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커피는 맛있다. 산미가 있는 품종도 좋고, 고소한 품종도 좋다. 어떤 커피는 달달한 디저트에 무엇보다 잘 어울리고, 어떤 커피는 사교성이 없어 단독으로 마셔야 그 맛이 잘 느껴질 때가 있지만, 어쨌든 커피라는 음료는 맛도 향도 훌륭하다. 그렇지만 휘발유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 또한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의 경우 커피 없이 지내기가 매우 어렵다. 출근하자마자 한 잔, 점심 먹고 나서 한 잔, 이 두 잔의 커피가 없으면 직장 생활이 몹시 버거워지기 마련이다. 수험생의 경우는 어떤가. 수시로 들이켜 정신을 깨우지 않으면 눈앞에 있는 것이 흰 것이 글자고 검은 것이 종이가 될 뻔하는 일도 수십 번이다.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양육자의 입장에서도 살기 위한 커피를 마실 테고, 음식점, 재택 근무자, 하물며 카페 직원까지도 하루 한 잔의 커피쯤은 평균적으로 마시고 살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카페에 갈 때만큼은 정말 맛과 향으로 커피를 마신다. 핸드드립, 필터커피, 크림이 올라간 라떼며 아인슈페너, 온갖 복잡한 레시피의 프라푸치노 따위도. 하지만 작업을 하는 순간, 내 경우에는 글을 쓰러 갔을 때만큼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한다. 단 것을 마시고 싶을 때라면 아이스티에 샷 추가.
아메리카노 혹은 샷 추가는 나에게 휘발유다. 이 휘발유는 반 잔쯤 들이키고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부터 본격적인 힘을 발휘한다. 멍하던 감각이 사라지고 집중력이 무섭게 올라간다. 정신차려보면 해가 저물고 있을 정도다. 무슨 최면제가 따로 없다. 차이가 있다면 최면진정제는 나를 순식간에 재우는 역할을 하겠지만, 커피는 내 정신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같은 카페인이어도 녹차나 홍차와 커피는 다르다. 녹차는 조금 느긋하다. 천천히 몸에 자리를 잡고 밤이 다 되어서 자려고 누우면 나 여기 있었는데, 하고 고개를 드는 편이다. 졸린데 잠은 오지 않는다. 홍차는 다정하지만 열정 있는 연인 쪽이다. 녹차처럼 느리게 반응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느낌은 더 강하다. 커피는 행동력이 빠르다. 마시자마자 거의 곧바로 일을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휴식할 때는 차를 마시고, 일할 때는 커피를 마시게 된다.
오늘도 카페에 다녀왔다. 거창하게 핸드드립을 만 원에 파는 멋진 곳이 아니라 3,700원에 아샷추(아이스티에 샷 추가)를 파는 집앞 프랜차이즈 카페. 휘발유 한 잔을 들이키면서 초안 하나를 썼다. 초안을 마무리지으니 해가 넘어갈 무렵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빈 잔을 카운터에 반납하고, 카페 근처 골목에서 전자담배를 한두 모금 피우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늦은 시간에 커피를 마셨으니 아마 조금 늦은 시간까지는 밤잠을 못 이룰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은 결과물을 냈으니까. 3,700원에 맞바꾼 3천자짜리 초안 한 장이면 적당하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