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진짜로 살기 위해ㅡ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마그리트는 세상의 기호를 교란시킨다. '진짜'는 기호도, 이미지도 아니다. 기호는 도리어 우리의 사고를 고정시키고 마비시킬 뿐이다. 그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진짜'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남이 생각한 것을 자기 머리로 따라가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점점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학생이 글자 쓰기를 배울 때 선생이 연필로 그어 놓은 선을 따라 펜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 … 끊임없이 책만 읽고 나중에 그것을 계속 생각하지 않으면, 읽는 것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대부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읽는 행위에 천착할수록, 읽는 것이 곧 생각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고 사고는 점차 마비되어 간다. 기호에 갇히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고정된다.
우리가 타인의 생각을 자기 것인 양 말하는 앵무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를 알 수 있다. 독서량, 독서 습관보다 사유의 태도와 습관이 중요한 이유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단둘이 타게 되었을 때 나(809호)는 여자(709호)에게, 부엌이나 다용도실에선 남이 알면 거북할 얘기는 안 하는 게 좋다고 조용히 말했다. 여자가 자꾸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약점을 잡아 몰아대면 남자는 더욱 밖으로 돌기 마련이라고 … 충고를 덧붙인 것은 나이 많은 인생 선배로서의 친절이었다. 여자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명심하겠노라고 말했지만 다음부터는 인사는 커녕 마주치면 괴물을 보듯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 오정희, 「소음공해」에서
시시때때로 우리는 상대를 제깜냥으로 간편하게 예단하거나 재단한다. 그리고 어디서 발동이 걸린 건지 모를 선의를 담아, 좋은 얼굴 따뜻한 말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오지랖은 자신을 과신하는 윗사람일수록, 인생 좀 살았다는 꼰대일수록 참 잘도 한다. 그런데 어쩌나, 이들의 충실한 의무와 마음 씀이 공해마냥 매스꺼운 것을...
누구의 말마따나 "함부로 '충조평판'하지 말 일이다."
'진짜'는 우리 자신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음을 알았을 때, 자기의 눈이 '잘못된 거울'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다. 재현과 현실, 기호와 실재를 구분할 때, '진짜'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네 삶도 그러지 않을까. 진짜 삶은 피드에 있는 게 아니라, 눈을 마주치고 온기를 느끼는 평범한 순간 속에 있다. 진짜 삶은 소비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과 감정과 관계의 켜 속에 있다.
이미지로서의 삶이 아닌, 촉감으로서의 삶을 살 일이다. 당연하게도 삶이란 몸으로 감각하고 느끼며, 고통도 사랑도 경험하는 것이기에.
마그리트의 그림은 하나의 선언이다.
다시, 진짜 삶을 위해ㅡ
보이는 것을 의심하고
보이는 기호 너머를 보라.
그리고, 말하지 않은 것을 느껴라!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는 글의 편수만큼이나 여러 질문를 준 작품이었습니다. '의심'으로 시작해 '이미지', '천 개의 눈', '복제', 그리고 마지막 '진짜'까지. 하나하나 찬찬히 돌이켜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여전히 설익은 앎과 생각들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고,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에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이 당신에게 하나의 질문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