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세월도 영원한 이별 앞에선 찰나일지어다.”
조선 시대에선 사형 당한 죄인을 3일 후 가족에게 내어준다. 하지만 김대건 신부는 참수형을 당한 뒤 시신이 매장되었다. 시끄러운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권력자들의 무책임에 의해서.
“아까운 인생이야. 열여섯 살때 7개월 길을 걸어가 신부인지 뭔지가 되어서 십년 만에 돌아왔다는데.”
“숱한 학자들과 논쟁해서 대답이 막힘이 없었다고 하니 말 다했지.”
“나랏님이 밝지 못하니 귀한 인재를 막 죽이는 구만.”
“이 사람, 말 조심해.”
포졸들이 매장한 장소에 머물러 있다. 보통은 내버려 두겠지만 신경 쓰이는 사람이 많겠지. 소개가 늦었는데 난 늑대다. 갈색 늑대라 큰 개만한 체격이지만. 조선에선 흔히 보이는 승냥이 수준 쯤 될 거다.
“어쩐다..저렇게 포졸들이 지키고 있으니..”
“극악한 놈들. 어찌 죄없는 젊은이를 죽이고 저럴 수가 있어. 울술라 자매님 심정은 어쩔지..내 죽는 한이 있어도 신부님 시신을 모셔 갈 거야.”
“천주님을 생각하며 기도하자. 감시가 소홀해질 틈이 있을 테니.”
이 대화는 야음을 틈타 시신을 이장하려는 천주교도들의 대화다. 다들 젊은이지만 포졸들의 감시 아래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으리라. 난 천천히 기어 그림자 밖으로 나왔다. 내가 늑대가 된 후 처음으로 다른 이를 지켰던 그 날 밤을 떠올리면서.
“뭐,뭐야. 왠 늑대가..”
“눈이 완전 서낭당 귀신같군!”
“조심해! 다가온다!”
난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르 목을 울렸다. 당파를 들어 눈앞의 늑대를 쫓아낸다는 생각도 못할 만큼 포졸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내가 한 마장 거리로 다가갔을 때 이미 줄행랑을 칠 만큼. 나의 분노는 인간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맞춤하게 도울 수 있을까. 저 늑대는 천사일 거야.”
“어서, 어서 시신을 옮겨야 해! 서둘러!”
“천주님. 천주님께서 의로운 늑대를 보내셨어. 아아 성모님! 당신은 존재하시며 자애로우십니다!”
교인들이 땅을 파는 동안 나는 잠시 앉아 있었다. 그들은 실로 빠르게 시신을 수습해 다급하면서도 경건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난다. 나는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달은 밝았다. 흡사 옳은 일을 하다 순교한 젊은 신부가 떠나는 길을 비추듯이.
“장한 일을 했구나.”
대천사 가브리엘. 여성성으로 주로 표현되고 자애롭다 일컬어지는 천사. 나는 이빨을 드러내며 이천년 전 내가 속해있던 대천사에게 적의를 표했다.
“사라져. 너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야.”
“그래. 너의 어리석음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어. 스테파노를 구했다면 지금쯤 흰 날개를 가지고 주님 곁에 자리했을 텐데. 악마들이 너를 현혹한 것이니 전적으로 네 책임이라 할 수는 없지만.”
“시끄러워. 내 친구들까지 모욕하지 마. 모든 건 내 뜻이야.”
“그 자유의지라는 착각이 너를 짐승으로 만든 거다.”
“아무 생각도 판단도 없이 주를 섬길 뿐인 천사 따위 내 쪽에서 거절한다. 네 말대로 난 짐승이야.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늑대란 말이다.”
“한심하다 못해 동정심마저 드는 구나. 어쨌든, 그의 시신을 구한 건 옳은 일이지. 또 보자꾸나. 슬픈 늑대여.”
애초에 형상을 드러내지 않았던 가브리엘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난 불쾌한 눈을 뜨며 고개를 밑으로 떨구었다. 난 그랏죠다. 슬픔 따위는 어울리지 않아. 내가 믿는 것을 지킬 뿐.
“으음..”
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에 보이는 건 노동과 운동으로 단련된 사나이의 육체와 굳은살 박힌 손. 침대 옆에 있는 거울에 비치는 건 검은 눈동자와 잘 관리한 어깨 길이의 흑발. 한마디로 말하자면 28살 청년.
“오래 전 꿈을 꿨군.”
가볍게 일어서서 욕실로 향했다. 샤워로 몸을 가다듬고 옷을 갈아입으니 시간은 다섯시 사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자는 방은 내가 운영하는 카페와 연결된 곳이다. 흰색 작업 가운을 입고 하얀 앞치마를 두른다. 머리를 단정히 하나로 묶고 바짝 깎은 손톱을 의식한다. 가게 불을 켜는 순간, 빛이 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청결한 주방이 주인을 맞이했다. 벽에 설치된 보드에 적힌 건 어제 들어온 자재와 예약된 케이크 목록.
내 이름은 김견회. 시장과 상가 밀집 지역 사이에 자리한 베이커리 카페 ‘빨간 실타래’의 사장이다. 그리고 카톨릭 성인 돈 보스코를 지켰던 그랏죠이기도 하고. 아까 길게 말한 꿈은 보스코 신부를 모셨던 시절 조선에 가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돌려준 과거다. 인정하긴 싫지만 가브리엘이 말한 대로 난 본래 천사였으니 그 정도 초능력은 아무 것도 아니니까.
“자..그럼 오늘도 시작해 볼까.”
우리 카페에선 빵은 만들지 않는다. 쿠키와 케이크. 음료 몇 가지를 파는 작은 카페니까. 일단 버터를 믹싱기에 넣고 크림화하는 작업을 한다. 초콜렛은 최고급 발로나. 견과는 국산 것을 쓰다가 먹는 걸로 장난치는 것들이 많아 캘리포니아 산으로 하고, 계란과 밀가루는 유기농 제품을 고집하고 있다.
원형 틀에 스쿱으로 쿠키반죽을 널어 오븐에 넣는다. 아르바이트 하는 애가 오기 전에 케잌 시트를 해 놓아야 한다. 노른자와 흰자를 구별하는 별립법으로 하는 게 맛이 안정적이기에, 수고가 들어가지만 머랭을 올리고 노른자 거품을 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우리 가게에선 1호, 2호 크기의 케이크와 조각 케이크를 만드는데, 예약도 받고 있다. 오븐에 시트를 넣고 커피 머신을 점검할 때쯤. 늘 정확한 시간에 문이 열린다.
“견회 오빠. 저 왔어요.”
“어서와. 리아야.”
공들여 땋아 잘 매듭지은 머리카락. 소녀란 표현이 어울리는 동안이지만 내면의 지혜가 엿보이는 갈색 눈동자가 매력적인 23살 여인이 내가 말한 우리 가게 아르바이트생이다. 이름은 윤마리아로 다들 리아라고 부른다.
“오늘은 2호 생크림 열 다섯 개랑 초코 열 개. 1호는 각각 일곱 개 씩이야.”
“평일이어선지 주문이 적네요.”
“지난 주 토요일은 바빴잖아. 쉬어가는 날도 있어야지. 그럼, 데코 좀 부탁해.”
“네. 금방 끝낼게요.”
내가 가게 바닥을 쓸고 닦을 때, 리아는 짤주머니에 크림을 담아 케잌 위에 짜넣는 작업을 한다. 우리 가게 케이크는 쇼트 케이크와 초콜렛 케이크. 티라미슈가 전부다. 그리고 디자인이 매일 바뀌는 걸로도 유명했다. 특별한 미적 감각과 꾸준한 연습으로 데코 기술을 갖춘 리아를 난 전적으로 신뢰해 이젠 딱히 터치를 안할 정도. 원목 테이블을 깔끔하고 닦고 시장 꽃가게에서 배달해준 생화로 장식할 때쯤 리아가 작업대를 정리하는 걸 확인한다.
정문 옆에 open 이라 적힌 보드를 놓는 것으로 개점을 시작했다. 내 가게 ‘빨간 실타래’는 시장과 번화가의 중심쯤에 위치한다. 출퇴근 하는 직장인들을 상대로 1L 아메리카노를 4천원에 파는 게 아침 주력 상품이랄까. 5년 전 처음엔 신맛이 나는 원두를 썼는데 대중적 취향이 아니어선지 일년 후부터 마일드하고 고소한 맛으로 정해 놓았다.
“여기 1L 커피 아이스로 하나 하고 초코랑 쇼트 조각으로 3개 씩이요.”
이틀에 한번 오는 단골손님. 게임 회사 팀장인 석현 씨다. 오래 앉아 있는 일을 하지만 타고난 강골이어선지 피로감이 별로 묻어 있지 않는 인상이다. 회사 여직원들을 위해 오늘처럼 아침부터 케이크를 사가곤 해서 리아가 좋게 보는 손님.
“오늘 케이크 모양은 유난히 귀엽네요. 여직원들이 좋아하겠다.”
“감사합니다. 어제 퇴근하고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고 와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지브리 좋죠. 전 원령공주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열 번을 넘게 봤을 거예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석현 씨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매니아다. 다니는 회사가 게임 계열이니 무리도 아니겠지. 난 에스프레소 3샷을 얼음 채운 플라스틱 잔에 담고, 리아가 포장한 조각 케잌을 쇼핑백에 넣는 걸 확인했다. 우리가 일하는 내내 지브리의 장점에 대한 논설을 펼치던 석현 씨는 웃고 있는 리아를 보고서야 눈을 찡긋하며 웃는다. 삼십대 중반 나이도 귀엽게 보이는 나이일가. 그러는 와중 석현 씨 얼굴에 묻어나는 설레임. 평소와는 조금 다른 감정이라 나는 넌지시 물었다.
“오늘 따라 밝아 보이네요.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요?”
“그, 그렇게 보이시나요? 사실..지난 주부터 인터넷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하고 사귀게 되어서요..하하..일요일날 처음 만났는데 마음이 잘 맞아서..부끄럽네요.”
“잘 됐네요. 오래오래 잘 되시길 바래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문을 나서는 모습. 홀을 보고 있는 리아는 간결한 레이스 장식으로 된 메이드 복을 입고 있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보단 빅토리아 시대 정통 메이드 느낌이었다. 이어지는 아침 손님 중엔 리아의 관심을 끌려는 젊은 남자들이 제법 되었다. 대담하게 말을 걸거나 쪽지를 건내는 이도 보인다.
“우리도 일해야 하니, 과한 말씀은 삼가 주십시오.”
리아에게 튤립 한송이를 들이밀던 한 손님은 나직한 내 목소리에 허둥지둥 달아나 버렸다. 리아의 빼어난 외모 못지 않게 시장에서 유명한 건 내 주먹 실력이다. 천사의 초능력을 쓰지 않고 권투와 레슬링 실력으로 깡패 스무 명을 제압한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흔히 시장에서 무력을 따지면 정육점이 첫손에 손꼽히지만 이 부근에선 카페를 운영하는 나다. 가볍게 싸움을 거는 성향은 아니지만.
“어제는 거절 편지 몇 통이나 썼어?”
“여섯 통이요. 많지 않았어요.”
“정말 적네. 내가 무섭게 굴어서 그런가.”
“지금처럼 해주시는 정도면 충분해요.”
리아는 의식적으로 헤어 캡에 달린 레이스를 만지작거린다. 글을 잘쓰고 시적 영감이 있는 이 여인은 아직까지 남자에게 마음을 준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쑥맥이나 공주병이라 하기엔 매번 격식에 맞춰 거절 편지를 쓸 만큼 성의가 있는 아이다. 내 밑에서 일한지는 2년쯤 되었는데 이제 데코 기술과 라테 아트 솜씨는 자리가 잡혔다. 구애하는 남자들을 눈앞에서 거절하는 건 아직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아침 타임이 어느 정도 넘어가고 약간 여유가 나는 11시. 나는 분주하게 오가느라 지저분해진 에스프레소 머신을 깔끔하고 닦고 커피 가루 찌꺼기를 싹 치웠다. 쿠키를 구운 팬도 부스러기를 털어내고 실리콘 시트가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닦은 상태. 먹는 거 취급하는 곳은 종류를 막론하고 과하다 싶을 만큼 깔끔한 게 좋지. 리아도 객석을 정리한 후 책장과 소품을 먼지털이로 한번 싹 털었다. 한시에서 두시 사이에 손님들이 오기 때문에 이 시간이 우리의 점심 시간이다.
“저 먼저 먹을 게요.”
객석에서 도시락을 먹는 리아였다. 아버지가 일하는 아침마다 준비해 주는 샌드위치로 계절에 맞는 과일과 신선한 채소를 듬뿍 넣었다. 리아의 부모님은 번화가 중심가에 있는 수제 버거를 운영한다. 나도 몇 번 인사한 적이 있는데 성실하고 선하게 사는 좋은 부모였다.
“햄버거 가게 물려 받을 생각은 없어?”
나는 점심 식사인 날계란 하나 까넣은 우유를 마시며 물었다. 손님 평도 좋고 유명 백화점에서 가맹점 제안을 해온 건 유명한 이야기다. 이전부터 반복된 질문이지만 리아의 대답은 늘 한결 같다.
“네. 켈리 버거는 어머니 아버지가 이룩하신 거니까요. 전 5년 안에 저만의 카페를 열고 싶어요.”
“아무튼 대단하다니까.”
“견회 오빠가 들을 말이죠. 23살 때부터 이렇게 안정적인 카페를 운영하고 있잖아요. 지난 번 말한 제안은 승낙하신 건가요?”
“응. 케이크를 가르쳐준 스승님이 고개까지 숙이며 부탁하셔서. 1년 후에 타워팰리스의 유명 제과점이니 나에겐 과분한 자리지. 거리만 가까웠다면 리아도 데려갈 수 있을 텐데.”
“저도 아직 상황이 확실치 않아서요. 일하며 배울 수 있다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고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 봐. 케이크 기술이 있으니 시현에게 말해보는 것도 방법이겠지.”
시현의 이름이 나오자 리아의 손에 들린 샌드위치가 입가에서 멈췄다. 시현은 시장 한 쪽에 있는 식빵 전문 가게 ‘빛나는 나무’의 사장이다. 나와 시현이 라이벌 관계라는 건 시장과 번화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 과자를(케이크도 분류상 과자로 들어간다) 주력으로 파는 카페. 종류가 몇가지 되지만 식빵만 파는 빵집. 겹치는 부분이 있다면 커피 같은 간단한 음료를 취급하는 것. 모임에서 만나면 이마를 갖다 붙이며 으르렁 대는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유명했다. 리아는 눈에 웃음을 담으며 샌드위치를 마저 베어 문다.
“시현 아저씨야 작년부터 같이 일 해 보자고 권해주셨으니까요. 다리를 놓아 준 것도 견회 오빠고..두 분은 친구인지 앙숙인지 구분이 안돼요. 그래도 빛나는 나무는 부부가 함께 하니까..전 다른 곳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요.”
내가 대답을 하려고 할 때였다. 유리문에 똑똑, 하고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린다. 리아는 곧장 일어나 허리가 심하게 굽은 할머니를 향해 다가간다.
“우리 딸. 엄마가 맛있는 거 가져왔어.”
세월에 쓸린 주름자국과 오랜 노동으로 뼈마디가 휘어진 손에 리아에게 다가간다. 반쯤 뭉개진 풀빵이 팥 앙금을 비죽 드러낸 채 초라히 쥐어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더럽다는 표현은 과하지만 바로 입에 넣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리아는 웃는 얼굴로 찌부라진 풀빵을 먹었다. 아마 미지근하면서 달짝지근하겠지. 풀빵장사를 하는 연희 아주머니의 시어머니인데 일년 전부터 정신을 놓았다. 인간이 정의해놓은 질병 중 최악이 치매라는 걸 인정할 수밖엔 없는 노릇. 연희 아주머니는 입은 거칠지만 남편 사후에도 시어머니를 잘 모시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은 깔끔했고 백발도 잘 빗어 쪽지어 놓았으니까. 손목에는 핸드폰 번호와 주소가 적혀 있었다. 리아가 풀빵을 먹는 걸 보며 정선 할머니는 해맑게 웃는다.
“정말 맛있어요.”
“어쩜 이리 착하고 예쁠까. 얼른 시집가야 되는데 보내기가 싫네. 엄마랑 평생 같이 살까?”
“그것도 좋지요.”
피크가 오기 전의 식사 은 우리에게 중요한 휴식 시간이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방해받으면 반발심이나 귀찮음이 들기에 충분했다. 리아의 이름은 카톨릭 신자인 아버지가 지어준 것이라 들었는데, 성모 마리아를 기린다는 의미가 있었다.
“할머니 목마르지 않으세요? 커피 드릴까요?”
“카피 좋아. 엄마 카피 좋아해. 설탕 넣고. 쌉쌀하고 좋아.”
리아는 자기가 사 놓은 고급 믹스 커피를 두포 뜯어 얼른 타 주었다. 가게에서 쓰는 원두 커피가 더 좋지 않냐고 할 사람은 없지만, 리아는 연희 아주머니에게 물어 정선 할머니가 좋아하는 메이커를 사 놓은 것이었다. 두 손으로 귀여운 머그컵을 감싸 쥐고 천천히 커피를 마실 때, 리아의 예쁜 얼굴에 비추는 미소는 햇살을 담고 있었다.
“맛있어. 우리 딸 최고.”
“자, 조금 있으면 점심 드실 시간이에요. 얼른가요.”
“그래. 우리 엄마 늦으면 화낸다. 가자. 가자.”
연희 아주머니의 노점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15분 정도 걸린다. 리아가 도시락으로 싸온 샌드위치는 반개가 아직 남아있었다. 할머니를 데려다 주고 오면 급하게 먹거나, 손님들이 밀리면 냉장고에 넣어 놔야겠지. “서두르지 말고 다녀와.” 난 리아가 식사한 자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할머니의 굽은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난 가게를 지켜야 하니 메이드 복을 입고 시장을 가로지르는 리아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오랫동안 반복된 그 광경에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 지는 조금 알 수 있었다.
“자, 그럼..쿠키를 조금 더 구워 볼까.”
난 냉동에서 휴지 시킨 쿠키 반죽을 팬에 떠 놓으며 중얼거렸다.
은총을 가득 받으신 이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내 버릇 중에서도 유독 나를 괴롭히는 기도문. 난 까드득 소리가 날 만큼 이를 깨물며 금방 비워진 스텐 볼을 싱크대에 던졌다. 방금 전 리아의 따뜻한 모습을 잊게 만드는 기억에 통증을 느낀다.
“상관없어. 뭐가 어찌 되었건.”
팬닝된 쿠키를 오븐에 넣었다. 손님이 오기까지의 몇 분 동안. 난 오븐 손잡이에 이마를 댄 체 거친 숨을 몰아쉰다. 잊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분명한 과거를 직시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