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고 질 수 있는 건 고통을 견디기 때문이었다.
옥수수 식빵의 반죽은 조금 질었다. 전분 성분이 있어 손가락에 들러붙기도 쉬었지만 시현의 빠른 손놀림에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아는 농가에서 공수받아 신선하게 삶아 솎아낸 옥수수 알갱이. 통조림 옥수수와는 맛 자체가 틀렸다. 진한 풍미가 가득한 빛나는 나무의 옥수수 식빵은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 손님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다. 쫄깃한 감촉과 은은한 단맛. 친환경 재료로 만들었다는 걸 증명하듯 전혀 속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었다.
시현은 2차 발효를 시작하며 무의식적으로 혀를 입밖에 내밀었다. 조금 건조한 것 같은데. 밖을 내다보는 시현. 계절은 반 팔 차림이 추워 보이지 않는 봄이었다. 작년에는 이맘때쯤 길가는 사람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곤 했었다. 빛나는 나무 역시 문을 꼭 닫은 채 작업을 했고, 올해는 황사가 약해져 다행이라 생각했다. 완성된 빵에 영향을 줄 정도의 건조함은 아니었지만 시현은 작업실 벽면에 붙은 메모 보드에 물 양 늘릴 것, 이라 체크 해놓았다.
시간은 세시 반. 야채 식빵은 거의 다 나갔고 완두콩 식빵과 옥수수 식빵은 조금 남아 있었다. 조금 양을 줄일까 싶었지만 유독 두 가지 식빵을 맛있다고 했던 고아원 아이들 얼굴이 생각나 평소처럼 만들었다. 쓰리 샷 에스프레소를 냉수에 섞어 단번에 마시는 시현. 빛나는 나무 내부는 좁았지만 그래도 누울 정도의 공간은 있었다. 시현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리를 넉넉히 벌리며 지면에 손을 대었다.
체격에 비해 약간 긴 다리는 그림이 연상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백팔십도로 찢어졌다. 무리한 동작이지만 시현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정면으로 다리를 찢은 상태에서 좌우로 상체를 굽힐 때도 한 순간의 주저함 조차 없다. 안정적인 호흡으로 잠시 몸을 펼친 채로 있던 시현은 녹은 납이 원래의 형태를 갖추듯 평온하게 일어섰다. 가벼이 손목을 내저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이 천연덕스러울 정도.
먼지털이를 들고 가게 앞 간이 테이블을 털 때였다. 약간 통통한 체격의 여학생이 동그란 황갈색의 원판을 오독 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시현은 그 여학생이 대학교 1학년이라는 것과 단 것을 좋아한다는 걸 떠올렸다. 여학생은 빛나는 나무 앞에 왔을 때, 갓 구워져 나온 빵 냄새를 음미하듯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었다.
"밤식빵 줄까?"
"으응..오늘은 옥수수 식빵이 땡겨요."
"하나 줄까?"
"아니지..완두콩 식빵도 좋을 것 같은데.."
"하나 줘?"
"하지만 빛나는 나무는 야채 식빵이 진리인걸.."
"하나?"
"아..정말 모르겠어요. 빛나는 나무는 다 식빵이라 동시에 사면 부담스럽단 말예요."
"고맙다."
"아이 참.."
양 볼에 바람을 넣으며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짓는 여학생. 시현은 그제야 여학생이 들고 있는 게 달고나 라는 걸 알았다. 오독 오독 소리가 날만큼 세게 씹는게 영 불안했다. "천천히 녹여 먹어."시현이 한 마디 하던 순간, 여학생의 표정이 바뀌며 까득하는 소리가 튀어 올랐다. 여학생은 벌레 씹은 얼굴을 하더니 퉤 하고 금니 파편을 뱉어냈다. 혈색 좋은 살결이 싸늘히 질리더니 세상 무너진 듯 한숨을 내쉬는 여학생.
"어떻게 해..큰일났다.."
"완전히 떨어졌네."
시현은 손바닥으로 굴러 나온 금니 파편을 자세히 보았다. 한번 씹혀서 그대로 씌우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 말을 막 하려던 차, 여학생은 법석을 떨었다.
"어떻게..어떻게 하지..? 아직 얼마 안 되었는데..엄마한테 혼나겠다..아이 참..왜 하필 달고나를 먹어 가지고..! 아휴 진짜 어쩌면 좋아.."
"그건 다시 못 쓸..."
"아, 그래. 이대로 가져가서 다시 씌워달라고 해봐야 겠다! 아저씨, 빵은 나중에 살게요!"
시현을 의식하긴 했는지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여학생은 치과를 향해 질주 했다. 그 뒷모습을 망연히 보고 있던 시현은 스마트 폰을 꺼냈다. 여학생은 없이 사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양 부모가 고단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걸 시현은 알고 있었다. 가벼운 터치 음이 울리더니 이내 친구의 목소리가 여보세요, 하며 날아든다.
"나야."
"무슨 일이야?"
"반찬 가게집 둘째 딸이 금니를 씹었어. 뱉는 걸 눈 앞에서 봤고."
"아..시우? 뭐 먹다 그런거야? 금니 해준 지 얼마 안 됐는데..."
"달고나."
"그게 다야? 내가 너무 약하게 해준 거 같네. 새로 맞춰 줘야겠어."
"얼마쯤 들어."
"30만원 정도?"
"내가 내줄게. 아니, 빵으로 대신 줄게."
"괜찮아. 내가 잘못한 거니 무료로 해 줄 거야."
"한 달로 하자. 병원 문 열기 전에 간호사 한명 보내. 야채빵이랑 더치 커피 하나씩 줄테니까."
"좋아. 내가 뭐라고 하던 너라면 네 뜻대로 할 테니까. 고마워."
"천만에."
통화를 마무리 한 후 시현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실온에 두어 부드러워진 버터를 풀어 설탕을 붓는다. 가루 재료를 넣어 두 손으로 부슬부슬 섞자 밤식빵에 넣을 스트로첼이 금새 완성되었다. 식사용으로 식빵이 많이 팔리는 것을 생각하면 빛나는 나무에서 일반적인 단과자 빵에 해당하는 밤식빵. 달콤한 향내가 풍길 무렵 시현은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룽고 샷을 뽑았다. 야외 테이블 하나를 비치한 후 매일 같은 시간에 찾아오시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밤식빵 하나만 줘."
시현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밤식빵에 아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곁들여 내었다. 시간은 오후 다섯 시. 야외 테이블을 찾아온 손님들이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빵만 사고 돌아가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할아버지는 밤식빵을 조금씩 찢어 가며 아주 천천히 먹는다. 아메리카노에 빵 조각을 담갔다가 오물거리는 동작 모두 여유가 감돌다 못해 게을러 보일 정도. 한참 빵을 진열하는 시현을 향해 언제나처럼 말을 던졌다.
"장사는 잘 되나?"
"보통입니다."
"내 말 좀 들어 줘."
"일해야 합니다."
"거 젊은 사람이 야박하긴."
"얘기하다가 빵 탑니다."
"조심하면 되지."
"그렇게 안 됩니다."
시현의 말투는 골이 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목소리는 평이했다. 가게 안에서 문 밖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만큼 시현의 청력은 예민했다. 사실 오감을 넘어서 육감까지 예리한 시현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입 안의 빵을 우물거리다 아메리카노와 함께 목 구멍으로 넘긴 후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바쁘게 일하는 시현을 방해하는 모양새. 하지만 시현의 빠른 몸놀림엔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떨떠름한 표정으 지으며 노인 특유의 고집센 목소리를 꺼낸다.
"왜 이 집은 식빵만 팔아?"
"혼자서 쉽게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작은 빵도 있고..쪼꼬렛이랑 크림 넣은 그런 빵도 만들어 팔아."
"일하기 번거로워서 안 됩니다."
"앉은 자리는 왜 바깥 밖에 없어? 좀 늘려 봐."
"가게가 작아서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하지 말고 좀 해 봐."
"안 됩니다."
가게 중앙에 서서 훈수 놓는 할아버지를 샥샥 피해가며 빵을 진열하는 시현. 오븐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을 듣고 바게트에 스팀을 넣는다. 바쁘게 움직이는 시현을 보던 할아버지는 뭐라 뭐라 중얼거리며 혀를 차더니 다른 손님들이 오기 전에 가게를 뒤로 한다. 저녁 타임을 맞아 오늘치 빵을 모두 구운 시현은 작업목을 갈아 입고 카운터에 섰다.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을 맞이하듯 깨끗한 앞치마를 두르면서.
이튿 날 오후. 금니를 씹었던 학생이 밝은 얼굴로 빛나는 나무를 찾았다. 이번엔 거리낌 없이 밤식빵을 고르는 동작엔 어제 금니가 빠져 울상이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현은 달콤한 바닐라 시럽을 넣은 카페 라테를 건냈다.
"병원에서 잘 해 줬어?"
"네! 우리 의사 선생님 짱이예요. 무료로 해 주셨거든요! 엄마한테 혼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좋아요!"
"앞으로 단 걸 먹으면 이빨 잘 닦고 너무 단단한 거 막 먹지 마."
"에, 사장님 완전 할아버지 같다!"
"너는 너무 애 같아."
여학생은 메롱하고 혀를 내밀더니 콧노래까지 부르며 밤식빵을 덜레덜레 들고 집으로 향했다. 즐거움이 가득한 뒷모습을 보며 시현의 얼굴에 옅게 드리워지는 웃음. 잠깐 숨을 돌리다가 밤식빵 할아버지가 올 때가 됐음을 느끼고 커피를 갈 때였다. 기억에 없는 얼굴이지만 인상에서 밤식빵 할아버지가 보이는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가게에 처음 왔는지 매대를 둘러보더니 시현에게 묻는다.
"여기 단 빵이 어디 있어요?"
"밤식빵과 건포도 식빵이 답니다."
"아아..밤식빵인가 보네. 하나 주세요."
"오천원 입니다."
시현은 능숙하게 종이 봉투에 빵을 담았다. 좁은 가게 안을 둘러보던 아주머니는 가벼운 한숨을 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시간에 별난 할아버지가 와서 귀찮았죠? 대신 사과할게요. 내가 딸이예요."
"저도 별로 친절하게 대하진 않았습니다."
"듣던 대로 화법이 정직한 사람이네...우리 아버지. 이집 밤식빵을 제일 좋아하셨는데 이제 드실 수가 없네요. 어제 가셨거든요."
"안 됐습니다."
시현은 진심이었지만 평소의 어투와 별 차이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그런 시현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목례한 후 자리를 떠났다. 시현은 평소 업무을 방해하듯이 굴었던 할아버지를 잠시 생각했지만 곧 잊혀져 버렸다.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해 자책하거나 냉소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잠깐 야외 테이블에 나가는 시현. 항시 할아버지가 앉아있던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룽고로 탄 아메리카노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는다. 앞으로 볼 일이 없을 할아버지를 추모하듯 잠시 가만히 있는다. 늘 밤식빵을 먹다가 훈수를 두던 할아버지. 오분 쯤 후 시현은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들이킨 후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흘러간 일에 미련을 두지 않는 듯한 눈동자가 얼핏 차가워 보인다. 앞치마를 걸치는 와중에도 그런 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감정을 베어내는 듯한 냉혹함을 숨길 필요성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