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중독이 되어버린 이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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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마른 게 권력이더라고요
중학교 1학년 시절, 나는 반에서 왕따를 당했었다.
배신, 외면, 외로움, 수치심을 거슬러 올라가면 매번 이 같은 기억에 도달한다. 10년 넘게 이 사실을 외면하며 스스로를 미처 보듬어주지 못했던 것 같아, 이 글을 공개하는 지금도 여전히 두려움이 앞선다.
왕따를 당한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하듯, 없다. 누구도 집단 따돌림을 당할 정당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학창 시절 내내 누군가가 나를 미워할만한 이유를 추측하고 고치려고 노력했었다. 내 첫 번째 추측은 입학 초,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화장한 친구들 이름을 칠판에 적은 것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야 말을 몇 번 섞어보지도 않은 '노는' 아이들이 나를 미워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와 다르게 중학교는 그런 원칙주의가 통하지 않는 세계라는 것을 깨달은 뒤로, 나서서 모범시민이 되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하지만 한 번 '날라리들'의 미움을 산 나는 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또래 분위기에 쉽게 동요되는 14살짜리 여자아이들의 세계에서, 나를 미워하는 분위기는 일부 아이들에서 반 전체로, 반 외부로 번져 나갔다.
'내가 너무 배려심이 부족한 건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나대는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남을 배려하는 편인 내가, 미국에서 살다와 눈치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갖게 된 두 번째 추측이었다. 최대한 자기표현을 숨기며 살기로 했고, '시크하고 조용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무대에서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콘텐츠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 내가, 오랫동안 '짜져 있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를 더 작게, 조용하게 만들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을뿐더러 나를 향한 친구들의 무시는 늘어만 갔다. 무엇부터 잘못되었을까, 남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싫어할까. '잘 나가는' 친구들은 무슨 권리로 저렇게 목소리를 떵떵거리며 남들을 괴롭히고, 다른 아이들은 기세에 눌려 고통받아야 하는가. 나는 중학교 1학년 생활을 초기화시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중학교를 다시 입학할 수만 있다면, '계급' 꼭대기 가까이로 올라가기 위해 처음부터 노력하고 싶었다.
당시 나의 인식 속에서 '권력 있는 애들'은 첫 번째로 목소리가 크고 싸움을 잘하는 아이들이었고, 두 번째로는 예쁜 아이들, 혹은 예쁘게 꾸미고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예쁘고 마른 친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두의 관심과 칭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고, 선생님과 학부모들 포함 모두가 '조심스럽게' 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때부터 내 가치관 속 외모는 매우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중학생의 세계에서 발견한 외모와 권력의 상관관계는 왕따의 악몽과 겹쳐져, 이후에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잣대 중 하나로 자리 잡혀 버렸다.
외모를 가꾸고 얻게 된 뜨거운 반응
왕따의 쓰라린 경험 이후, 중학교 2학년부터는 렌즈와 화장을 배우고 외모에 신경을 쓰며 또래 문화를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보수적이고 엄격한 부모님과 학교 규정 탓에 화장품도 몇 가지만 가방 깊숙이 숨기고 다녔고, 수학여행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간간히 꾸미는 것이 전부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누구의 권력에도 눌리지 않겠노라 스스로를 힘이 세고 강인한 사람으로 포장하며 '센 척'을 하고 다녔다.
고2 겨울, 마지막 대학 면접이 끝난 직후에는 엄마와 성형외과를 향했다. 망설임 없이 쌍꺼풀 수술을 감행했고, 인생 첫 헬스장을 끊어 한 달간 6kg를 감량했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많은 학생들이 꿈꾸는 '스무 살의 대변신'을 실천했다.
'업그레이드된 나'를 향한 반응은 뜨거웠다. 공대에 입학했던 것이 한몫했는데, 남자 선배들로부터 대시도 여러 번 받고, 주변에서 '예쁘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여학생이 얼마 없는 공대에서 적극적으로 꾸미고 다녔던 새내기는, 주변에서 받는 시선과 칭찬에 행복함을 느꼈다. 어렸을 때 가만히만 있어도 왕따 당하던 나는 이제 없고, 가만히만 있어도 주목받는 내가 되어 있었다. 학창 시절 내내 그토록 바라던 '외모 권력'을 비로소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기쁨에 젖어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에 목말라 있었던 수아는 '내가 예쁘고 귀여우면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구나' 생각하게 되죠. 이후에도 수아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면 '특정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을 끝없이 학습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사랑받으려면 여자로서 여러 가지를 갖춰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사랑받기 위해선 예뻐야 하고, 귀여워야 한다. 그러면서 내가 예쁜 걸 알면 안 되고, 고분고분해야 하고, 너무 똑똑해도 안 된다. 항상 웃고, 맞장구쳐주고, 착하고, 상냥하고..." - 「또, 먹어버렸습니다」, 169pg
댄스동아리와 '여대생'의 고정관념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뒤, 나는 들어가고 싶었던 여성댄스동아리에 들어갔다. 10살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 이 동아리는 대학생활의 1순위 버킷리스트였다. 특히 '여성' 댄스동아리를 들어가게 된 이유는 (페이스북에서 접했던 이 동아리의 무대 영상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남초 사회에서 벗어나 '여자인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댄스동아리에 들어와서 연습을 해보니, 예쁘고 마른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비교를 하고 싶지 않아도 다 함께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할 때면, 내 다리 굵기가 옆에 있는 친구들에 비해 두껍게 느껴졌고, 살집은 춤 동작을 둔하게 만들었다. 대체로 다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외모에 대한 관심도도 다른 집단에 비해 평균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무대를 위한 화려한 의상과 화장을 준비했고, 공연 직전에는 많은 동아리원들이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탈코르셋 운동이 사회적으로 일기 전의 SNS 콘텐츠들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기에 충분했고, 어딜 가나 20살 여대생은 긴 머리에 수수한 화장을 하고 여리여리한 핑크색 테니스 스커트를 입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덕분에 표본의 '예쁜 여대생'을 닮지 않으면 내 20대 초반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술과 안주를 접하고 불규칙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내 살은 고등학교 때만큼 다시 불어나 있었다. 날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나는 항상 '다이어트 모드'로 살고 있었는데, 운동보다는 식이조절에 의존하며 몇 끼 굶고 몇 끼 폭식하는, 잘못된 방식의 다이어트였다. 심지어 다이어트 약을 복용해보기도 하고, 일주일 동안 굶는 디톡스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여름에는 비키니를 입기 위해 다이어트, 겨울에는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다이어트, 봄과 가을에는 공연을 위한 다이어트를 반복했다.
다이어트와 날씬한 몸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 식이장애로 넘어가기 쉽습니다. 살이 찌면 내 인생은 실패한 것 같고 날씬해야만 스스로가 가치 있게 여겨지죠. 혹시 여러분도 이런 느낌을 받고 있으신가요?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사회문화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받고 싶은 사랑과 인정을 다이어트를 통해 얻고 싶을 수도 있고, 내가 속한 집단이 날씬한 몸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우 소속되고 싶은 마음과 집단의 압력 때문에 다이어트에 몰두할 수도 있습니다. - 「또, 먹어버렸습니다」, 65pg
관리하는 자에게 쏟아지는 찬사
시간이 흐르며 나의 다이어트 지식은 (다행히도) 점점 바로잡혀 갔다. 근육량과 대사량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잉여 탄수화물이 지방이 된다는 것을 배웠고,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의 차이와 물과 휴식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세 끼를 균형 있게 챙겨 먹고 운동을 병행하며 '건강한 다이어트의 정석'을 따르는 사람으로 거듭나 있었다. 그리고 2019년 가을, 한창 공부와 교외활동을 병행하며 '갓생'을 살고 있었던 나는, 첫 바디프로필을 촬영하기로 결심했다.
PT 선생님 없이 혼자 준비를 하다 보니 근육 늘리기와 지방 줄이기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게 되었고, 결국 촬영한 바디프로필의 결과물은 '요가복을 입은 프로필'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당시에는 바디프로필이 지금만큼 유행하지 않았고, 또래 친구들 중에 헬스장을 다니며 근력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달리는 지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람들은 바쁜 학교 공부와 교외 활동을 하는 동시에 자기관리까지 챙기는 사람을 존경해줬다.
그런 찬사에 취해, 관리와 통제의 미덕에 의심 없는 숭배를 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다이어트 도시락을 먹고 수업 시작시간보다 1시간 일찍 등교해서 복습 혹은 예습을 했다. 연강 두 개를 들은 뒤 쉬는 시간 15분 동안 포장해온 샐러드를 빠르게 해치운 다음 다시 연강 두 개를 들었다. 저녁 식사로는 그릭요거트와 프로틴시리얼을 먹은 다음 다시 학교 독서실에 앉아 공부 혹은 과제를 하고, 밤늦게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는 루틴을 반복했다.
그리고 이런 나의 하루를 꾸준히 인스타그램으로 자랑했다. 여기서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외모'였다. SNS는 못생긴고 뚱뚱한 사람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에 가꿔진 얼굴과 몸만큼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증거가 없었다. 관리하는 나에게 쏟아지는 찬사를 사랑했고, 그렇게 관리하고 인정받아야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외모 관리와 체중 통제를 통해 내 사회적인 지위를 방어했고, 그런 행위에 지쳐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쯤에는 이미 정신적인 신체적인 건강을 잃어버린 뒤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저는 날씬하고 공부도 잘하는 모습이어야 사람들이 저를 좋아해주고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담하면서 저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또는 살고 있는 분을 많이 만나곤 합니다. 오직 인정받기 위한 마음으로 학창시절에는 공부, 성인이 되어서는 다이어트, 그리고 나중에는 일에 몰두하죠. - 「또, 먹어버렸습니다」, 179pg
이제는 그 외모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외모지상주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세계라 완전히 해탈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당분간은 외모 찬사의 아레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인스타그램 본계정을 비활성화하고, 편안한 빅사이즈 옷을 입고, 되도록 사진을 찍지 않으려 하고, 화장도 거의 하고 다니지 않는다. 나에게 너무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외모 강박을 내려놓으니 인생의 수많은 다른 요소들이 눈에 들어왔고, 지금 집중하고 싶은 '나를 위한 것들'에 투자를 하게 된다. 지금 잘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다가 언젠간 다시 외모를 가꾸고 싶다는 건전한 생각이 들 때, 그때 다시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꾸며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