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중독이 되어버린 이유 #3
https://brunch.co.kr/@seashelly/24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자책하는 그대에게
저는 폭식하고 토하고 굶고 강박적으로 운동하고 심한 다이어트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단순히 '의지'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난스럽게 다이어트하네"라고 치부하기에는 이런 증상을 겪는 사람이 생각보다 정말 많아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돈까지 탈탈 털어가면서 다이어트에 매달리고 있다면, 그 개인을 탓할 게 아니라 날씬한 몸을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가치를 매기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 「또, 먹어버렸습니다」, 120pg
폭식증에 대해 처음 알아갈 무렵, 인상 깊게 읽었던 책 내용의 일부다. '유난스럽게 다이어트하다가 폭식증과 불안의 상태에 빠진' 스스로를 한창 자책할 시기에, 이 책은 나에게 다이어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하는 시선을 제공해줬다. 「또, 먹어버렸습니다」 라는 책으로, 식이장애 전문상담사께서 폭식증과 거식증의 원인을 여러 상담 사례로 재구성해서 분석한 내용이다. 혹시 나와 같이 다이어트로 인한 자책을 반복하다가, 더 이상 자신의 힘을 믿지 못하게 된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고 스스로에게 용서와 토닥임을 해줬으면 좋겠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7764894
의지의 문제가 아닌 생리학적인 현상
다이어트는 어떻게든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최근 1년간 본인 의지로 체중 조절을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다'라고 응답한 전국 성인 남녀 1,687명을 분석한 결과, 15.4%인 260명만이 체중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또 최근 미국심리학회에서 실시한 31개 다이어트 방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다이어트를 경험한 3명 중 2명이 다이어트 전보다 오히려 체중이 늘었고 감량한 체중을 유지한 사람은 극소수였으며, 대부분은 체중이 제자리였다고 합니다.
<사상 최고의 다이어트>의 저자 지나 콜라타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했어요.
"다이어트 시장은 꿈을 판다고 할 수 있어요. 꿈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문제는 스스로를 괴롭히기 시작한다는 데 있죠." - 「또, 먹어버렸습니다」, 114pg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다이어트 소식들은 대부분 '성공' 소식들이다. 사람들은 다이어트로 몇 kg를 감량했는지 그 성과에 대해 여기저기서 자랑하곤 한다. 그러다 몇 개월 뒤 자신의 체중이 다시 늘어난다 한들, 그 소식 또한 알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 주변의 다이어트인들은 다 성공만 하고 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 책에서 언급한 이야기처럼, 다이어트 후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몸의 항상성 문제와 더불어 식이조절로 인해 떨어진 대사량의 문제 때문에, 다이어트 후에 '유지어트'를 하는 것은 에너지를 채우려고 하는 몸과 다시 살찌지 않으려고 하는 머리의 박터지는 싸움인 셈이다. 어찌 보면 요요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그런 스스로가 한심하고 게으르게 느껴진다. 나의 의지력 덕분에 성공적으로 살을 뺐다는 사실과 뿌듯함은 잊은 채, 다이어트 직후 몸무게가 고공 행진하면서 남은 건 죄책감뿐이었다. 힘들게 뺀 살을 말짱 도루묵으로 돌려놓은 것을 의지박약한 내 탓으로 돌렸고, 남들이 쉽게 하는 몸무게 유지를 나는 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기에 바빴다.
행복을 파는 다이어트 산업
정말 건강상 위험해서 살을 빼야 하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큰 상품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모두를 대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은 너희보다 날씬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려면 자기관리는 필수지"하는 불안감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굳이 살을 뺄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다이어트 제품을 사고 미용 서비스를 이용할 테니까요. - 「또, 먹어버렸습니다」, 140pg
끊임없는 "살 빼야 한다, 다시 찌면 안 된다"의 목소리가 어디서 들리나 했더니, 첫 번째 범인은 다이어트 산업에 있었다. 결국 다이어트 산업도 소비자들이 돈을 쓰게끔 꾸준히 마케팅을 해야 하기에, 도태에 대한 불안감을 유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요즘의 다이어트 시장은 예전보다 더 기묘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무조건적인 외모지상주의와 건강하지 못한 굶기 전략이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사람들은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적절한 양을 먹어가며 예전보다 더 '건강한' 방법으로 살을 빼는 것 같다. 예전의 다이어트 광고에는 '개미허리', '일자다리', '군살 제로'와 같은 단어가 많았다면, 요즘의 다이어트는 '행복', '자존감 키우기', '내 삶의 변화' 등과 같은 키워드로 연결 지어진다. 이렇게도 다이어트가 나를 위한 일, 건강한 자아를 위한 일이라고 하는데, 살을 안 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다이어트 전도사들은 자신의 비포/애프터 사진을 나란히 붙여놓고, 다이어트 이후의 삶이 얼마큼 행복하고 활기차게 변화했는지 강조하며 다이어트를 성공과 연결 짓는다. 마치 다이어트만 하면 삶이 훨씬 나아질 것처럼, 더 사랑받고 더 성공할 것처럼, 더 행복해질 것처럼 남들도 살을 빼도록 유혹하곤 한다. 이렇다 보니, 불만족스러운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위한 돌파구로 다이어트를 선택하는 경우도 아주 허다하다. (이에 대한 나의 경험은 이후 글에서 언급할 예정이다.)
그런데 과연 다이어트가 삶의 행복과 직결되는 일일까. '다이어트 중독이 되어버린 이유 (1)'에서 썼던 것처럼, 그 행복이 '마른 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자랑했을 때 달리는 부러움의 댓글들, 어떤 옷을 입어도 뚱뚱해 보이지는 않겠다는 심리적 안정감, 할 일도 잘하고 자기관리도 챙기는 "완벽한 사람"이라는 타인의 평가'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다이어트 산업에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생활양식은 돈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뚱뚱한 사람은 '루저'고 불행하고 둔하며 매력 없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죠. 이제 사람들은 뚱뚱하면 무시당하고 혐오의 대상이 되며 불행한 삶을 살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끼며 지갑을 열어젖힙니다. - 「또, 먹어버렸습니다」, 150pg
비만 혐오
두 번째 범인은 우리 사회의 비만 혐오다.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서 뚱뚱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둔하다고 단정해버리고, 살집을 혐오대상으로 분류하며 기피하려고 노력한다.
뚱뚱한 사람은 마치 조롱거리가 되어도 싸다는 듯, 사람들은 이들을 비난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예능과 코미디 프로그램만 봐도 아무렇지 않게 비만한 여성을 타깃으로 개그를 하고, 그들을 깎아내립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미적 기준에서 벗어난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개그 소재로 활용하기도 하죠. 그리고 이런 인식이 우리에겐 너무 익숙합니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면 이상한 기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또, 먹어버렸습니다」, 147pg
특히 사회는 여성에게 외모에 대해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민다. 식이장애를 앓고 있는 우리나라 인구 중 여성의 비율이 80%가 넘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비만인 채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남성들도 대부분의 여성들과 비슷한 정도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갈까. 어느 날 거울을 봤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울음을 터뜨리고, 외적인 모든 것을 뜯어내거나 없애버리고 싶은 고통을 느끼기도 할까. 비단 살뿐만 아니라 젊음, 아름다움 등 외모지상주의의 기준들에 둘러싸인 채 자라온 수많은 여성 청년들이 흔히 겪는 자기혐오의 이야기다. 이 사회가 '통통함'에 대해 얼마나 관대하지 못한 지 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에게 외모에 대해 얼마나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21.06.28 일기
뚱뚱한 여자는 자격이 없다. 연애할 자격도, 공개된 장소에서 목소리를 낼 자격도, 새로운 곳에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할 자격도, 행복한 모습을 보일 자격도 없다. 드디어 휴학을 하고 자유를 얻게 된 나는 뚱뚱해서 사람을 만나기를 꺼려하고, 뚱뚱해서 인스타그램을 하기 꺼려하고, 뚱뚱해서 좋은 곳을 놀러 가기 꺼려하고, 뚱뚱해서 자신감이 없다는 이유로 취업준비를 꺼려한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을 얻어도 여전히 움츠려 들어가는, 다시 날씬해지기만을 기다리는 답답한 나다.
식이장애가 화두가 되기 시작하나
끝으로, 최근 들어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한 바디프로필 후유증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작년과 올해, 코로나와 함께 바디프로필 유행이 확 일었었다. 바디프로필은 단순히 다이어트 동기부여의 목적을 넘어서 다양한 의미와 접목 시 되었는데, '젊음의 버킷리스트', '목표 지향적', '열정과 의지'와 같은 것들이었다. 작년에는 바디프로필이 큰 화두 더니, 그 바디프로필 촬영자들이 1년 뒤 다 같이 골골대기 시작했는지, 바디프로필 후유증으로 인한 섭식장애 이슈가 불거지기 시작한 듯하다. 얼마 전에 올라온 스브스 뉴스의 영상 포함, 다양한 언론들과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바디프로필 후유증 경험을 공유하고 문제 삼는다.
반가운 이야기들이다. 바디프로필을 찍은 뒤 폭식증을 겪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린 나는, 이 실태가 알려질수록 내 사연을 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답답한 부분도 여전하다. 다이어트 산업을 이끄는 주된 선두주자들, 예를 들어 인플루언서들이나 다이어트 업체 또한 요즘 들어 섭식장애 이야기를 콘텐츠로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잘못된 다이어트 방법", "과한 욕심" 등을 탓한다. 결국 그들의 결론은 "그러니까 그렇게 굶으면 안 되고, 내가 하라는 대로 건강한 방식으로 운동을 해야 해. 나와 함께 건강하게 쌔끈빠끈한 날씬이들이 되자!"이다. 대부분의 메시지들이 그렇다. 식이장애의 탓을 '잘못된'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한 개개인으로 돌리고, 그 기저에 있는 다이어트 산업과 살집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은 모른 척, 아니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긴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지도 않다. 왜 사람들이 마른 몸을 칭송하고 뚱뚱한 사람을 저급하게 여기는지, 이런 인식이 어떻게 다이어트 산업에 의해 강화되고 있고 일부 여성들의 삶을 얼마나 더 가혹하게 만드는 지도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살찐 60kg대 중반인 지금 이대로, 신체적으로 매우 건강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다소 불안한 몸매로 살아가는 것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는 과정에 놓여있다.
최근 들어 고정적인 이미지를 깨는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어요. 코미디언 김민경은 "표준 체중 이상"이지만 "저는 다이어트 때문에 운동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코미디언 박나래 역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강미를 과시하듯 보여주죠.
"내가 빛난다면 모두가 빛날 거야. 난 원래 이렇게 태어났어. 노력해서 얻은 게 아냐"라고 외치는 가수 리조처럼 자신의 몸이 어떻든 당당하게 매력을 보여주는 사람이 더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봅니다. - 「또, 먹어버렸습니다」, 151pg
외모에 대한 사회적인 중요도는 30대~40대를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사그라들고,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성숙해지면 외모가 아닌 것들에 중요도를 부여하게 되며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도 점차 없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 시간을 기다려주기에는, 너무 많은 여성들이 10대~20대의 소중한 시간을 외모 관리하는 데에 쏟아붓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자신의 몸이 어떻든 당당하게 매력을 보여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담담한 박수를 보내는 사회가 되어, 어떻게 생겼든 간에 안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