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피레네 산맥의 성채」 Ⅱ-1

공중의 성, 그곳엔 누가 살고 있을까 Ⅰ

by 시선




그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허공 위에 거대한 섬이 하나 떠 있었다.

바로 '라퓨타'였다.




「걸리버 여행기」의 '라퓨타 섬'(그림-대교출판)
지상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왕은 라퓨타 섬을 움직여 백성들을 유순하게 만든다. 먼저 햇빛과 비를 차단시키고, 그래도 굴복하지 않으면 바윗덩어리들을 쏟아부어 벌을 내린다.
마지막 수단은 훨씬 잔혹하다. 섬을 반란 지역 위로 움직여 무조건 찍어 누르며, 모든 것을 짓밟고 파괴시키는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의 '라퓨타 섬 사람들'(그림-대교출판)
섬에 들어가 보니 귀족,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것 같은 사람들이 맞아 주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과 행동은 놀라울 정도로 기괴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고, 이목구비는 모두 뒤틀려 있었다. 그리고 줄곧 심오한 생각에 빠져 있는 탓에 정신이 멍했으며, 눈앞의 손님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따귀꾼(때리는 사람)'이라 불리는 하인이 늘 곁에 따라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뺨을 때려 정신을 깨워 주었다.

-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에서


라퓨타는 사유가 극에 달했으나 현실과는 철저히 단절된 세계, 현실을 잊은 자들의 도시였다. 그곳의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지만, 더 이상 발 아래에 있는 삶의 진창을 바라보지 않았다. 오직 추상적 이론과 계산에만 몰두한 채, 눈앞의 생은 애써 외면한 자들이었다.


그렇게 지상의 현실과 접속을 잃은 순간부터 서로의 거리는 멀어져 갔고, 그들의 삶은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 <피레네 산맥의 성채>(1959)


마그리트의 <피레네 산맥의 성채> 속 거대한 바위는 피레네 산맥처럼 당당하다. 그러나 실상 그 바위는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하늘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걸려 있다. 지상에 안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도는 라퓨타 섬처럼 말이다.


피레네 산맥 위의 성채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 이 거대한 바위는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


그런 '피레네 산맥의 성채'에 사는 이들은 누구일까? 저기 높은 의자에 앉아 심판자 행세하는, 먹물 먹은 법꾸라지들 같기도 하고, <동물농장>의 돼지들마냥 권력의 단맛에 취한 정치인들 같기도 하고...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이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할까? 혹시 나도 그 성채, 그 우리 안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집단 최면에 걸려 있거나, 조직 논리에 빠져 있지는 않는지. 혹은 머리로 빚어낸 관념 위에, 자기 경험치에 대한 과신 위에, 지금의 삶을 바꿔줄 기적 한 방에, 삶을 얹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