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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마루 Feb 12. 2023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의 변명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모성애일까?

  금요일 저녁. 집에서 하는 가족 회식을 마치고 뒷정리 후 이를 닦다 거실 빔프로젝터 스크린 위에 바뀌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이 랜덤으로 지나쳐가는 가운데 나도 처음 보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배경은 어딘가 이동하는 차 안이나 배 안. 내 품에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딸이 안겨 잠이 들어 있고 내 오른쪽 어깨에는 큰 딸이 완전히 기대에 잠에 들어 있는데 나도 눈을 감고 잠에 빠져있는 사진이었다.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정말 평화롭고 안정돼 보이는 세 모녀의 사진.

  사실 지금까지 난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대학교 1학년 연애를 시작했던 선배와 7년에 다다르는 연애 기간을 거쳐 마주한 결혼 아니면 이별이라는 선택의 시점. 지금 헤어지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지 않은 영향력을 선택했던 결혼. 결혼하자마자 찾아온 임신. 그렇게 난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24시간이 넘는 진통 시간 동안, '나는 이렇게 아픈데 다른 사람들은 지금 평상시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겠지'하는 생각으로 세상의 모든 이들을 미워하게 되었을 때, 큰 딸이 세상에 나왔다. 아이가 나오자마자 의사 선생님은 아이를 내 배 위에 올려주셨는데 난 그게 정말 싫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새로운 생명이 세상이 나왔다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보다는 이제 이 아픔이 끝이라는 시원함에 사로잡혀 있는데, 내 배 위에 올려져 있는 조그맣고 빨간 생명체라니...... 그래도 엄마인데 뭔가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몰라 난 아이 볼을 한 번 찔러보고는 얼른 데리고 가라고 했다. 그때 난 처음 느꼈다. 아, 이게 엄마로서 느낄 감정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읽은 책에서는 분명 경이롭고 눈물 나는 생명의 신비와 함께 모성애가 뿜뿜 뿜어져 나온다고 했는데.....

  그 뒤로 젖은 안 나오는데 애는 젖을 찾을 때, 출근해야 할 날짜가 다가오는데 젖이 줄어 애가 배고파할 때, 애가 밤새 아파 뒤척일 때, 애를 봐주시던 친정 부모님이 아프셔서 당장 아이를 맡아주실 분이 없어 동동거릴 때..... 항상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었지만 나의 생각의 중심은 아이보다 나였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아, 난 모성애가 많이 부족한 엄마인가 보다.

  아이들이 자라서 생명에 관련된 보살핌보다는 정서에 관련된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에도 난 그리 따뜻한 엄마가 되지는 못했다. 내가 힘들면 아이를 품에 끼고 재우지 못했고, 아이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따뜻하게 대답해 주지 않았고, 마주 보고 환하게 웃어주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로 다가갈까 걱정보다는 당장 지금의 내 컨디션이 더 중요했다. 

  아이들이 더 커서 엄마의 손길을 부담스러워할 때, 난 쾌재를 불렀다. 그래, 내가 너희들에게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거부하는 것이다. 나는 마구마구 엄마 노릇을 하고 싶은데 너희들이 싫어하는 거라고.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아, 나의 모성애는 정말 어쩔 수가 없구나'하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발견한 그 사진 속의 나는 정말 모성애 가득한 엄마의 모습을 뿜뿜 뿜어대고 있었다. 나한테 저런 면이 있었나? 작은 애는 어리니까 어쩔 수 없이 품에 안고 있었다 치더라도 거기에 기대 오는 큰 애까지. 당장 큰 애의 머리는 저 쪽으로 밀어 버리고 정신 차리라고 혼을 냈을 것 같은데. 두 아이 모두를 품에 품고도 편안하고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모습이라니......

  두 딸은 이제 다 자라서 나와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 두 딸 모두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나보다 더 따뜻한 사람으로 자랐다. 물론 나의 성정보다 남편이라든지 다른 가족의 성정을 닮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발견한 사진에서 '아, 우리 딸들이 나의 모성애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았겠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도 모성애라는 것을 발휘하고 있었구나'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모성애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람의 성격, 처해있는 상황, 겉으로 표현하는 방법 등이 천차만별 다른 것을. 모성애라는 것도 각기 다양한 모습을 하고. 각기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발휘되는 것은 아닐까? 금요일 가족 회식으로 술에 은근히 취한 밤, 우연히 발견한 사진 한 장에 내 부족한 모생애에 대한 변명을 주저리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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