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님 찾아가려다 넘어졌네."
"병신끼리 짝짜꿍이야."
선희를 비웃는 건 평소에도 함부로 말하는 삼인조 였습니다. 저는 바로 달려가 선희를 부축했습니다. 까진 무릎에선 피가 흘렀고 콜록거리는 모습은 심하게 넘어져 몸에도 충격이 간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 평소 이 정도의 괴롭힘은 자주 당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선희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은 제 몸에 분노의 낙인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설을 질겅이는 세 명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뭐야, 병신이. 눈 깔아."
저는 아무 말도 없이 그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도 점차 소란이 일었습니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 게 거슬렀는지 선희의 다리를 건 아이가 제 뺨을 찰싹, 소리나게 때렸습니다. 제 얼굴이 옆으로 살짝 흔들리는 사이 다른 친구들이 선희를 일으켜 주는 것을 확인하자 제 눈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먹을 쥔다. 그렇게 생각한 참이었습니다. 제 주먹은 그대로 불량한 녀석의 뺨에 꽂혔습니다. 이빨 부러지는 감촉과 함께 녀석은 완전히 나가 떨어졌습니다. 제 분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킥킥대던 두 녀석 중 하나의 다리를 냅다 걷어차고 있는 힘껏 뺨을 갈겼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때려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녀석들은 일어나서 달려들기는 커녕 숨조차 제대로 못 쉬고 꿈틀대었습니다. 저는 분노를 못 이겨 거친 숨을 몰아 쉬었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이 불러온 선생님이 올 때까지. 저는 그 녀석들의 위로 올라타 주먹을 때려 박고 싶은 욕망을 애써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전 괴팍한 아이라는 소문이 나 있었지만 조현병 환자란 걸 알고 있는 건 선희와 1학년 때와 2학년인 지금의 담임 선생님 뿐이었습니다. 제가 다치게 한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교무실까지 찾아와 큰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경찰에 고소하겠다는 말까지 나왔지요. 끌려오다시피 학교로 온 저희 부모님은 그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만 하셨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선희는 그렇게 심하게 넘어졌는데. 그런 잘못은 아이들 장난이라며 무마시키고 자기 자식들 다친 것만 생각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제가 조현병 환자라는 것을 떠나 너무나 불합리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제 부모님께서 죄송합니다. 선처해주십시오. 그런 말만 반복할 때였습니다. 저는 한 걸음 내딛어 부모님과 상대편 어른들 사이로 끼어들었습니다. 굳어있는 제 표정을 본 상대편 어른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치는 게 보였지요. 저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이마를 지면에 대었습니다. 굴욕감보단 무척이나 서글픈 기분이었어요. 나는 정신병 환자니까 그 사실이 드러나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정말로 힘들어 질 거야. 내가 어떻게든 잘못을 빌어야해.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이예요. 용서해 달란 말은 안 하겠습니다. 제 부모님을 나쁘게 말하지 말아 주세요."
무릎꿇고 엎드려 비는 제 모습에 상대편 어른들은 조금 당황하는가 싶더니, 더 혹독한 어투로 저를 비난했습니다. 친구를 그렇게 다치게 하다니. 제정신이냐. 이런 깡패를 학교에 두어야 하냐. 혹시 정신병 있는 애 아니냐. 그런 말이 나올 때였습니다. 갑자기 교무실 문이 드르륵 열리며 한 아주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엎드려 있느라 그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담인 선생님이 "선희 어머니...?"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선희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을 때 몇번 뵌 적이 있는 아주머니. 저를 집 안에 불러 음료수와 간식을 주시곤 하실 만큼 너무나 곱고 상냥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아주머니의 눈에 선연히 맺힌 분노는 교무실의 소란을 얼어붙게 했습니다. 왜소한 체격의 아주머니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저를 당장에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상대편 부모님을 향해 차갑게 말하는 모습은 무서울 만큼 냉정했습니다.
"밖에서 다 들었어요. 당신네들 잘난 아이들이 우리 선희를 넘어뜨린 건 생각도 안 해요? 앞도 잘 못보는 아인데, 그런 애를 무릎뼈에 금이 갈 만큼 세게 넘어뜨린 건 장난이라고요? 어디 더 해 봐요. 더 이상 현명이네를 괴롭히면 나도 맞대응으로 고소 할 테니까.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요."
아주머니의 싸늘한 목소리와 분노에 찬 얼굴은 평소에는 상상도 못할 모습이었습니다. 그 눈빛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상대편 부모님은 우물쭈물 기가 죽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하세요...선희 어머님. 저희 애 잘못인 걸요."제 어머니가 선희네 아주머니는 진정시키고자 하자, 아주머니는 더욱 확고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치료비를 물어 줘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선희가 넘어지지 않았더라면 현명이가 주먹을 휘두를 일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현명이를 어떻게 하려하면 절대 가만 있지 않을 거예요. 우리 선희가 받은 피해까지 전부 증언하겠어요. 재판까지 하든 어떻든 일의 잘잘못을 가리고야 말테니 그렇게 아세요."
결국 소란의 끝은 입원비를 물어 주는 것과 제가 2주일 간 근신 처분을 받는 걸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지금은 당시 저희 집과 선희네 집 사정이 궁색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늦은 밤,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와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움켜쥔 채 한숨을 내쉬는 아버지의 모습에 저는 제가 정말 큰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았습니다.
"엘더 프레데터. 말해 줘요. 제가 잘못한 건가요?"
창문을 열고 창틀에 기댄 체 하늘을 향해 중얼거리는 소년. 조현병 환자는 범죄의 가해자보단 피해자가 되는 게 현실이었지만 저는 분명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선희를 넘어뜨린 녀석들은 저를 적지 않게 괴롭힌 아이였습니다. 지금껏 제가 괴롭힘을 당한 것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엘더 프레데터와의 교신이라 믿었던 환청은 항상 단호하고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어요. 아무리 프레더터의 이미지를, 그리고 영화 속 당당한 모습을 떠올려 보려 해도 선희가 쓰러진 모습과 불량배 녀석들을 때려 눕히는 기억만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손가락을 머리카락 사이로 넣으며 몸을 움츠렸습니다. 태어나 처음 사람을 때렸다는 두려움과 죄책감도 컸지만, 나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이 문 너머에 계시다는 현실은 무겁게 제 의식 사이로 죄책감을 피어 올렸습니다.
"부탁이에요. 말해줘요. 나에게 말했잖아요. 프레데터가 될 수 있다고..그걸 위해 단련해 왔는데..왜 제가 괴로워 하는 지금은 아무 말도 없는 거예요."
슬픔에 지쳐 잠들 때까지, 아무런 교신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늦게 일어났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출근하셨고, 식탁에는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밥 꼭 챙겨 먹으렴. 간단한 쪽지를 본 순간 코끝이 아리면서 눈 밑이 따가워졌습니다.
"죄송..해요..."
병증이 난지 오랫동안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었습니다. 조현병 약은 지나친 감정의 격해짐을 조절하는 작용도 있거든요. 아무리 슬픈 노래를 들어도, 불행한 사람들을 보아도. 왜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걸까 원망했던 때가 거짓말 같았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게 다행이었을까요. 저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한 채 한참을 흐느꼈습니다.
"죄송해요..정말..너무너무..죄송해요.."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게 어쩌면 축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주 오랜만에 눈물을 터뜨렸으니까요. 웃음과 눈물을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때는 슬픔에 밀려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 사건은 제 병증이 조금씩 치료되고 있다는 걸 가르쳐준 셈이었지요.
근신 기간 동안 선희네 아주머니는 점심 때가 되면 저를 집으로 오라 하셨습니다. 맞벌이를 하시는 저희 부모님을 대신해 제게 점심 식사를 차려주신 것입니다. 선희도 전치 2주일의 진단을 받아 집에서 치료 중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찾아간 날 선희는 아주 예쁘게 차려 입은 채 피아노 앞에서 저를 맞이했습니다. 저는 옆에 서서 선희가 제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의사의 진단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실명이 진행되어 눈동자는 얼핏 혼란스러운 빛을 띄고 있었지요. 하지만 표정은 아주 밝았습니다. "정말 예쁘다."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 집에서 나온 한 마디. 손을 들어 점자 악보를 읽으려던 선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저 역시 약간 굳은 채로 입을 다물었고요. 그떄 주방에서 점심을 준비하시던 아주머니가 방안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현명이 온다고 선희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일년에 몇번 안 입는 옷들까지 전부 꺼내서 아줌마한테 뭐가 좋은지 물어 보면서 결정한 거란다."
"어, 엄마는 무슨.."
선희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지만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불량배 녀석들을 때려 눕힌 걸 후회하고 있었지만 선희의 모습을 보자 묻어 두려고 했던 악의가 움터 올랐습니다. 아예 얼굴뼈가 부서질 때까지 두들겨 팼어야 했는데, 그런 나쁜 마음이.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은 정말 맛있어서 저는 아주 많이 먹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선희는 음식을 식판에 담아 큰 실수 없이 먹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늘 함께 급식을 먹었지만 선희는 왠지 부끄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아주 천천히 밥을 먹었거든요. 우리 둘을 조용히 바라보던 아주머니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보자 제 마음에도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차는 어떤 게 좋니? 커피 줄까? 코코아로 할래?
"코코아로 마실게요."
"나도 같은 걸로 줘요, 엄마."
"선희는 현명이에게 맞추려고 애를 쓰는 구나. 그거 아니, 현명아? 선희도 하루에 한 시간은 집에서 운동한단다. 현명이처럼 튼튼해지고 싶다나."
"엄마! 아유 참..창피하게.."
선희는 두손을 모아 꼼지락 거리며 부끄러워 했습니다. 제 얼굴도 붉어졌다는 걸 선희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선희의 모습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새로운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교신이라 확신한 환청을 들은 이후로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프레데터가 될 수 없어도 좋아. 이대로 선희와 함께 하고 싶어. 직접 만드신 쿠키를 챙겨주시는 아주머니의 따뜻한 인사를 뒤로 한 채 집을 나설 때, 창문에서 손을 흔드는 선희를 보았습니다. 정확히 저희 집으로 가는 방향에 대고 저를 배웅하는 모습을.
"현명아. 조심해서 가. 내일 또 만나."
저는 몇번이고 뒤 돌아보다가 시야에서 선희의 집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앞을 보고 걸었습니다. 아침에 부모님의 쪽지를 읽고 아주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가슴 벅찬 감동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습니다. 사람에게서 받는 기쁨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난 정신병자가 되었지만 행복에서 멀어진게 아니었어. 나는 실패했을 지언정 패배자가 아니야. 원하는 걸 하다가 이렇게 되었으니까. 나는 낙오된 것도 아니고 버림받은 것도 아니야. 나도 사랑받을 권리가 있어. 나는 가치있는 사람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 저는 아무런 환청도 환통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2주의 시간이 흐르고 저는 학교에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조금 일찍 일어나 선희네 집으로 가 함께 나섰지요. 이제 사물의 윤곽만이 흐릿하게 보이는 선희는 시각 장애인용 스틱에 빨리 익숙해 지려는 듯 저보다 앞서서 걸었습니다. 저는 손을 잡거나 옷자락을 쥐게 하고 싶었지만 선희를 위해서라 생각하며 천천히 뒤를 따를 뿐이었죠.
교실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보통 엘더 프레데터의 '오늘도 단련하는 거다.'그런 교신을 듣곤 했지만 그날따라 전혀 환청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은 2주일만에 학교에 온 저를 보며 뭐라 수군거렸습니다. 놀림을 당하는 거야 익숙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아 책가방을 걸었을 때, 환청을 대신하려는 듯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멋있지 않냐? 자기 여자친구를 위해서 싸우다니."
"평소에 어눌하니까 몰랐는데 되게 남자답다."
"내 남친도 날 위해 저렇게까지 해 줄 수 있을까?"
"혼자서 3명을 손도 못쓰게 만들었어. 딱 한 방씩으로만."
"사나이야. 사나이."
지금껏 제가 들어온 학교 아이들의 말은 전부 저를 욕하거나 놀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귀까지 시뻘겋게 달아오를 만큼 부끄러웠지요. 선희가 다친 모습을 보고 잠깐 이성을 잃었던 것 뿐인데. 많은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감각은 붕 뜨는 것 같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한 긍정과 소란을 일으켰다는 후회가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1교시가 끝나고 서둘러 턱걸이를 하기 위해 교실을 나설 때였습니다. 건물을 빠져 나오는 순간 저는 머뭇거렸습니다. 엘더 프레데터와의 교신이 그때까지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으니까요. 막 단련을 시작했을 무렵엔 턱걸이의 시작부터 끝까지 목소리가 전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체적인 환청은 많이 줄었지만 엘더 프레데터와의 교신은 굳건했었죠.
조현병 환자들이 치료가 진행됨에 따라 두려워 하는 것 중 하나는 현실과 맞딱뜨리는 것입니다. 환청과 환통. 과대망상에 빠져 이 세상이 온통 자기 것처럼 보이다가, 주변 환경과 자기 자신에 대해 알면서 자신감을 잃거나 차라리 두려울 것 없었던 발병시기가 좋았어. 그런 상실감을 느끼죠.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날부터 턱걸이를 하는 와중 신체적인 피로를 더 많이 느끼고 잘 늘어나지 않는 갯수 때문에 실망스런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운동해서 어디다 쓰냐. 아무리 단련해도 난 겁쟁이인데.'얄궂게도 그런 부정적인 심정이 병증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였지만요.
선희는 그런 제 변화를 금세 알아차렸습니다. 선희가 점자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연습하는 점심시간. 그 옆에서 스쿼트와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사이 저는 평소 때와 다른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처음부터 즐기면서 한 것도 아니었고 일종의 병증에서 시작된 단련이어서 였을까요. 현실감각이 조금 돌아온 그 날. '이렇게 인상쓰고 땀 흘리는 것은 의미없는 게 아닐까.'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명아..왜 그래?"
선희가 연주를 멈추고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이자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말을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최근의 변화에 대해 말했습니다.
"몇주일 전부터 소리가 잘 안 들려. 그 동안 운동을 할 때마다 환청을 들으면서 힘을 얻을 때도 있었는데...날 지탱해 주었던 무언가가 사라진 것 같아. 운동도 더 힘들어 지고.."
"나는 너를 힘들게 하는 병증을 겪어 본 적은 없지만..그게 혹시 상태가 좋아졌다는 증거가..아닐까?"
"좋아졌다..?"
"누구나 같은 일을 반복하면 피로를 느끼는 게 당연하잖아.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도 피아노를 치면서 답답할 때가 많은 걸..앞도 거의 안 보이게 되니 실망도 자주 하게 되고..그런 걸 자각하고 바꾸려 노력하는 게 인간적인 모습이잖아. 내 생각이지만..지금 네가 겪고 있는 게 치료의 과정이라고 생각해."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 난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치료에도 한계가 있을 거야."
"약을 먹더라도 일상 생활을 잘 하면 괜찮지..않을..까? 약을 꾸준히 먹어도 병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있잖..아. 학교 아이들만 해도 어눌하네 괴팍하네 하지만 네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아는 애는 없을 거야."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히 꺼내고 몇번씩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여는 선희. 저는 선희가 최선을 다해 제 실망을 거두려 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문득 선희의 작별 인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던 때가 생각났어요. 병증이 시작된 뒤로 거의 느끼지 못했던 기쁨이. "이제 괜찮아. 다시 연습해. 나도 운동할 테니까."저는 중간에 멈췄던 스쿼트를 이어서 하기 시작했고 곧 선희가 두드리는 피아노 소리가 음악실에 감돌았습니다.
이전에 말했듯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읽는 걸 좋아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동화책을 몇번이고 읽는 건 일상이었지요. 성우라는 꿈을 가졌던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전소설의 매력에 빠졌죠. 병증이 난 후 게임과 만화에 탐닉했지만 때때로 짧은 이야기를 짓고 명작 단편 소설을 읽곤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교내 글짓기 대회는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관심이 가는 행사였습니다.
주제는 부모님에 대한 수필과 산에 관한 시를 짓는 것이었어요. 저는 한 글자 한 글자 원고지를 꾸욱꾸욱 눌러가며 글을 적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를 돌봐주신다는 글귀였어요. 빨래나 청소. 식사 같이 당연하지만 특별한 일을 늘 저에게 제공해 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를 천천히 적어내려 갔습니다. 쓰는 도중 몇번씩 머리가 어지럽고 약간의 환통이 왔지만 그래도 큰 무리 없이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어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참 다행이라고.
산에 대한 시를 쓸 때는 게임과 만화에서 본 이미지를 총 동원했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멋진 글귀들을 조합하고 최대한 기교를 부려 웅장한 산의 모습을 묘사했어요. 생각해보면 글을 쓸 때는 열등감이나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았습니다. 프레데터라는 허구의 목적을 정해놓고 운동할 때와는 어쩌면 정 반대였을지 모릅니다. 정말로 글쓰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거웠으니까요. 여유시간의 대부분을 운동으로 보냈지만 게임과 만화를 즐기는 시간을 쪼개어, 하루 오십분 정도는 글을 쓰곤 했습니다. 프레데터가 된다는 목적을 가졌을 땐 교내 글짓기 같은 건 생각한 적도 없었어요. 지금은 당시 선희의 생각이 옳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주위에 관심을 갖게 된 셈이었으니까요.
글짓기 대회에서 2등을 한 날. 국어 선생님이 점심 시간에 저를 부르셨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유쾌한 괴짜로 알려져 있던 분이셨죠. 저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함도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궁금증도 들었습니다. 국어 선생님은 이따끔 문학에 대한 수업을 들을 때 제가 눈이 반짝일 만큼 집중하는 걸 주의깊게 바라보셨다고 훗날 말씀하셨어요.
"현명아. 문예창작과에 진학할 생각은 없니?"
저는 약간 당황했습니다. 체육 선생님이 사회체육과를 권유하신 건 몇 번 있었지만 이런 제의는 처음이었거든요. 뻣뻣한 제 표정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자상한 목소리로 말을 이으셨습니다.
"현명이는 문학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수학과 과학 말고는 내신 점수도 아주 좋고..지금부터 준비하기 시작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저, 저는..글쓰는 데는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글쓰기는 게임이나 만화처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분야거든요.."
"모든 분야는 같아. 현명이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체력이 강했던 건 아니잖아. 부단하고 꾸준한 노력이 변화를 가져오는 거야. 성실한 현명이라면 분명 문학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당장 대답하라고 하진 않을테니 생각해 보렴. 아, 이거 가져가서 선희랑 먹어."
선생님은 작은 병에 든 과일 쥬스 2개를 제게 주셨습니다. 인사하고 상담실을 나선 후 음악실을 향해 걷는데, 이유모를 고양감이 의식의 표면에 떠올랐습니다. 혼자만의 흥분으로 연습에 몰입했던 성우 지망생과는 다른 분야. 남이 뭐라고 하건 말건, 저 자신에게 확신이 없을 지어정 죽자사자 소리내 책을 읽었던 중학생 때와 지금이 이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저는 중학교 때 정말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후, 수없이 후회할 뿐이었던 그 때가 미래에 대한 밑바탕이 될 수 있다. 그런 생각까지 들자 어떤 자신감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자아도취가 아닌 현실에 기반한 도전 의식이.
먼저 온 선희가 연습하고 있는 음악실에 들어설 때까지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쳐서 인지 선희는 소리에 굉장히 민감했습니다. 시력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다른 감각이 발달할 여유가 없었을 것 같지만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저인지 알아채곤 했어요. 제가 말하는 목소리와 톤으로 심리상태까지 파악할 정도였습니다.
"국어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선희는 제 흥분을 파악하기 전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약간 흥분된 어조로 답했어요. 문예창작과로 진학하면 어떻곘느냐는 제의였다고.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한 저는 두서없이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글쓰는 걸 정식으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를 짓는 걸 좋아하고, 예술 계통의 직장을 갖는게 오랜 꿈이었다는 등. 어눌하고 과묵한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라는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때였어요. 제 말이 끝나자 가만히 선희의 얼굴에 한 순간 깊은 우울이 비춘 것은. 흥분에 싸인 당시의 저는 흘려 넘겼지만, 지금 떠올리면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나는 슬픈 표정이었습니다.
"정말 잘 됐다. 꼭 그렇게 되면 좋겠어."
그날 집에 돌아온 저는 부모님에게 모든 걸 말했습니다. 병증이 있음에도 미래를 설계한다는 뜻을 전해들은 부모님은 감격하시다시피 기뻐하셨습니다. 환청도 많이 줄었고 환통 역시 참을 만한 수준이라고. 앞으로 하루 두 시간은 글을 쓸 것을 말하는 저 역시 기쁨과 열의에 차 있었습니다. 운동하는 시간을 줄일 수 없었기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고 만화와 게임은 주말에만 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문예창작과에 진학한다는 목표가 생기니 만화와 게임에 별로 흥미가 없어졌어요. 학교에 가기 전 다양한 시를 배껴 적고 습작 해보는 시간 한 시간. 당시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엔 야간자율학습이 없어서 여섯시 쯤 집에 돌아오면 두 시간 동안 소설 습작을 한 후 운동을 하곤 했습니다. 틈틈이 고전 소설을 많이 읽었고요. 자기 전에 삼십분 동안은 수필집을 소리내어 낭독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예술 작품을 접하니 이전 성우지망생 시절의 망상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의 저 자신이 잘 보여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셨고 대학 입학이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죠. 운동으로 단련된 끈기 역시 포기를 멀리하게 하는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선희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었지만 학교에선 늘 함께 있을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우리 둘다 어려운 목표를 세웠기에 주말에도 각자 연습에 몰두해야 했어요. 가끔 정말로 선희가 보고 싶을 때는 밤이 늦어서야 전화를 할 수 있었죠. 이전에 비해 선희의 대답이 단답으로 끊어지곤 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만큼, 피곤한 상태에서 나누는 여자친구와의 대화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3학년이 된 해. 학교 소식지에 제가 지은 엽편 소설이 게제되었습니다. 얼굴이 붉어질 만큼 떨렸지요. 지금 생각하면 조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고등학생이란 걸 감안하면 읽어줄 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글을 읽고 재미있었다며 말을 거는 아이들이 있었을 만큼.
"나한테도 들려 줄 수 있어?"
선희가 제게 그렇게 말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습니다. 제가 쓴 글을 소리내어 읽어 주는게 선희와 저 사이에선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저는 점심 시간 둘만이 있는 음악실에서 천천히 제가 쓴 글을 낭독 했고, 선희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무런 기억도 없는 남자가 유일하게 행복이라는 단어만을 알고 있었는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행복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 최대한 단순하게 짠 이야기 구조에 묘사하는데 집중한 글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선희는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아쥔 단정한 자세로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묘하게 긴장이 되어서 저는 조심스레 물어 보았죠.
"어떤..것 같아..? 역시 재미 없어..?"
"아니야. 이런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너무 대단하다 생각해. 정말 열심히 했구나."
"그..그 정도는 아니야.."
제 얼굴은 또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평소 하던 대로 선희는 피아노 연습을. 저는 운동을 시작했지만 저는 잘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웠지만 정말 가슴이 떨릴 만큼 기뻤으니까요. 그 후 저는 글을 쓰는데 완전히 재미를 붙였고, 문장을 떠올리는 게 힘겨울 때까지 쉬지 않고 습작을 계속했습니다. 어느 일요일 할아버지가 집으로 찾아 오셨을 때도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 단편 소설을 적고 있었지요.
"잘 되어 가냐? 어렵지는 않고?"
"예. 부족한 실력이지만 글을 쓰는 게 정말 좋아요."
"즐기는 것만으론 직업인이 되기 힘들다. 네가 직접 정한 일이니 정말로 노력을 했으면 좋겠구나."
"국어 선생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미약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 알면 됐다."
할아버지는 십분 남짓 키보드와 씨름하는 저를 뒤에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책상 위에 놓은 두꺼운 국어 사전에는 손때가 타 사용한지 몇년은 되어 보였지요. 어린 아기를 쓰다듬듯 국어 사전에 손을 얹으신 할아버지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프레데터가 되고 싶니?"
저는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제 눈을 들여다 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무척 노쇠해 보였습니다. 마치 두려운 진실을 앞에 두고 고민하시는 듯한 모습.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 조금씩 들려오던 엘더 프레데터의 교신을 마침내 환청이라 단정짓고 무시하고자 노력한 게 얼마 전이었으니까요. 병증이 심했을 때 실수했던 여러가지 행동도 뚜렷하게 기억났고 프레데터가 되고자 단련했던 기억은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현실이었습니다. 지난 번 폭력을 휘둘렀을 때 엘더 프레데터의 교신이 들려오지 않은 후, 저는 그것조차 거짓이었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거든요. 예대에 진학하겠다는 목적을 세운 후엔 운동할 때도 그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조금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고, 간헐적으로 환청이 들릴 때는 고통스러웠습니다. 무언가 초자연적인 힘에서 탈락당한 듯해 패배적인 마음도 들었고요. 그럼에도 눈 앞의 현실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은 몇년씩 약을 먹으면 서서히 줄여가는 사람도 있다지만 저는 약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약을 먹으면서라도 제대로 살면 된다. 부모님은 그렇게 저를 달래주셨고 저 역시 몇번이고 나는 사람답게 살거야. 다짐했습니다.
바로 대답하지 않고 저는 벽장 깊숙이 간직된 상자 하나를 꺼냈습니다.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주신 프레데터의 무기였죠. 날만 세우지 않았을 뿐 영화에 나오는 그대로 섬세히 세공된 것이었습니다. 손자가 영화에 나온 괴물이 되고 싶다며 이런 걸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할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셨을까요. 저는 상자를 할아버지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맹목적으로 프레데터가 실제한다고 믿으며 그 환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단련했던 시간들. 어린 시절 소중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다른 어린 아이에게 선물하는 청년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가운데 저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더 이상 저에겐 필요하지 않아요."
그때 할아버지의 표정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요. 질척한 진창에 맨발로 뛰어 들어 힘겹게 걸어가던 이가 가까운 거리에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 걸 깨달았을 때, 그런 상황을 떠올리는 얼굴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쓰러지듯 두 무릎을 땅에 대시더니 상자 위로 몸을 기대셨습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제 손을 꼭 잡고 몇번이고 말씀하셨죠.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약의 영향으로 저는 눈물을 잘 흘릴 수 없었지만, 조금씩 흐느낌이 새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밝게 웃으며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라고요. 그렇게 할아버지와 저는 손을 잡은 채 한참을 울었습니다.
따뜻한 봄과 무더운 여름을 건너 시간은 서늘한 바람이 손짓하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여러가지로 바쁜 나날이 이어졌죠. 저는 단편 소설 공모전에서 몇번 입선했고 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한다는 목적은 한 걸음 다가와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선희와 음악실에 함께 있는 건 이미 일상이었어요. 점자 악보에 완전히 익숙해진 선희의 피아노 연주는 문외한이 들어도 전문가 수준이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도 선희가 연습을 하는 가운데 저는 운동을 했습니다. 세트 수는 하나 줄였지만 한번에 하는 횟수를 늘려 목표량을 채우기가 더 힘들어진 상태. 저는 이빨을 악물고 끊어질 것 같은 복근을 죄여가며 수없이 몸을 일으켰습니다. 오백번을 다 채우자 긴 한숨이 흘러 나왔죠. 그때 선희의 연주가 멎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늘 곡을 완전히 친 후에야 마무리를 하는 성향을 알고 있는 저는 무슨 일일까, 하는 심정으로 선희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선희는 연습을 중단한 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더욱 연습에 매달리던 평소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희의 등 뒤로 다가갔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잠깐 궁리를 하려던 차 선희가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리고 아주 빠르게, 저에게서 몸을 돌린 채 말했습니다.
"우리 이제 이런 거 그만 했으면 좋겠어. 점심 시간마다 이러는 거..이제 피곤해."
저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습니다. 의식에 시커먼 장막이 드리워져 겹겹이 덮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선희는 스틱을 잡으며 여전히 뒷모습만을 보인 채 말을 이었어요.
"나 이제 완전히 장님이야. 피아노 치는 것도 버겁고 일상생활도 힘들어. 더 이상 다른 이와 관계맺는 건 안하고 싶어. 넌 좋은 소설가가 될 거고. 좋은 반려자와 함께하게 될 권한이 있어. 내가 널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나같은 장님 때문에 네 인생을 망치게 할 순 없어. 이제 그만 하자. 난 눈도 안 보이니까 학교에서 아는 체만 안 하면 아무 문제 없잖아. 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선희가 정말로 음악실을 나서려 할 때 였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선희의 손목을 붙잡았습니다. 우리가 사귀게 된 그날. 정신병자란 걸 밝히고 자리를 피하려 했던 저를 멈춰세웠던 선희의 몸짓을 재현하는 것이었을까요. 지금 이 순간 만남을 끝내려 하는 선희를 멈춰 세운 것은 저의 필사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선희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난..이제 너와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놔줘."
"처음엔 네가 일방적이었잖아. 지금은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 내가..너에게 부탁하고 싶어."
주마등이라는 건 죽음에 임박해서야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상에 빠져 살던 어린 시절부터 성우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심리적 부담에 못 이겨 조현병에 걸린 과거. 프레데터가 되겠다는 허상 하나로 힘겨운 단련을 이어온 제 모습이 선명하게 의식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두 손을 뻗어 선희의 손을 꼭 잡고, 시력을 잃은 선희가 생활의 대부분을 의탁하고 있는 청력에 호소하듯 말을 이었습니다.
"나..이제 프레데터가 될 수 없어. 그동안 운동할 때마다 들렸던 목소리가 다 거짓이었어. 이젠 운동을 해도 몸이 너무 피곤하고 버거워.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다음부터 잘 안될 때마다 마음이 아플 때도 많고. 거짓이라 인식한다 해도 목소리는 계속 들려 오고..정말로 너를 힘들게 하는 건 나야. 하지만..하지만..내 인생을 아픔으로 채우고 싶지 않아. 선희야. 난 앞으로도 너와 함께 하고 싶어. 프레데터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널 지켜주기 위해 운동할 거야. 너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쓰기를 바래. 정신병자일지언정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부탁이야. 거짓말은 하지 마. 앞으로도 같이 지내고 싶단 말야. 내가..내가 이 세상을..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줘."
말을 마쳤을 때, 제 눈에선 한 줄기 눈물이 뺨 위를 굴러 떨어졌습니다. 선희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어요. 선희는 감정에 복받힌 듯 제 품에 안겼습니다. 언제나 저를 향해 웃어 주던 얼굴은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앞을 볼 수 없는 눈에선 방울 방울 이슬이 흘러내렸습니다. 선희는 제 가슴에 얼굴을 기대어 흐느끼더니 힘겹게 한 마디 한 마디를 꺼냈습니다.
"너랑..너랑 같이 있고 싶어..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살아가고 싶어..지금의 행복이..영원했으면 좋겠어..아까 했던 말..다 거짓말이야..네가 좋아..나와 함께 있어주는 네가 좋아..미안해...이렇게 이기적이어서...나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아이라서..정말..정말로 미안해.. "
저는 대답 대신 선희의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저에게 어떤 사명감이 다가왔습니다. 강해질거야.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선희를 지켜주고 싶어. 함께 살아가고 싶어. 계속해서 눈물을 떨구는 서로를 끌어 안은 채, 우리 두 사람은 슬픔 사이로 믿음이 피어오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단히 노력을 이어가는 나날은 곧 예술대학 면접날까지 이어졌습니다. 면접날 아침. 저는 어머니가 공들여 다림질 해주신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버지는 자동차로 저를 학교까지 태워주셨고요. 정문을 들어설 때 제 가슴은 무척이나 두근거렸습니다. 약간씩 들려오는 환청 따위는 무시할 수 있는 긴장감. 실기 시험은 이전에 치루었고 오늘 면접에서 합격 여부가 결정되었습니다. 많은 지원자들 중 한 사람이 되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저는 몇번이나 다짐했습니다.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라고요.
차례가 되어 면접관 앞에 앉았을 때 저는 굳어지려는 얼굴에 최대한 미소를 짓고 면접관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리 상태가 호전되었다 해도 정신질환자 특유의 어눌함은 드러날 수 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저는 최대한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이따금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지금껏 읽고 써온 경험을 살려 대답했고요. 면접관들은 웃음을 짓거나 인상을 찡그리지도 않고 담담한 표정이었습니다. '이런 게 압박이라는 거구나...'자꾸만 어깨가 움츠러 들고 목소리가 작아지려 했습니다. 질문의 난이도도 점점 높아져 자신감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고요. 하지만 도망치고 싶진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도 싸움의 한 모습이라는 소설 구절을 떠올리며 '나는 말로써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사야.'제 모든 능력을 살려 눈 앞의 현실에 맞섰습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랑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말해 보세요."
질문을 받는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른 건 선희가 아니라 프레데터 영화를 처음 본 날이었습니다. 저는 바짝 말라 따가운 느낌까지 드는 입술로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저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할 만큼 잔잔한 목소리로.
"저는 어렸을 때 한 공상과학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나오는 괴물을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날마다 학교에서 힘든 운동을 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을 기울이면 꼭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때의 기억은 철없는 시절의 망상이라 여기게 되었어요. 하지만..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화에 나오는 괴물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었어요. 제가 흘렸던 땀과 눈물은 결코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기울여서. 현재의 자신보다 더 강한 자신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저에겐 늘 최선을 다하는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서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어요. 이 학교에 입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을 때 확신을 가졌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학교 공부를 하는 것..모두에 최선을 다했던 건 제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한 일이었습니다. 더 강해지면. 더 좋은 사람이 되면 제가 사랑하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 갈망이 바로 이 세상에 대한 사랑입니다. 원하시는 답과는 다른 관점일지 모르지만..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사랑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면접관들은 "알겠습니다. 수고 했어요."짤막한 말로 면접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날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최선을 다했어. 상반되는 두 가지 마음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전철을 타고 버스에 오르내린 것 같습니다.
제가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선희는 무난하게 예술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선희와 같은 대학을 지원했고, 문창과의 경쟁률이 꽤 센 편이라 함께 대학을 다니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많이 불안했어요. 그래도 평소처럼 운동하고 글을 쓰는 걸 계속했습니다.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할지언정.
합격 사실을 통보받았을 땐 기뻐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선희와 같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기쁨과 소설가라는 꿈을 향해 처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는 성취감. 정말 온 몸에 전율이 흐를 만큼의 감동이었습니다.
대학 진학이 확정된 후 할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날. 저는 작업실 전시대에 프레데터의 무기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번 돌려드리긴 했지만 할아버지가 그 무기들을 다 처분하셨을 거라 예상했기에 무척 놀랐어요. 칼 가는 작업을 하시던 할아버지는 무기 앞에 서 있는 저를 보시더니 곧 일손을 멈추셨습니다.
"어서 오너라."
"할아버지..이 무기들..치워버리신 거 아니었나요?"
할아버지는 조금 슬퍼보이는,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가슴으론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그런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네가 이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영화에 나온 괴물이 되고 싶다고 했던 날 말이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너는 그때 아주 오랜만에 눈을 반짝였단다. 병증이 생기고 처음이었지. 네 말을 듣고 우리 손자가 정말 마음이 병들었구나..싶어서 많이 속이 상했지만. 너를 조금이나마 기쁘게 해 주고 싶었어. 이 무기는 결국 네가 아니라 나를 위해 만든 거야. 아픈 손자에게 할애비로서 뭔가를 해 주었다는 마음을 가지고 싶어서. 네가 이제 필요없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돌려 받은 무기를 가지고 작업실에 왔는데 왠지 버리고 싶지 않더구나. 비록 병증이라 해도 네가 회복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서 말이다. 결국 이렇게 두게 되었다."
"그랬군요.."
저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진열대에 놓인 무기들을 건드렸습니다. 계속해서 운동을 하면 이 무기들을 장비할 수 있고. 엘더 프레데터와 대면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과거의 제 마음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그중 영화에 나온 모습을 섬세하게 재현한 숄더 캐논을 들어 올렸습니다. 프레데터가 진짜 총으로 만들어 줄거라고 생각했던 무기를. 저는 숄더 캐논을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며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탄환이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할아버지가 절 위해 만들어 주신 거니까. 이렇게 간직하고 계셔서 감사해요. 저..정말로 기뻐요."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 위로 슬픔과 감동이 얽혀 애환에 찬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제가 예술 대학에 합격했다고, 선희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다음에도, 훗날 무사히 학교를 졸업해 선희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도..할아버지의 그 웃음은 한결 같았습니다.
제가 성장하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시절에 대한 기억을 이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앞서 말했듯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제 삶은 거의 완벽한 인생입니다. 조현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망정 약을 먹으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요.
지금 할아버지가 만드신 무기들은 제 서재 책장 사이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재작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 제게 남겨주신 유품으로 소장하고 있어요. 날이 서 있지 않고 탄환은 나가지 않지만 때때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그 무기들을 만져봅니다. 간절한 소망을 품었던 당시 기억에 다시금 의욕이 생기곤 하거든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당신에게도, 탄환이 나가지 않는 숄더 캐논처럼..당신의 인생을 긍정하게 해 줄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