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 피투성이 소나타

1화

by 김명현

(잡지 좋은 생각을 참조하여 쓴 글입니다)


새벽이란 아침의 전초전이 아니었다. 각기 다른 삶이 시작되는 순간일 뿐.

류시현은 작은 빵가게의 사장이자 제빵사였다. 새벽 네시가 되면 남자 두명 누울 공간의 쪽방에서 눈을 뜨고, 어젯밤 자기 전 발효실에 넣어둔 빵반죽을 나무 작업 테이블에 올려 놓는다. 막 자고 일어나 졸음이 묻어날 법도 했지만 두 눈동자엔 예리한 기운이 감돌았다. 직접 만든 발효종으로 반죽해 고소하고 달큰한 향이 은은히 피어 오른다. 스크래퍼로 나무 판을 톡톡 친 후 반죽을 분할하는 손놀림은 바람이 연상될 정도였다. 식빵 팬에 성형이 끝난 반죽을 넣고 2차 발효에 들어가자 바로 바게트 반죽을 준비한다. 제빵은 시간관리가 핵심. 연속으로 발효와 굽기 작업이 겹쳐졌다. 계속되는 작업이 이어지는 동안 단 일분도 쉬지 않는 시현이었다. 흡사 이 가게에 흐르는 시간의 지배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침 일곱시가 되어 판매대에 식빵이 배치되고 가게 문을 열었을 때, 그제서야 시현의 얼굴에 웃음이 깃들었다.

"자..오늘도 좋은 아침이다."

가게 이름은 '빛나는 나무' 였다. 반듯하고 정갈한 목재가 배치된 가게. 케이크나 쿠키 종류는 없이 식빵과 바게트만을 판매하고 있었다. 옥수수 식빵. 완두콩 식빵. 밤식빵. 건포도 식빵. 우유 식빵과 네모난 식빵. 가장 잘 팔리는 야채 식빵이 있었다. 긴 바게트, 주먹 만한 크기의 하드롤이 메뉴의 전부. 가게 안에 앉을 자리가 없는 테이크 아웃 전문점이었다.

시현이 오전에 보충할 빵 반죽을 계량하고 있을 때 첫 손님이 왔다. 대학 셔틀 버스를 운전하는 정지수 아저씨. 팩에 든 두유와 야채 식빵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곤 하는 단골 손님이었다. 시현은 주문을 물어보지도 않고 따끈따끈한 야채 식빵 하나를 계산했다. 지수 아저씨는 언제나 과묵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곤했기에 시현은 바로 작업을 계속했다. 자신에게 와닿는 시선이 느껴져 눈초리만 살짝 들었을 때, 뭔가 생각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수 아저씨가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오늘은 다른 거 드릴까요?"

"아, 아냐. 저기..시현 씨는 운전 안하나?"

"제가 기계는 영 어려워해서요. 그리고 겁이 많아서 안 하게 되네요."

"그렇군..사실 지난 번에 한 학생한테 얘기를 들어서..나처럼 운전이 업인 입장에선 철렁하더라구."

빛나는 나무의 작업장은 판매대와 거의 완전히 오픈 되어 있었다. 혼자서 모든 역할을 다 하기에. 올해 서른 셋의 시현은 빵일을 한지 11년 차 였다. 저울을 잠깐 잠깐 확인하며 반죽을 분할하는 와중에도 손님과 얘기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 지수 아저씨는 한 손에 야채 식빵을 든 채 조금 흔들리는 목소리를 끄집어 냈다.

"늘 화장기 없이 버스에 타는 학생이 하나 있어. 조금 어두운 느낌이었지. 늘 고민하는 얼굴이라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는데..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더군. 중학생 동생은 사고 후유증 때문에 잘 걷질 못한대."

"안 됐네요. 대학생이면 이십대 초 중반일 텐데."

"스물 두살 먹은 학생이야. 학교 수업이 끝나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더군...얼굴이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세상일이란게 참.."

"그런데..슬슬 통학 시간 된 것 같은데요."

"아이구, 내 정신 좀 봐...빵 잘 먹을게. 수고해."

"운전하면서 드시지 마세요."

황급히 버스로 돌아가는 지수 아저씨의 뒷모습에선 어쩐지 감정을 숨기는 것에 서툴다는 느낌이 엿보인다. 이야기 했던 학생에 대해 잠깐 생각하던 지수는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어깨를 으쓱한 후 빵 반죽에 의식을 집중했다. 오후에 나갈 반죽을 발효실에 넣은 후 잠깐 카운터 앞에 선다. 빛나는 나무엔 오전 중에 빵을 사가는 사람이 많았다. 학생, 직장인들이 하나씩 사서 들고가는 경우가 대부분. 열시 열한시 쯤 아주머니 손님들이 가고 나면 첫 반죽으로 만든 빵은 거의 다 소모 되었다. 이제부터 식사 시간. 시현은 냉장고 한켠에 넣어진 닭가슴살과 오늘 아침 재료로 쓰고 남은 신선한 채소를 꺼낸다. 닭가슴살은 얇게 썰어 열기가 남은 오븐에 넣었다 빼고, 채소류는 그냥 생으로 먹었다.

"잘 먹겠습니다."

시현은 미각에 있어선 거의 괴물이었다. 밀가루를 혀 위에 대는 것만으로 신선도를 맞출 만큼. 그런 미식가의 식사가 매일 이런 식인 것엔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시현에게 빵보다 더 중요한 이유. 걷어올린 소매 아래로 드러난 시현의 양 팔은 흡사 뼈가 부러졌다 붙기라도 한 것처럼 굴곡이 져 있었다. 마른 체격이지만 넓은 어깨는 아래로 딱 떨어져 삼각형을 그린다. 되도록 십일자로 서면서 힘을 쓸 때도 허리를 굽히지 않고 무릎을 구부리는 동작. 중국 무술을 익힌 자는 체격과 서 있는 자세에서 그 증거가 드러난다. 십분도 안 되어 식사를 끝낸 시현은 바로 양치질을 하고 가벼이 기지개를 켰다. 오후에도 힘내 보실까.

하교, 퇴근하는 손님들에게 판매할 일단의 빵들이 나왔을 때였다. 보통 아침에만 얼굴을 보던 지수 아저씨가 왠일로 한 여학생과 함께 오고 있었다. 어리디 어린 여학생은 너무 체격이 말라 얼핏 중고생으로 보였다. 아까 지수 아저씨가 말한 그 불우한 학생이라 예상하는 시현.

"인사해라. 여기 빵집 사장님이셔."

"안녕..하세요."

학생은 조금 내성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시현은 자신의 눈을 마주 보는 학생에게서 내면의 강함을 감지한다. 빛나는 나무엔 150만원을 주고 해외에서 사온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었다. 검소한 씀씀이를 자진 시현이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고가품. 달콤한 향미의 케냐 원두를 갈면서 묻는다.

"에스프레소 좋아하니? 우유도 있는데."

"아..감사합니다. 괜찮다면..저는 카페 라떼를..."

"좋아. 아저씨는 아메리카노면 되죠?"

"으응. 연하게, 미지근하게 타줘."

빵 냄새로 가득한 가게에 달큰한 향미가 피어오른다. 마땅히 앉을 자리가 없어 포스기를 올려놓은 카운터 위에 커피를 두었다. 카페 라떼가 담긴 잔에 입을 맞추는 여학생,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는 아저씨. 단숨에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들이키는 시현은 조금 거칠어 보인다.

"이 가게는 시현 씨 가게야. 이제 서른 셋인데 대단하지 않니? 정말 성실한 친구야. 너도 많이 힘들겠지만.."

커피가 아주 맛있어서 인지, 누군가의 염려를 받는 것이 오랜만이어선지 여학생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자상한 어른의 태도로 아저씨가 학생을 격려하는 동안 시현은 빵을 종류 별로 진열했다. 대단한 말이 오간 건 아니었다. 나도 부모없이 자라서 이해한다. 좋은 사람에겐 좋은 인생이 따라온다는 흔한 말이 띄엄띄엄 시현의 귀로 흘려 들어 온다. 아저씨가 야채식빵과 옥수수 식빵을 두개씩 사서 학생 손에 쥐어 주었을 때, 시현은 도구들을 설거지하는 것으로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학생을 외면했다. 몇 번씩 인사하며 학생이 가게를 나가려 하는 순간이었다. 시현은 불쑥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

"다음에 동생이랑 같이 와. 또 커피 타 줄게."

"감사합니다...커피...정말 맛있었어요."

학생이 가고난 후, 아저씨의 한숨 소리가 들려올 때 시현은 사용한 컵을 설거지 했다. 무심한 표정으로 툭 말을 던지는 모습은 뭐라 설명하기 힘든 분위기를 풍겼다.

"저 학생, 여기서 몇 시간 거리에 사나요?"

"버스로 사십 분은 가야지."

"빵 다 식겠네요."

"여기 빵은 식어도 맛있잖아."

"그래도 갓 구운 것만은 못하죠. 동생이 중학생이랬죠?"

"응. 이제 열 다섯 먹은 여동생이래."

시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도 빵을 하나 사가지고 가게를 뒤로 했다. 저녁 손님들은 오늘 따라 달콤한 밤식빵을 많이 사갔고, 영업 시간이 끝나자 남은 빵들은 시현이 후원하는 가까운 고아원 측으로 인계된다. 그것이 오후엔 예상 소비량 보다 약간 많은 빵을 만드는 이유. 평소 같으면 가게 문을 닫고 청소한 후 내일 쓸 반죽을 쳤지만 오늘은 반대로 반죽 작업을 끝낸 후 정리에 들어간다. 텅빈 매대만 보이는 가게 안을 둘러보는 시현. 일년에 천 오백만원씩 저축해 겨우 장만한 내 가게.

'조금 좁긴 해.'

메뉴의 폭은 좁았지만 대량으로 팔릴 만큼 시현의 빵에는 경쟁력이 있었다. 가게 안에 손님들이 앉아서 먹을 자리를 마련할 생각도 했지만 제품을 많이 팔아야 유지가 되어 어쩔 수 없이 테이크 아웃 전문점이 된 셈이었다. 이후 며칠간 시현은 몸에 완전히 익혀버린 빵가게 업무를 계속하는 사이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언제나 아침에 오는 지수 아저씨의 얼굴에 밝은 기색이 비친 날. 그제야 시현에게 들러붙었던 고민이 또옥, 떨어져 나갔다.

"들어 봐. 시현 씨. 이전에 왔던 그 학생. 간호사 자격증을 땄대. 게다가 심리 치료를 받아 동생의 증상도 많이 호전되었고, 지난 번에 웃으면서 나한테 과일까지 한 묶음 선물해 줬다니까. 나는 한 것도 없는데..얼마나 고맙던지. 정말 다행이야. 그렇지 않아?"

"동생이랑 같이 우리 가게 오라고 해요."

시현은 툭 내뱉고는 가게 안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약간 당황한 지수 아저씨. 잠시 후 시현이 뭔가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왔을 때, 지수 아저씨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여학생이 동생과 함께 빛나는 나무에 온 건 이틀날의 일이었다. 동생은 한 쪽 다리를 조금 절었지만 표정은 아주 밝았다. 가게 앞에 놓인 파라솔 달린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보자 여학생은 놀람과 기쁨이 선명한 얼굴로 시현에게 다가갔다. 우유와 쥬스가 담긴 소형 쇼케이스도 하나 놓여 있었다. 시현은 갓 구워 따끈따끈한 야채 식빵과 바나나 우유 하나를 계산해 준 후, 튤립 모양의 라테 아트를 띄운 카페 라테까지 한 잔 건냈다.

"카페 라테도 계산해 주세요."

"우리 가게 커피는 내 서비스 메뉴야. 내 기분에 따라 맘대로 주는 거고 돈도 안 받아."

"감사합니다..잘 먹을 게요."

두 자매는 오랫동안 잊어왔던 여유를 만끽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현은 쯔읍, 혀를 찬 후 로브스타 원두 100프로로 내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들이켰다. 맵싸하고 강렬한 쓴 맛이 입 안을 꽉 채우는 사이, 잠깐의 휴식시간 동안 시현은 자신의 빵을 먹는 자매를 곁눈질하며 시간을 보냈다. 함께 어울릴 자신은 없는 소심한 소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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