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피레네 산맥의 성채」 Ⅱ-2

공중의 성, 그곳엔 누가 살고 있을까 Ⅱ

by 시선





한때, 사상과 신념이
내 삶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 「회귀(Regression)」(1940) 일부


한때 사상과 신념이 내 삶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생의 진리이자 논리였고,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단단했다. 그래서 굳이 부산스레 성 밖을 탐색하거나 나가볼 필요를 못 느꼈고, 다른 꿈도 별 의미가 없었다. 더군다나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함께 있어 참 든든했다.


젊은 시절의 그 사상과 신념은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했고, 미래에 대한 확증 같았다.


르네 마그리트, 「회귀(Regression)」(1950)


그 바위는 흔들리고 부유한 적은 있었으나 추락하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내가 지금껏 지어온 것이 단단한 바닥 위의 집이 아닌, 공중에 떠 있는 바위 위의 성은 아닐까? 의심이 피어올랐다.

불안은 누를수록 더 살아났고, 의심은 외면할수록 더 머릿속을 지배해갔다. 그것들은 회피해 온 시간만큼이나 묵혀 있었고,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다.


꽃이 하늘로 향할수록 뿌리는 말라가는듯, 현실에 발 딛지 못한 이상은 위태로웠다.
일찍이 불안한 마음을 들여다봤어야 했고, 불경한 의심을 외면하지 말았어야 했다. 불안을 억지 자신감으로 잠재우려 할 게 아니라,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내야 했다.


ㆍㆍㆍ


그럼에도 난 그 시절의 사상과 신념을 마냥 헛되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날의 시간들 또한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벗들을 여전히 좋아하고, 그날의 나를 사랑한다. 때로 그날의 이상이 현실에서 실현되거나 가까워짐을 느낄 때면, 뿌듯함마저 느끼곤 한다.


르네 마그리트, 「좋은 징조」(1944)


공중의 성은 때로 희망이자 환상이고, 비전이자 도피처이다.
삶은 그 둘 사이를 아슬하게 디뎌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경험했던 터라, 그 성이 바람에 쉽게 추락하지 않으리라는 걸 익히 안다. 그리고 우리 삶이 마냥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믿는다.


우리는 그렇게
공중에 성을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불안을 안고 신념을 짓는다.
위태롭지만, 그 위에서 삶이 꽃피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