 편견을 검은 감정과 말들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결국 이 이야기의 끝에 난 제부와 동생을 바라보아야 했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정말 괜찮았을까?
이곳에서 사업을 일군 제부의 큰댁 어르신들은 어떤 나날들을 보내며 굳건히 서게 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