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탄환 없는 숄더캐논

(상편)

by 김명현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문학을 공부했고 현재 인기있는 소설가로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거든요. 지금 제 아내는 제가 이 글을 쓰는 옆방에서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한 수석 피아니스트입니다. 저희 부부는 서로를 사랑합니다. 좋아하는 분야로 생활을 유지하고 좋은 부부로서 살아가는 지금, 저는 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천국에 있는 것 같으니까요.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도 그 의견에 동의 합니다. 지금 삶에서 더 이상을 바라는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들 정도니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한 나라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듯 제 삶도 처음부터 행복했던 것은 아닙니다. 무척이나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거쳐왔다 해야 할 지도 모르겠군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미래를 앞에 두고 현실을 살기 위해선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그리고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한 거장 소설가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예술은 결국 인간을 긍정하는 작업이라는 말을. 제가 어린 시절 겪었던 아픔을 거울 삼아 미래를 꿈꾸고, 현재를 충실히 살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조금 어둡고 잔혹한 글이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도 들지만 제가 겪었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자각하는 나이가 보통 언제일까요. 제 기억은 유치원에 처음 간 날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이어집니다. 저는 무척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놀이를 할 때마다 늘 뒤쳐진 기억이 나네요. 그러면서도 즐거웠다면 좋았겠지만 별로 재미있진 않았습니다. 글을 완전히 외울 만큼 동화책을 읽거나 조용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게 저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제 모습을 걱정하시긴 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으셨습니다. 그런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저에겐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일들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건 성당에 딸린 주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같이 앉아 있던 아이들과 무슨 말인가를 하다가 문득 우리 아버지는 무섭다. 그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아빠 형사야. 맘만 먹으면 심장도 뽑을 후 있어."

"우리 형 경찰이야. 총알도 다 피해."

저는 그런 말을 허세로 넘길 만큼 똑똑한 아이가 아니였습니다. 굳이 상상력을 동원해 정말로 심장을 어떻게 뽑는 것일까. 사람이 총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모습까지 떠올려 가면서, 그 아이들이 원하는 두려움에 찬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주 소심한 아이였지요. 언젠가 점심 시간 때는 어떤 아이가 "넌 우리 반 아니야. 들어오지 마." 라고 한 말을 듣고 밥도 안먹은 채 정말로 교실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요.

친구가 별로 없던 제가 즐거움을 누릴 때는 공상에 빠질 때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제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무슨 무슨 가면이라는 영화를 본 다음날 등교하던 참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황금 가면, 은 가면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오랜 공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문화 매체가 저에겐 기회로 보였습니다. 만화책이나 영화를 볼 때마다 황금 가면과 은 가면은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활약상을 상상하는 식이었습니다. 저의 두 영웅은 얼마 안 있어 다양한 형태로 세분화되었고 어설픈 공상엔 조금씩 체계가 잡혔습니다. 그런 공상에 기대어 지루하기만 했던 하루하루를 버텨나갔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저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나는 집중을 잘 못하고 공상에 쉽게 빠지는 편이니, 오롯이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일을 하자.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만화에 들어가 보는 거야. 우연히 만화 잡지에서 알게 된 성우란 직업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이상한 아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지언정, 학교 쉬는 시간마다 소리내어 책을 읽었습니다. 주말엔 도서관에 가서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로 또박또박 책을 읽어가며 발음 연습을 했습니다. 그땐 아직 나이가 어려 성우 학원에 간다는 생각은 못했지요. 오랜 공상으로 말을 잘 하지 않아 나빠진 발음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연습을 시작한지 십개월 정도 되었을 까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날은 텅 빈 집에서 혼자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계속 계속 집중하며 한 글자 한 글자를 토해내고 있는데, 지금의 내 목소리가 지문의 모든 분위기와 똑같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뭔가 비밀을 알게된 것처럼 상기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시 글을 읽어나가는데, 불안감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었죠. 내 발음과 연기가 완벽해 졌어.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들었습니다. "너는 선택받았다." 지금껏 상상해 온 신의 그것과 같은 확실한 목소리를.

지금에 와서도 그때의 느낌은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조현병 발병. 그런 차가운 문장으로 응축시키기엔 너무나 많은 감정이 얽혀졌던 기억이지요. 그 때부터 저의 생각과 현실 사이의 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다. 환청은 계속해서 머리를 때리고 저 자신도 모르는 온갖 말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들려 오는 목소리를 거부할 때마다, 입 밖으로 내밀지 않으려 할수록 몸 구석 구석이 너무나 아프고 두근거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학교에 가서는 주변 아이들의 생각이다. 그런 느낌을 받으며 끊임없이 중얼중얼 거렸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제 성격이 아주 외향적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겁을 주는 아이들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했던 저는 없어졌습니다. 큰 소리로 친구들과 어울려 떠들고 사소한 시비가 붙을 때마다 죽일 듯이 덤벼 들어 싸웠습니다. 무서움이란 감각이 사라진 것 같았죠. 부모님은 제 변화를 알아채셨습니다. 나 자신이 이 세상을 구하러 온 메시아처럼 '느껴진 것'만으로 끝나면 더 오래 방치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점점 입밖으로 나오는 말이 통제가 안 되고 부모님 앞에서 엉엉 울면서 이 세상 귀신들이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쩌면 좋으냐. 그런 말까지 했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부모님은 조금 고민하셨지만 결국 가까운 신경정신과 병원으로 저를 데려가셨으니까요. 의사는 일년 간 꾸준히 약을 먹으며 경과를 지켜보자 했습니다. 정신과 환자들의 보호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건 환자가 약을 먹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현대 의학으로도 정신과 질병의 궁극적인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조금 더 관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뿐이죠.

다행히 저는 약에 별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제가 병원에 빨리 온 편이라는 것을 말하고 조금 불안감은 있으나 납득할 정도이니 학교에 다니는 것도 가능할 거라 했지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입원까진 가지 않았습니다. 약을 먹을 수록 몸에 살이 찌고 언행이 눈에 띄게 어눌해졌지요. 일시적인 활발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병색이 완연한 힘 빠진 눈으로 힘겹게 중얼거림을 억제했을 뿐..학교에선 이미 음침한 녀석으로 낙인찍힌지 오래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제 담당 의사는 제게 '조현병'이라는 병명을 주었습니다. 정신 질환은 잔인한 질병입니다. 환자 본인의 고통에서 끝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아픔을 주니까요. 제 부모님은 강한 분들이셨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먹고 움직이지 않으려 드는 저에게 억지로 운동장을 돌게 하고, 아령까지 사서 근육 운동을 시키면서 직접 공부를 봐 주셨습니다. 당시 두 분에겐 저를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시키는 것이 지상 과제였습니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에 와선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제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제가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는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병증이 생긴게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이었으니 그후 2년. 저는 가까운 인문계 고등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눈에는 힘이 빠져있고 말투는 어눌한데다 손 발엔 활기가 없었지만 어쨌든 전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꾸준히 운동을 시켜주셔서 뱃살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다행이었습니다. 정신질환 환자들은 과하게 먹고 움직이려 하지 않아 아랫배만 툭 튀어나오는 체형이 많으니까요.

입학실 날 아침에도 저는 약을 먹고 학교로 갔습니다.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친구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그저 머릿속을 갉아 먹는 듯한 환청을 힘겹게 누르면서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현실 뿐이다.'몇번이고 되뇌일 뿐이었습니다.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는 게임 주인공의 모습을 몇번이나 되뇌었는지 수를 셀 수조차 없습니다. 얄궂은 일이지요. 그 동안의 공상을 총동원해야 내 안의 병증을 거짓이라 인식할 수 있었던게.

세상은 저에게 보조를 맞춰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있다는 것만을 생각하며 가혹한 병증과의 싸움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너무나 막막하고 서글펐던 그때의 기억을 조용한 웃음으로 추억할 수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저 새끼 완전 어리버리하지 않냐?"

"찐따야. 찐따."

고등학교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반 아이들이 저를 보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하루종일 머릿속에선 전쟁같은 환청이 들려오는데, 저를 보며 킥킥대거나 난폭한 장난을 거는 아이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소년은 그저 하루가 어서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는 게 전부였습니다. 저처럼 환자는 아니지만 심약한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허사였습니다. 사람하고 눈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겁을 먹고 있는데, 친구란 사치일 뿐이였지요.

공부는 교과서를 무조건 달달 외우는 것으로 어찌어찌 낙제를 면했습니다. 국어나 사회 같은 암기 과목에서 점수를 따서 거의 빵점이다시피 했던 수학, 과학에 대한 마이너스를 커버하는 식이었죠. 조현병으로 진단받기 전부터 부모님이 끝없이 공부를 시키셔서 가능한 일로, 그런 식으라도 학교를 다닐 수 있던 게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외로움은 습관이 되자 그렇게 심한 고통은 아니었습니다. 괴롭힘은 이어졌지만 그것조차 적응이 된다는 게 놀라운 일이죠. 고등학교는 졸업하자. 그것만을 목표로 살던 나날이었죠.

당시를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 하나 있어요. 등교하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지겹고 괴로운 학교 생활이었을 지언정, 아침의 태양이 따사롭게 펼쳐진 가운데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걸어가는 동안 저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게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그때만큼은 병증조차도 제 소중한 모습 중 하나로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게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저 녀석이 맨날 헤벌레 웃으면서 등교하겠냐. 그런 말을 한 적도 있고요.

앞서 말했듯이 제 병증은 만화나 게임에서 보아온 이미지들이 떠오르면서 환청이 들리고,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환청이 입밖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환청을 내뱉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상황에 맞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었죠.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는 중이라면 나는 유명한 자전거 선수 000이다. 너의 몸에 빙의되어 있다. 그런 환청이 들립니다. 그때 자전거나 오토바이, 혹은 비슷한 무언가를 타고 있는 만화나 게임,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미지 뒤에 제 본심이 가려지기 때문에 환청에 지배되지 않는다. 그런 설명이 수차례 들렸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 환청은 잠시 멎었어요. 말도 안되는 궤변일지 모릅니다. 아니 근거도 뭐도 아무 것도 없었을지언정 저에겐 현실이었고, 때문에 저는 환청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만화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도 그런 매체를 구입하는 걸 허락해 주시고 하루 한시간 자유 시간까지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입니까. 환청의 원인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일시적인 진정을 위해 여러 오락물을 접해야 했다니.

그 작품을 알게 된 건 티비에서 보내주는 특선 영화에서 였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었다고도 할 수 있는 고전 호러 액션. 바로 프레데터였죠.

티비에서 틀어준 건 어느정도 가위질한 장면이지만 저는 화면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숲 속에 고립된 인간들과 보이지 않는 위협인 프레데터.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제 모습과 비교된 걸까요? 저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프레데터의 모습에 완전히 빠져 들었습니다. 외계 생물 프레데터가 인간들을 한명 한명 살해하는 장면에서 두려움이 아닌 환희를 느꼈을 만큼, 치료 기간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제 병증의 쐐기는 뽑히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총에 맞은 프레데터가 스스로 응급조치를 하는 장면에서 전 완전히 넋을 잃었습니다. '무적이 아니야. 공격을 당하면 피를 흘리고, 스스로 치료하는 존재야.' 가면을 벗는 모습과 마지막 자폭 장면은 숭고하게까지 보였습니다. 호적수를 인정해 경의를 표하고 죽을 지언정 끝까지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긍지 높은 전사.

저는 곧 2편을 구해와 늦은 밤 방의 불을 끄고 홀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약간 나오는 선정적인 장면엔 눈길도 가지 않았습니다. 홀로 인간들을 사냥하는 모습, 주로 범죄자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에서 전 매료된다는 감정을 실감했습니다. 사실 프레데터가 주인공도 아니었고 철저한 악역임에도 그런 걸 따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괴롭힘으로 지친 10대의 민감한 감수성에 당당하고 잔혹한 프레데터의 모습은 구원이었을지 모릅니다. 마지막, 프레데터의 수장 엘더 프레데터가 결국 프레데터를 쓰러뜨린 주인공에게 오래된 전리품을 건낼 때 제 마음은 전율로 떨려 왔습니다.

'들리나, 소년. 나는 긍지 높은 프레데터의 수장인 엘더 프레데터다.'

너무나 익숙한 감각인 환청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이미지를 떠올리며 입밖으로 나오려는 목소리를 막을 생각이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의 스트레스와 약 부작용으로 정신이 온전치 않았으니까요. 오히려 이 환청이 진짜라면? 프레데터가 실제한다면? 나를 선택한다면? 저는 어느새 닫혀있던 창문을 열었습니다. 공기가 통하면 교신도 뚜렷해진다. 대표적인 정신착란 중 하나였죠. 비디오를 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방 창가에 서서, 별없는 하늘을 올려다 본 채 저는 입을 열었습니다.

"저에게 말씀하셨나요?"

'그렇다. 푸른 별의 소년이여. 네가 본 영화는 우리 종족이 인간들과 극비에 맺은 계약으로 만들어진 것. 인간과 정신세계를 잇는 네 능력이 너와 나의 교신을 이루었다.'

"저는 정신질환자인 걸요. 약도 먹고 있어요. 그리고 이 교신 역시 의심하고 있고요."

'의심해라. 그것이 인간이란 증거니까. 묻고 싶은게 있다. 우리 종족을 동경하느냐?'

"진심으로요. 저를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엘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어린 소년이여. 너의 고통을 알고 있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전사의 모습. 몸을 단련해라. 네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 네가 자격이 되면 네 주변에 너와 우리를 이어줄 사람을 찾아주마. 기대하고 있겠다. 우주 최초로 인간의 몸으로 프레데터가 되는 때를.'

얄궂게도 그때의 환청이 제 치료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보통 환청이 들리는 대로 활동하면 무기력하고 나약해지는 게 일반적입니다. 더 악화될 경우 자해라는 극단적인 행위도 이어집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환청에 휘둘리지 않고 정상적인 사고를 해야 하죠. 말로는 쉽지만 몇년에 걸친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환청에 이끌린 마음일지라도 더 강한 자신을 만들어야 겠다는 다짐이 든 것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저는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습니다. 살짝살짝 움직이거나 몸을 지면에 완전히 대는 행위 없이 정자세로 하니 35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 방에는 부모님이 사주신 실내용 철봉도 있었습니다. 철봉을 붙잡고 기도를 하듯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가 이를 악물며 턱걸이를 시작했습니다. 반동없이 5 번. 병증이 있는 사람치고는 양호한 수준이었죠. 저는 프레데터가 무기를 준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어느새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습니다. 억지로 운동할 때의 지겨움은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흘러나온 땀이 허공에 튀겨 방바닥에 떨어지는 사이, 아버지에게서 배웠던 권투와 태권도의 기본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빨리 쉬는 시간이 끝나길 바라며 책상에 엎드려 있는 건 이제 끝났습니다. 종이 치자마자 저는 학교 운동장에 가 철봉에 매달렸습니다. 상체운동은 턱걸이만으로 충분하다 의견이 있을 만큼, 턱걸이는 직접적인 근육 단련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5번 정도하면 부하가 걸려 철봉밑에서 2분 정도 스쿼트 동작을 하고 어느 정도 힘이 돌아오면 바로 철봉에 매달렸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10번을 할 수 있었는데, 그때부턴 쉴 때도 아예 철봉에 매달려 버텼습니다.

점심시간은 하체와 복근 운동에 오롯이 바쳤습니다. 스쿼트와 복근을 백번씩 끊어 오백번씩 했는데 주륵주륵 나오는 땀이 감당이 안 되어 체육복을 두벌 사서 갈아입곤 했습니다. 방과 후엔 매일 5km를 달리고 집에 와선 기본 공격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사정없이 유연운동을 해줬는데 그게 근육의 기능을 좋게 유지해 준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이 두려울 만큼 극심한 근육통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포기한다는 건 농담으로라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엘더 프레데터의 교신이 매일 환청으로 들려왔으니까요. '역시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더욱 노력해라. 미래의 프레데터 전사여.' '너를 위한 무기가 준비되어 있다.' 그런 목소리에 힘입어 저는 손에 온통 굳은 살이 박히도록 철봉에 매달렸습니다. 단련한지 1년이 되어가자 제 몸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소위 말하는 막근육이 붙었지요. 여전히 저는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지만 단련하기 전에 비핸 확연히 줄어든 정도였습니다. 하긴 그냥 봐도 넓어진 어깨를 비롯한 상체근육과 두껍고 단단한 허벅지는 무언의 위협이 되긴 충분했죠. 엘더 프레데터와 교신. 철저히 병증에 따른 행동이라고만 받아들이기엔 저에게 여러 의미를 가진 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머릿속으로 '잘 잤어요?'라는 환청이 들려온다면 일반인은 어떤 기분이 들까요. 저는 한숨을 푹 쉬곤 침대 밖으로 기어 나오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염려스런 눈빛에 죄책감을 안고, 겨우겨우 아침을 먹은 후엔 "다녀오겠습니다."인사한 후 집을 나섰습니다. 앞서 말했듯 너무나 찬란한 햇살이 기다리는 세상에 감사하면서 말이죠. 그래도 목표 운동량을 잡은 이후부턴 학교에 가는 게 그리 괴롭지 만은 않았습니다. 간혹 저를 보고 낄낄대거나 시비를 거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냥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저에겐 '프레데터'가 되겠다는 목적이 있었으니까요.

제가 있던 반의 음악 수업은 금요일 5교시였습니다. 밥을 먹고 복근, 스쿼트 오백번을 하고 나면 10분 정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날은 2학년이 되고 첫번째 음악 수업이 있는 날로,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음악실에 갔을 때였습니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같은 반이란 걸 알고 있던 여학생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무척이나 착해보이는 얼굴. 가늘고 긴 손가락이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제목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음악들이 아름답게 흘러 나왔습니다.

'음악은 우리 프레데터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그런 환청이 들려왔지만, 저는 그 말을 입 밖에 내거나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여학생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을 뿐. 정확히 표현은 못하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동질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전 성우를 꿈꾸며 연습했던 중학생 시절의 내가 그 여학생과 겹쳐 보였습니다. 예술 분야에 문외한인 사람도 알고 있는게 있죠. 예술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선 지루한 연습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혼자 도서관 구석에 앉아 띄엄띄엄 발음 연습하던 저 자신이 생각났습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다음부터 저주받은 과거라고 생각했던 그 때의 모습이.

"아..안녕."

피아노에 집중하고 있던 여학생은 멍하니 서 있는 저를 보더니 어색하게 인사했습니다. 저는 "안녕.."평소는대로 어눌하게 답했죠. 곧 수업이 시작되었고 별다른 접촉 없이 넘어 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도 없었으니 또래 여학생과의 일은 기억에도 없었습니다. 2학년이 된 해부터 남녀 합반이 시작되어 더 긴장하고 불편했죠. 쉬는 시간 종만 치면 운동장으로 달려가 턱걸이를 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였습니다. 매사에 요령이 없어 기술을 익히기에 힘들어 했지만 근육운동은 정직한 분야였어요. 턱걸이 10개를 한번에 할 수 있었을 땐 정말 뿌듯했죠. 오늘도 프레데터의 길에 한 걸음 다가섰어. 그런 병증에 따른 생각을 했을 지언정.

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저는 그날도 턱걸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손에 하도 굳은 살이 생겨 철봉을 붙잡을 때마다 착 감기는 느낌이 들던 느낌. 10번씩 2번을 하고 마지막엔 턱을 올린 상태로 30초를 버티고 내려왔는데, 피아노를 치던 여학생이 딱 보였습니다. 손에는 바나나 우유 하나를 들고서 제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죠.

"이거 먹어. 목마를 것 같아서.."

"..괘, 괜찮아. 너 먹어. 나 안 먹을래."

"그냥 먹어주라..."

여학생은 재촉하듯 바나나 우유를 든 손을 흔들었습니다. 저는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겨우 받아들었죠. 목이 무언가 걸린 듯 갑갑해져서 바나나 우유를 들이켰지만 오히려 뜨거운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살면서 두렵다는 느낌을 많이 받으며 살았지만 그때만큼 심장이 빨리 뛰었던 때가 없었어요.

"고..고마워."

"턱걸이 하면 힘들지 않아?"

"마음은 편해.."

저 자신이 뭐라 하는지도 잘 모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전 가뜩이나 학교에서 괴짜로 유명했지만 그 이상으로 소심했으니까요. "나..다시 해야 돼." 저는 다시 철봉에 매달렸습니다. 그 아이는 철봉 옆에 서서 가지도 않았죠. 다시 저와 이야기를 하기위해 기다리는 것처럼. 수업 종이 올리기 전에 턱걸이를 마친 저는 빠른 걸음걸이로 교실로 돌아갔습니다. 그 아이가 다시 말을 걸까 봐 그랬죠.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가 저에게 다가온다는 것이 정말 두려웠습니다.

그날 점심 시간, 운동장 한켠 구석에서 복근과 스쿼트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각각 오백번을 마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게 숨을 몰아쉬었죠. '훌륭하다.' 선명하게 들리는 엘더 프레데터와의 교신에 뿌듯해 하면서요. 학교 건물로 들어서려는데 평소 가지도 않던 매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저하긴 했지만 여학생에게 바나나 우유를 얻어 먹은 일이 신경이 쓰였어요.

"바나나 우유 하나만 주세요."

이건 전사의 예의야. 그렇게 생각하며 음악실에 가보았습니다. 창문 너머로 몰래 바라보니 그 아이는 오늘도 피아노를 치고 있었습니다. 보통의 십대 소년이라면 그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지루해 보인다? 외롭지 않을까? 힘들겠다? 그런 생각이 든 데에는 저 역시 매일 같이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게 무서웠지만, '프레데터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 정도 일이 대수냐.' 나름 마음을 다지고 조심스레 음악실 문을 열었습니다.

제가 들어선 후에도 그 아이는 피아노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연주가 끝나면 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서 있는데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고, 이따금 악보 위를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만지곤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 티브이에서 본 시각 장애인 연주자의 모습이었으니까요. 이전 음악실에서 처음 보았을 때와 턱걸이를 하고 있던 저에게 말을 걸 때는 눈치 채지 못했기에 궁금증은 더 커졌습니다.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았던 연주가 끝이 나자 그 아이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곤 고개를 떨구었어요. 무척 피곤하고 고민이 있는 듯한, 예전에 제가 한참 발음 연습을하다가 괴로워 하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표정.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달아날 수도 있었지만 저는 천천히 그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아이에게 다가가 바나나 우유를 건낼 때, 저는 무릎 아래가 없어진 것 같을 만큼 겁에 질려 있었지만요.

"이거..먹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아이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저를 쳐다 보았습니다. 그 사이 저는 그 아이가 시각 장애인용 점자 악보로 연주한다는 확실히 알게 되었죠. 저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조금 흐릿해 보인다는 것까지.

"고마워.."

그 아이는 이전 철봉 아래에서 봤을 때에 비해 소극적인 태도로 바나나 우유를 받아 들었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실례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저는 얼른 자리를 뜨려 했습니다. 그 아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제 교복 셔츠를 잡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죠.

"저기, 괜찮다면 이야기 좀 하지..않을래? 너와 얘기 하고 싶어."

우리는 음악실 긴 의자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나란히 앉았습니다. 전 복부가 움푹 패인 듯한 두려움과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 속으로 안정부절 했지만 지난 번처럼 달아나진 않았습니다. 단련을 시작한 후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미약하나마 통제하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발병 했을 때처럼 환청이 입밖으로 마구 나오진 않았지만, 가끔씩 누군가에게 조종받는 대로 말을 하는 느낌은 들었습니다. '괜찮을 거야. 감정을 잘 숨기면 실수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그 아이, 명찰에 지선희라고 적힌 여학생이 먼저 말하길 기다렸죠.

"전부터 너랑 한번쯤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현명아."

"그..래. 알겠어."

저는 똑바로 앞만 보고 있었지만 선희가 먼저 말을 걸자 고개를 살짝 돌렸습니다. 뻣뻣한 웃음을 지으면서요. 조현병 환자들은 타인과 대화할 때 시선을 피하고 얼굴은 잔뜩 굳곤 하지요. 부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힘들더라도 누군가와 대화할 땐 눈이라도 맞추라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 또한..선희는 그런 제 모습에 후후 웃었습니다.

"너는 운동할 때 말고는 항상 그렇게 굳어 있더라."

"워, 워..원래 무표정이야. 그게 내 성격이야."

"너무 긴장하지 마. 대화가 안 되잖아."

"미안.."

얼굴이 빨개져서 머리를 긁적이는 저를 보더니 선희는 약간 제 쪽으로 다가와 앉았습니다. 적극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자기 생각만 하는 듯 싶고..아무튼 제가 학교에서 겪어온 동년배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넌 체육대학에 진학할 생각이야? 운동부 아이들 중에도 너보다 체력이 강한 아이는 드물다는 건 학교에서도 유명하잖아."

"난..그런 거 몰라. 그냥 좋아서 운동하는 거야. 다른 건 없어."

혹여나 '프레데터가 되려는 목표를 들켜서는 안돼.'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운동부 학생들이 저에게 시비를 걸어온 적도 있었지만 전 늘 싸움을 피하곤 했지요. 몇번 일방적으로 얻어 맞은 적도 있었고요. 그래도 단련하기 전에 비하면 견딜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선희는 제 생각보다 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눈치였어요. 하지만 불쾌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놀림 받으며 살아온 시간이 많아 다른 사람이 지금 어떤 의도로 말을 거는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거든요.

"넌 모르겠지만..나 너와 같은 중학교였어. 애들한테 얼마나 무시 당했는지, 괴롭힘 당한 것도 다 알아. 고등학교에 와서 운동을 열심히 했다는 것도..음,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난 널..존경하고 있어."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슬픈 일이지만, 학생 시절 동안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 처음이었으니까요. 선희는 조금 더 제 옆으로 조금 다가와 앉았습니다. 제 가슴이 알 수 없는 감각으로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어요. 두근거림이라기 보단 두려움이었습니다. 괴롭힘 당할 때 말고 누군가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게 처음이었으니까요. 선희는 이전부터 생각해둔 말이 있었는지 바로 말을 이었습니다.

"점심 시간엔 밥 먹고 와서 음악실에서 운동해주면..안 될까? 나도 피아노 연습을 거를 수 없거든. 너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

저는 극심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얘가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저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시키는 데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가족 외의 사람들에겐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는 말을 해버렸죠.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집니다.

"나..나..정신병자야. 혼자 소리 듣고 중얼거리고...몸까지 아프고..막..막 그래. 네가..네가 나한테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그만, 그만 갈게."

저는 더듬거리며 쏟아 놓은 후 달아나려 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을 때 선희가 양 손으로 제 교복 옷자락을 꽉 붙잡은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선희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젖어 있었지만 어쩐지 뭔가를 다짐한 듯 했습니다. 병증이 있는 저에겐 약간 무서워 보일지언정, 쉽사리 달아날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죠. 그리고 지금까지 내게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명아. 난 너랑 친해지고 싶어. 너에 대해 조금은 예측했거든. 내면이 상처 투성이라는 걸. 나도 똑같아. 점점...난 시력을 잃어 가고 있어. 빠르면 올해 안으로 완전히 실명할지도 모른다고 했어. 그래서 점자 악보로 연습하는 거야. 시력을 잃어도 피아노를 치고 싶으니까..난 정신병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지만 네가 좋은 아이란 걸 알아.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지도 않고, 늘 노력한다는 걸..우린 서로 상처를 가지고 있잖아. 우린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부탁이야. 나와 함께 해 줘. 내 옆 자리에 네가 있으면 좋겠어."

고등학교에 올라온 후로 모든 여학생들을 두려워한 저였습니다. 처음 음악실에서 만났을 때 선희의 얌전한 인상에 안도감을 느낀 게 생각났어요. 그리고 갑작스러운 고백에 마음이 흔들린게 사실이었습니다. 타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이는 한명도 없었으니까요.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 선희는 제 오른 손을 꼭 쥐었습니다. 턱걸이를 하느라 굳은 살 투성이인 손을요.

"고마워..정말..정말 고마워.."

그 날부터 우리는 사귀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접촉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요. 쉬는 시간이면 제가 턱걸이를 할 때마다 선희는 음료수를 들고 기다려 주었어요. 같이 점심 급식을 먹고 음악실로 가서 선희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 저 저는 한쪽에서 복근 운동과 스쿼트를 했고요. 방과 후나 주말이 되면 함께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 같이 음침한 애가 여자아이와 사귄다는 게 이상했던지,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건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희한테 더 어울리는 남자가 되고 싶어.' 그런 생각으로 더 열심히 단련을 이어갔지요. 환청을 부정하는 데에도 심적 부담이 많이 줄었습니다. 진짜 교신이라고 믿었던 엘더 프레데터의 목소리도 확연히 덜 들렸고요. 태어나서 처음 여자친구와 사귀게 된 것이, 제 치료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일요일. 저는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밥 반찬을 가방에 넣고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시장으로 갔습니다. 한창 사람들이 맡겨놓은 칼을 갈고 있는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눈에 보이자 저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그 분은 제 비밀을 전부 다 알고 있는 친할아버지 였으니까요.

"저 왔어요. 할아버지."

"어서 와라. 우리 손자."

저는 바로 가방에 있던 반찬통을 꺼내놓았습니다. 두부 부침. 장조림. 오이김치. 갓김치.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매주 정성껏 준비하시는 밑반찬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켠의 작은 냉장고에 반찬을 넣어 놓으시곤 저에게 환히 웃어 주셨습니다. 익숙한 표정. 제가 처음 정신병원에가 약을 먹게 된 때부터 늘 같은 얼굴이셨습니다. 조현병이란 진단이 나와도, 제가 말도 안되는 환청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할아버지는 언제나 웃으셨어요. 지금은 압니다. 할아버지가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뿌리셨을지.

"일단은 전부 만들어 놨다. 아직 날은 세우지 않았지만."

작업실 안쪽의 금속 상자에서 할아버지가 꺼내 보여주신 건 영화에서 보았던 프레데터의 무기였습니다. 원형의 수리검과 날붙이 두 개가 연결된 칼. 창과 숄더 캐논까지. 모든 게 영화에서 프레데터들이 사용한 무기와 똑같았습니다.

"어서 이 무기들을 장비할 날이 오면 좋겠어요."

"내 능력으론 숄더 캐논에서 탄환이 나가게 하진 못하겠더구나. 미안하다."

"아니예요. 제가 프레데터가 되면 엘더 프레데터가 다 알려줄 거예요. 이렇게 만들어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요."

할아버지에게 프레데터가 되겠노라 말한 건 프레데터 영화를 보고 교신-사실 환청이었지만-이 있던 바로 다음 날 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게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날 이후 제가 많은 시간 단련에 매달리는 걸 보시고 어떤 확신이 생기셨는지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어요. 대장장이로서 오랜 세월 일하신 경험을 살려 프레데터의 무기를 만들어 주실 만큼. 네가 프레데터가 되면 이 무기는 전부 다 네것이다. 그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뻐하는 저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어 주곤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할아버지. 저..같은 학교에서 여자 친구 생겼어요."

부모님에겐 바로 알렸지만 할아버지 앞에서 말을 꺼낸 건 조금 나중에 한 일입니다. 제 목소리엔 약간 자신감이 부족했습니다. 부끄럽기도 했고 저에겐 과분한 일이라 생각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조금 놀라시는가 싶었지만 소리내어 웃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우리 현명이가 다 컷네. 여자친구도 생기고."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역시 두려운 마음을 숨기고자 과장된 태도를 보이셨다는 것을. 정신병에 걸려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손자가 다른 아이와 정상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혹여나 엇나간 호기심이 성희롱이나 성추행으로 이어지면 어떻게 하지. 할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하셨다고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밀려 옵니다.

저는 몇번 선희를 바라보며 성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걸 고백해야 합니다. 선희가 저를 바라보면 그런 생각이 달아나 버렸을 지언정, 저는 선희의 교복 옷자락을 얼핏 눈에 담는 사이 성적 환상을 피어올리곤 했습니다. 다행히 생각으로만 그쳐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성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면..그 다음 일은 상상하는 것조차 괴로우니까요.

하지만 제가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일은 음악수업이 끝난 때 일어났습니다. 선생님은 일찌감치 자리를 비우셨고, 피아노 반주를 한 선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던 참이었습니다. 그때는 선희의 시력이 한창 악화되고 있던 때로 저는 부축을 해 주고자 얼른 선희에게로 향했습니다. 우리 둘 사이의 거리는 1미터 남짓한 정도였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인상을 찡그리다가 다가오는 제 얼굴을 알아본 선희는 밝은 얼굴로 한 걸음 내딛었습니다. 그 때 같은 반 아이 중 한명이 선희가 내딛는 사이로 다리를 내밀었고, 선희는 지면에 무릎 부딪히는 소리가 날만큼 세게 넘어져 버렸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