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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Sep 21. 2024

돈도 벌고, 여행도 하는.

투잡 뛰는 남편.

빗소리가 요란한 새벽, 밥그릇에 부딪히는 숟가락소리에 잠이 깨어 주방으로 향했다.

남편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텀블러에 커피 몇 봉을 털어놓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콧노래가 흘러나올 거 같은 표정이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애용하는 벙거지 모자까지 잘 장착하고 문을 열고 나서며 남편이 그런다.


"돈 많이 벌어 올게요."

"빈손으로 오는 건 안됩니다!!"


기분 좋은 남편의 마음을 굳이 초치고 싶지 않아 한마디 건넨다.



남편의 소원 같은 투잡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그냥 쉬는 것이 힘든 성격이다. 본인 사업의 특성상 공백의 시간이 있지만 남편의 손놀림은 멈추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의 환경은 수시로 변한다.


어느 계절엔 우리 집 마당이 바뀌어 있다. 어느 달엔 테라스가 뚝딱 넓어지고, 마당 한편에 방갈로가 하나 세워진다.

그러다 보니 나의 작업실은 쓸데없이 많다.

한 곳엔 화실이, 한 곳엔 사무실이, 한 곳엔 작은 커피숖이, 덩달아 관리할 구역도 많다.

이젠 이상 손볼 곳이 없다. 


남편은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여행이라는 것이 나와는 조금 결이 다른 여행이다. 몇 년 전에는 아내와 캠핑을 다닐 거라 차를 구입했다. 차위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잔대나. 고소공포증에 허리까지 불편한 아내의 반대에 겨우 500만 원 가까운 장비구입은 멈추었다.


남편은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작은 화물트럭을 구입해서 전국을 다니고 싶어 했다. 본인의 주장은 여행도 하면서 돈도 벌겠다는 논리였다. 작년 추석 때 의견을 내놓았다가 두 아들의 극심한 반대로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갔지만 결국 남편은 해 냈다.


남편이 신신당부를 했다.

'한 번만 자기편 되어 달라고, 아이들에게 비밀 지켜달라고.'

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일방적으로 어떠한 결정도 하지 않기로 맘을 정했기에 자녀들에게 입을 다물고 있는 건 꽤나 버거운 일이었지만 침묵했다.


위험해서 안된다는 자녀들의 입장도 이해되었지만, 하고 싶어 간절해 보이는 남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추석 전, 007 작전 같은 전략으로 차를 구입하고 노란 번호판을 달았지만, 남편은 하얀 트럭을 집 근처 공터에 몰래 주차를 해놓아야 했다.


남편과의 비밀작전은 성공적인 듯했지만, 물건을 찾느라 테이블 탁자를 열어 첫째에게 딱 걸려버렸다.

하필 그곳에 차량 구입에 대한 안내 책자가 떡 하니 자리하고 있을 줄이야.

[포터] 이 글자 하나로 모든 상황은 공개되었다.

한참 동안 울그락 불그락 큰 아이의 대화가 이어졌지만, 다행히 "차는 어디 있는데?" 이 한마디로 남편과 아들은 차를 구경하러 나섰다. 그리고 "안전 운행합시다"로 남편의 투잡은 공식적 인정이 되었다.

며칠 동안 남편의 트럭은 마당 잔디밭에서 하얗게 존재감을 뽐냈다.




전화벨이 울린다. 청도 휴게소란다. 호두과자 사 가면 되냐고 물어본다. 목소리에 행복함이 뚝뚝 흐르는 듯하다.


남편님!!

남편님이 행복하면 괜찮습니다.

가끔 옆자리에서 오징어 잘라 줄수도 있어요.

대신 빈손으로 오는 건 용서 안된답니다.


붕어빵이라도 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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