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는 지구에 가야만 했을까

Pixar <Soul> Review (Spoiler Alert!)

by 홍시

꿈이 있는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는 화려하게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아름답게 비춘 뒤 행복해하는 주인공을 보여주며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운동인이라면 경기에서 근사하게 승리하는 모습, 뮤지션이라면 멋진 무대를 하는 모습 등등. <소울>은 관객에게 그 다음을 보여준다. 경기 이후, 무대 이후,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혼자 남은 때.


주인공 조 가드너는 영화의 반절 이상을 꿈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린다. 결국 대가와 함께 피아노를 쳤고, 어머니와도 화해했으며,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제 뭘 하죠? 그가 물었을 때, 함께 연주한 대가 도로테아가 답한다. 내일 밤에 또 와서 다시 하는 거지. 조는 복잡한 표정을 한다. 나는 이 타이밍에 22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가 첫 번째 실신(죽음)을 했을 때 만난 22는 시니컬하고 똑똑하고 짓궂고 사뭇 못되기까지 한 영혼이었다. 조는 22의 통행증을 이용해서 지구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고 22는 영원히 지구로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조의 계획에 응했다. 문제는, 무슨 짓을 해도 22의 통행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조의 피아노 연주에서도, 모든 것의 전당에서도 22의 통행증을 만드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조를 만나기 전에도 유명한 멘토들이 22를 거쳐가며 22를 미워하고 떠났다. 22는 멘토들을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법으로 골탕 먹이고, 그들의 미움을 사는 것을 대번 즐기는 것처럼 나타난다. 그랬던 22가 조를 돕는 까닭은 슬프고 이룬 것 없어 보이는 삶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가 삶을 살고 싶어하는 이유가 궁금해서였다. 그간 22가 봐 온 인생은 위대하며, 고난을 견디는, 숭고한 위인들이었는데 조는 이도저도 아닌 데다 22의 시선으로 보면 고꾸라진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지독하게 살고 싶어했다. 22는 호기심에서 조를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22가 조를 도우려다 삐끗하면서 영화는 관객에게 다른 단락을 펼쳐놓는다. 조의 육신을 입은 22가 삶을 사는 방식이다. 22는 피자를 먹고 행복해했고, 조의 학생인 코니와 대화하며 질문을 갖기 시작했고, 이발소에서 이발사와 손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본인이 상처 준 사람과 화해를 했고, 가을 바람을 느끼고 낙엽과 꽃잎을 만지작거렸다. 고양이가 된 조는 22에게 어떻게 폴과 화해했느냐 묻지만 그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영화에서 가장 중요해보이는 장면은 여기였다. 지구에서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아하던 22는 조의 몸으로 살아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틈에 삶의 구석구석을 느끼는데, 삶을 누구보다 갈망하던 조는 그 사실에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는다.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서 삶의 목적을 이루고 싶어할 뿐이다.


삶의 목적에 대한 조의 열정은 기어이 22를 상처낸다. 조는 22를 날카롭게 몰아세운다. 넌 목적을 모르잖아! 넌 그저 내 몸 속에 있어서 그것들을 느꼈을 뿐이야. 넌 아무것도 아니야! 22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가슴에 붙은 통행증을 집어던지고, 목적이 없어, 라고 되뇌며 길잃은 영혼이 되고 만다. 22가 마음속에 상처로 담아두었던, 그동안 만난 모든 멘토들의 차가운 말들이 이때 합심해서 22를 공격하는데, 모래바람을 뚫고 온 조가 22에게 지구에서 가져온 꽃잎을 건넸을 때 22의 분노와 상처는 사그라든다.


조가 삶의 목적을 이루어야만 한다고, 그것이 불꽃이 아니냐고 말했을 때 제리가 웃으며 말했다. 삶의 목적이요? 그건 그런 게 아니에요. 아, 당신 멘토들이란……. 또, 연주가 끝난 날 밤 도로테아가 조에게 해주는 물고기 이야기도 있다. 어린 물고기가 늙은 물고기에게 물었다. 바다가 어디 있죠? 늙은 물고기가 답했다. 바다? 바다는 여기일세. 어린 물고기가 말했다. 여기요? 여긴 그냥 물이잖아요. 전 바다를 원한다고요.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어린 영혼들을 지구로 가게 해주는 마지막 스티커는 작은 불꽃 하나다. 제리는 그건 원동력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말한다. 그 불꽃이 없으면 지구에 갈 수 없다고. 어떤 불꽃이 22의 통행증을 완성해주었는지는 영화는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불꽃이 있어야만 지구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이상, 그것은 조건이 되고 말았다. 22는 단순히 조가 자신을 몰아세웠기 때문에 상처받은 것이 아니었다. 결국 지구로 가는 것이 어린 영혼들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지구로 가지 못한 스스로가 패배자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원동력에 불과하다고 소개되는 불꽃이 없다면 어린 영혼들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22는 모순에 시달리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22는 어쩌면 통행증을 완성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해도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차치하고, 어쩌면 그 사실에는 감사함마저 느끼면서. 삶의 목적은 중요하지 않아도, 티켓이 없으면 지구에 갈 수 없다고 말하는 The Great Before. 22가 지구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